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 묵죽, 지본수묵, 130.1×64.4㎝, 간송미술관 소장

김진우, 묵죽, 지본수묵, 130.1×64.4㎝, 간송미술관 소장

처음 김진우(1883~1950)의 대나무 작품을 봤을 때 받았던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의 대나무에는 식물이라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좀 더 견고한 금속성의 결기가 담겨 있었다. 작품 자체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에 압도되어 몸을 돌리기 어려웠다. 간결한 표현으로 힘 있게 관객을 매료시키는 작품 앞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예술의 힘을 실감했다. “그의 묵죽은 대나무가 아니라 예리하고 강인한 금속제의 도검과 창날, 도끼 등 살상용 병장기를 집합시켜 놓은 듯 삼엄하다”는 최완수 선생의 평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12세의 나이에 항일의병장 유인석을 스승으로 모시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근대 서화가 김규진이 개설한 서화교육기관 ‘서화연구회’가 배출한 첫 졸업생 가운데 한 사람이다. 총칼이 아니라 서화로 독립운동에 일조했던 그는 좌우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민족의 독립을 열망하며 올곧은 길을 걸었다. 1921년 신의주에서 체포돼 황해도 서흥감옥에 수감되기도 했고, 해방 후에는 인민군에 협력한 미술인이라는 이유로 투옥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림을 판 돈으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고 임시의정원 강원도 대표의원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그는, 독립운동가 15인과 함께 ‘우리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격문을 발표해 임정의 무능력함을 비판한다. 작품이 전하는 그의 결기는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에, ‘만국의 도성은 개맛둑 같고, 수많은 집의 호걸은 초파리 같다’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 서산 대사의 시를 적어 넣어 일제와 부역자들을 개미와 초파리에 빗댈 만큼 거침없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아,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그의 행장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맺히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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