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북카페가 된 대형서점들

2018.09.05 20:38 입력 2018.09.06 14:55 수정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나는 서점에서 책을 살 때면 책의 상태를 잘 살핀다. 그러고는 일부러 적당히 더럽거나 표지가 구겨진 것을 고른다. 특히 내 책을 살 때면 더욱 그렇다. 굳이 내 돈 주고서 그런 하자가 있는 책을 사는 이유는, 그것들이 곧 출판사로 반품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된 몇 권의 책을 내고 그것이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게 되고부터는 더 이상 깨끗한 책을 찾지 않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요즘의 대형서점은 거대한 북카페가 된 듯하다. 음료를 팔고, 테이블과 의자를 곳곳에 두고, 공부를 할 만한 공간까지 제공한다. 사람들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구매하지 않은 책을 읽는다. 아이들은 과자를 먹으며 그림책을 넘기고 수험생들은 아예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기도 한다. 책이라는 물건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중고품이 되고 그 티가 나기 마련이다. 다시 판매할 수 없게 된 책들은 수거되어 모두 출판사로 반품되고, 모두 폐기 처리된다. 그러나 서점은 훼손된 책에 대한 비용을 일절 부담하지 않는다.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책임이 분명히 있을 텐데, 팔 수 없게 된 책을 출판사에 보내고 나면 그만이다. 어느 서점들은 책을 납품받는 즉시 고유의 도장을 찍는다. 판매할 때나 그렇게 하면 되는데 굳이 미리 낙인을 새겨두고는 팔리지 않는다며 반품해 버린다. 그러면 그 책은 찌그러진 차 펴 드립니다, 하는 것처럼 책에 새겨진 도장 지워 드립니다, 하는 업체에 보내진다. 그것을 사포로 갈아내는 미세한 작업을 직접 하는 출판사들도 있다. 그 상처 입은 책을 바라보는 편집자들은 어떤 심정이 될지, 나로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사실 나도 대형서점의 매대 앞에 서서 책 한 권을 다 읽어내던 시절이 있다. 책이 비싸서라기보다는 그래도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괜히 뿌듯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 나를 닮은 사람들이 매대 앞에 서서, 혹은 되는 대로 주저앉아서 책을 읽어나갔다. 좁은 서가 사이를 지나면서는 그들과 어깨를 부딪치지 않게, 발이 등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내가 아직 학생이던 십수 년 전을 추억하거나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책이 훼손되는 것도 출판사가 그 비용을 모두 감당해내는 것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서점은 이전보다 더 (좋게 표현하자면) 열린 공간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이나 카페에 온 것처럼 의자에 앉아서 책을 펴 든다. 그것이 하나의 문화가 된 듯하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그에 따라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러한 풍경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히 서점이다. 서가의 높이를 낮추고 그 간격은 넓혔고 그 공간마다 다양한 의자를 배치해 두었다. 매장 한가운데에 카페를 입점해 두기도 하고 책이 아닌 것을 파는 매대의 규모도 점점 커진다. 모 대형서점은 1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책상을 마련해 두고, 그것을 5만년 이상 된 소나무로 만들었음을 광고한다.

서점은 이제 책을 파는/사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책을 읽는/보는 공간으로 변했다. 정확하게는 책을 전시해서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들이 주변에서 무엇을 소비하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대형서점 주변의 상권은 적어도 유동인구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책은 여전히 문화의 상징이고 사람을 유인하는 역할을 잘해낸다. 그러나 자신들이 위탁받아 파는 물건을 서점처럼 함부로 다루는 곳도 드물다. 서점은 무엇이든 시식할 수 있는 식당처럼도 보이고, 언제든 옷을 입고 나갔다가 반품할 수 있는 옷가게처럼도 보인다. 그 과정에서 웃는 것은 서점과 건물주들이고 우는 것은 출판사이고 상처 입는 것은 책이다. 독자들은 서점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을 감각하면서 그 안에서 함께 즐겁지만, 그로 인한 손해를 감당하는 게 서점이 아닌 출판사들이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서점은 책의 훼손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두고도 그 비용을 출판사에 모두 부담시킨다. 결국 이 또한, 갑질인 것이다.

그러나 서점이 책 읽는 행위를 규제하거나 감시하는 공간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활기찬 서점을 보는 것은 기쁘다.

다만 지금과 같은 ‘읽는 서점’으로 존재하려면 그에 따른 부담과 책임은 스스로 짊어져야 하겠다. 열람용 책을 따로 구매해서 둔다든가, 큐레이션을 강화해 선택의 고민을 줄여준다든가, 책의 훼손 비용을 함께 부담한다든가, 하는 당연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에 더해 매장에 카페를 입점해 두었으면 책을 구매한 이들에게 할인쿠폰이라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적어도 책을 구매한 독자들이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수 있게 배려해야겠다. 오래된 소나무로 고급 책상을 만드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그때 비로소 출판사의 편집자들도, 저자들도, 서점에 가득찬 독자들을 보면서 편히 웃고, 깨끗한 책을 골라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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