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께

2019.08.26 20:43 입력 전경원 | 하나고 교사

안녕하십니까? 저를 기억하고 계실 줄 압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실 때, 하나고등학교 입시 비리를 검찰이 얼마나 부실하게 수사했는지 증거자료를 보냈던 하나고 공익제보교사 전경원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을 당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기 불과 며칠을 앞둔 2017년 4월 말경 ○○일보 사장 딸의 부정입학 의혹을 포함, 3년간 90명에 이르는 부정입학 의혹을 검찰은 무혐의라며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그때 불합격생 신분에서 합격생으로 둔갑했던 대상자들의 부모가 누구였는지 검찰은 어떠한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도 없이 무혐의라는 결론을 내고선 그대로 덮어버렸습니다. 우연인지 숙명인지 문재인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던 당신의 모교 선배이자 전 국가인권위원장의 아들도, 이명박 정권 청와대 대변인의 아들도, 전직 총리의 외손녀이자 현직 ○○일보 사장의 딸 등도 모두 하나고에 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입시부정이 우리 사회를 좀먹는 부정이기에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지요. 저는 왜 지금까지도 입시 비리와 채용 비리를 발본색원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의지가 없는 것인지, 특권층의 카르텔이라 심지어 검찰도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인지…. 접수된 사안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대검찰청으로, 다시 서울서부지검의 김현우 검사실을 거쳐, 다시 오창명 검사실로, 다시 김현서 검사실로 해를 거듭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폭탄 돌리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 나름의 이유를 알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해봅니다. 당신의 딸도 특혜 의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니 씁쓸함을 넘어 연민까지 느끼게 됩니다. 가장 슬픈 것은 당신이 부정입학과 채용 비리 수사를 책임지는 검찰을 지휘하게 될 법무부 장관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촛불혁명의 도화선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한 것이었습니다. 박근혜씨가 일국의 대통령에서 탄핵당하고 감옥까지 가게 된 것도 그 시작은 불공정에 대한 민심의 이반과 분노였습니다. 그렇게 들어선 정권이 바로 촛불정권, 문재인 정부였습니다. 평범한 서민들의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고 보살피겠다는 다짐으로 탄생한 정부였습니다. 당신들은 약속했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그러나 요즘 평범한 서민들은 괴롭고 허탈합니다. 박탈감도 큽니다. 왜 그런지, 왜 이토록 자식들 앞에서 움츠러드는지 아시는지요? 과연 누가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위해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지 망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대들이 과연 촛불혁명의 정신을 오롯이 되새긴 채, 역사에 부끄럼 없이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부가 맞습니까? 그럴 자격이 있는 정부가 맞습니까? 참담한 심정으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집권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과정도 결과 못잖게 중요합니다.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당신이 자리에 연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국민에게, 역사에 어떤 의미로 평가될지 고민해 보셨습니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것이 그렇게도 과한 소망일까요? 소박한 서민들이 꿈꾸기엔 과한 욕심인가요? 그저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당신께서는 이처럼 묵직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민중의 울부짖음에 답변을 해야만 합니다. 나아가고 물러날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것이 글을 배운 사람의 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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