5·18 그 후 36년 - 잃어버린 이름

무명 희생자 5인의 소리 없는 절규…“제 이름을 찾아주세요”

2016.05.13 22:34 입력 2016.05.13 22:46 수정 강현석 기자

경향신문은 2001년 이장 과정에서 유골과 유품이 발굴됐지만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36년 동안 ‘무명열사’로 남은 5·18 희생자 5명의 신원을 추적했다. 유품을 정밀 분석해 학교 체육복과 손목시계 브랜드, 병원 치료 흔적 등 신원 확인의 유력한 단서들을 찾아냈다. 당시 유골 측정 자료를 토대로 키와 나이도 복원했다.

이장 당시 확보된 이들의 DNA는 전남대 법의학교실 냉동고에 보관돼 있다. 가족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확인이 가능하다. 광주시는 “무명열사 가족이라고 추정되는 분들이 연락해 오면 사전 검증을 거친 뒤 유전자 분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 5·18민주선양계(062-613-2081∼3).
다음은 5·18 무명 희생자 5명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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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1·3 척추·치아 치료 흔적

‘무명 1’과 ‘무명 3’은 다른 사망자들에 비하면 유품이 많지 않았지만 유골에서 특징이 발견됐다. ‘무명 1’은 발굴 당시 척추뼈에서 4~5개의 가느다란 스테인리스 철사가 줄지어진 채 발견됐다. 철사의 끝은 돌려 묶여 있었고 연결부는 가는 고무관이 감싸고 있었다.

‘무명 1’의 추정 나이는 30대 중반. 법의학자들은 척추 부근 스테인리스 재질의 철사가 ‘의료용’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망 전 척추 수술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16세 전후로 추정되는 ‘무명 3’은 숨질 당시 학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유품은 ‘붉은 양말’이 전부였다. 하지만 유골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윗니에서 금니 1개가 발견됐다. 또 앞니가 빠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니가 발견됐다는 것은 그가 ‘치과 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창륙 조선대 치과대학 교수는 “1980년에 금니는 어느 정도 가정 형편이 뒷받침돼야 했다”면서 “충치 등이 심한 청소년을 치과에 데려가 치료해준 가족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무명 2 ‘엘리다’ 시계에 끈은 ‘오리엔트’

뼈만 남은 시신의 왼쪽 팔에서는 발굴 당시 금속 재질의 시계가 반짝였다. 시계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었다. 경향신문은 2002년 보존처리돼 있던 ‘무명 2’의 손목시계 금속 밴드에서 찾아낸 ‘ORIENT(오리엔트)’라는 글자를 바탕으로 시계의 이력을 추적했다.

‘오리엔트’는 1970~1980년대 손목시계로 유명했던 국내 브랜드다. (주)오리엔트에 시계 사진을 보내 모델명과 출시연도를 질의한 결과 회사 측으로부터 “해당 시계는 1970년대 초쯤 만들어진 기계식으로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반자동 제품으로 추정된다”면서 “당시 출시된 우리 시계와 비슷하지만 일치하는 모델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시계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몸체 뒷면에 있었다. 뒷면에서 ‘ELIDA(엘리다)’라는 영문이 확인됐다. 엘리다는 1970년대 프랑스의 시계 브랜드다. 지금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다른 유명 브랜드와 함께 국내에서 ‘짝퉁시계’가 유통될 정도였다. 5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무명 2’가 찬 시계는 몸체는 프랑스, 금속 밴드는 국내 제품이었던 것이다.

당시 시계는 상당히 고가였다. 이 시계와 비슷한 국산 오리엔트 제품이 5만~6만원 정도에 팔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75년 서울에서 판매되던 80㎏ 쌀 1가마는 2만257원이었다. 시계 주인이 어느 정도 재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발굴 당시 ‘군복 하의’를 입고 있었던 만큼 그가 시민이 아니라 군인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1980년 6월 작성된 검찰의 최초 검시조서에 ‘신원미상’으로 분류된 시신 중 나이가 50대로 추정된 시신은 없었다.

교표가 찍혀 있는 광주 숭의고등학교 교기.

■무명 4 - 체육복 가슴에 ‘숭의고 마크’…갓 졸업했을 가능성

“이건 우리학교 교표(학교 마크)가 맞습니다.” 지난달 28일 전호풍 광주숭의고 교감은 파란색 체육복 사진의 왼쪽 가슴 부위에 찍혀 있는 교표를 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교표는 1959년 개교 이후부터 현재까지 숭의고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모양이 같았다. 3개의 나뭇잎 중앙에 톱니바퀴가 있고 그 안에 고등학교를 의미하는 ‘고’ 자가 한글로 쓰여 있다. 나뭇잎 밑에 펜촉 2개가 교차하는 것이 특징이다.

숭의고는 1980년까지 숭의실업고등학교였다가 1982년에 숭신공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꾼 뒤 2007년부터 현재의 교명을 쓰고 있다. 전 교감은 “톱니바퀴는 공업계 고등학교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체육복은 2001년 10월 광주 망월동 옛 묘역을 발굴할 당시 ‘무명 4’의 관 속에 들어 있었다. 유골 상반신 쪽에는 체육복, 하반신에는 교련복 바지가 잘려진 채 놓여 있었고 푸른색 줄무늬 양말을 신고 있었다. 발굴단은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옷”으로 추정했다.

유품은 2002년 문화재청 보전과학연구소에서 보존처리된 뒤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14년째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경향신문은 체육복에 찍힌 교표와 일치하는 학교를 찾기 위해 광주와 전남지역 고등학교 200여곳과 비교했다.

1980년을 전후한 숭의고 졸업앨범에서도 비슷한 체육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디자인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체육복의 소매 부분 줄무늬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학교에 남아 있는 학적부 등에서는 ‘무명 4’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1980년 숭의실고를 다니다 중도에 학교를 그만둔 학생들의 사유가 기록된 ‘제적부’에는 사망이나 장기결석 등 학생별로 사유가 적혀 있었다.

숭의실고 1학년 화공과에 재학 중 5·18민주화운동으로 사망한 양창근군(당시 16세)의 경우 그해 6월24일 “광주소요 사태로 인한 사망으로 제적시킨다”는 ‘제적사유서’가 있었다. 양군 이외에 5월에 사망이나 행방불명으로 제적된 학생의 추가 기록은 없었다.

‘무명 4’의 사망 당시 나이가 20대 초반으로 추정된 것을 감안하면 그는 숭의실고 졸업생일 확률이 높다. 고등학교 체육복에 교련복을 입고 있었던 만큼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전 교감은 “학적부는 보존기한이 50년이어서 당시 학교에 재학 중이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면서 “제적 기록 등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졸업생일 확률이 높다. 반드시 신원이 확인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무명 5 - 관도 없이 쌀 포대에 담겨 묻혔던 4살 남자 아이

‘무명 5’는 관도 없이 쌀 포대에 담겨 묻혔다. 2001년 5·18 옛 묘역에서 발굴 당시 끈으로 묶인 쌀 포대 안에는 비닐로 감싼 남자아이의 유골이 들어 있었다. 추정 나이는 만 4세.

1980년 6월7일 검찰의 요청으로 시신을 검안한 조선대병원 의사는 사망 원인을 ‘좌후경부 맹관총상’으로 적었다. 목 왼쪽 뒷부분에 총을 맞아 숨졌다는 것이다. 의사는 검시 10~12일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고 검찰은 사망 일시를 ‘1980년 5월27일’로 적었다.

아이의 시신은 두 번이나 땅에 묻혔다가 다시 나왔지만 가족을 찾지 못했다. 5·18 당시 광주 남구 효덕동 뒷산에 매장됐던 시신은 주민의 신고로 5·18 직후 발굴됐다.

경향신문은 검찰이 시신을 검안하면서 찍어둔 컬러사진을 처음으로 확보했다. 부패가 일부 진행되긴 했지만 얼굴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아이의 신원이 밝혀지면 5·18 최연소 희생자가 바뀌게 된다. 현재까지 5·18 최연소 희생자는 만 5세로 외할머니·외삼촌 2명과 함께 행방불명자로 인정된 박광진군이다.

2001년 발굴 때는 박군 가족과 당시 만 7세인 아들이 실종됐다는 이모씨 가족이 DNA 감식을 의뢰하기도 했다. 어린아이 유골이 발굴되면서 기대가 컸지만 DNA는 일치하지 않았다.

2007년 전산화가 이뤄진 경찰청의 실종아동 기록에서도 ‘1980년 5월에 어린 남자아이가 실종됐다’는 신고는 찾을 수 없었다.

광주경찰청 아동실종 담당은 “경찰이 가지고 있는 실종아동 자료에는 1980년 5월에 7세 아이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1건 있지만 그 아이는 여자”라고 했다. 아이는 발굴 당시 분홍색 상의와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보존처리한 분홍색 상의에는 야구공의 실밥과 비슷한 무늬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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