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정부안 넘어서야

2019.06.25 20:34 입력 2019.06.25 20:36 수정

올해 연금개혁 토론 자리에 참여하면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입장의 차이를 떠나 여러 전문가들이 피로와 무기력을 토로한다. 예전에는 연금제도를 튼튼히 세워보겠다고 나섰는데 이번엔 그러한 의욕을 갖기 어렵다는 고백이다. 무엇보다 지금 논의되는 정부안이 연금개혁의 과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즉 공적연금으로 노후를 보장하고 재정 불안도 해소할 수 있을까에 응답하기보다는 정부 임기 동안 논란만 피하려는 미봉책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대안을 내놓을 엄두는 나지 않으니 속절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는 탄식이다. 근래 연금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배경 중 하나이다.

[정동칼럼]연금개혁, 정부안 넘어서야

마침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대담한 제안을 내놓았다. 외국 연금을 둘러보고 가진 지난주 기자간담회와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든, 전문가든 국민연금개혁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이 먼저 대전환의 방향을 언급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민연금을 낸 돈만큼 받는 소득비례 방식으로 바꾸자, 기초연금은 50만~60만원으로 올리면서 조세 기반도 확충하자’로 요약된다. 국민연금에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금 조정하는 정부의 ‘부분개혁안’과 비교해 현행 연금체계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구조개혁안’으로 불릴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까지 내서 검토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비판할 만큼 정부 내부에선 획기적인 내용이다.

정부안과 무엇이 다른가? 먼저 기초연금의 대폭 인상이다. 정부안은 역대 처음으로 ‘최저노후소득보장’을 담았다고 자랑한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합해 대략 ‘공적연금 100만원’을 구현한다. 그런데 여기에 해당하는 대상은 평균 소득, 평균 가입기간을 가진 사람이다. 정작 하위계층 노인들은 최저노후소득을 보장받지 못한다. 포용국가를 주창하면서 실제 어려운 노인들은 포용하지 않는 연금안이다. 노인 절반이 빈곤한 우리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건 기초연금이다. 지금보다 두 배가량 기초연금을 올리자는 제안이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 물론 세금 확충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다.

두 번째는 국민연금 급여구조의 재설계이다. 보통 서구에서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개별 소득에 완전비례하도록 설계하고 소득재분배는 별도로 기초연금을 통해 도모한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비례급여가 절반, 기초연금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 균등급여가 절반으로 구성돼 있다. 서구의 이원체계가 국민연금 제도 하나에 통합돼 있는 셈이다. 이후 기초연금이 새로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연금체계에서 재분배 몫이 중복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학계와 정치권 일부에서 국민연금을 완전비례연금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제시돼 왔다. 이러면 국민연금은 젊었을 때 소득과 연동하는 노후보장제도로, 기초연금은 세금을 재원으로 재분배를 증진하는 제도로 역할이 명확해진다. 이때 국민연금에서 재분배 기능이 사라져 하위계층의 국민연금액이 낮아지는 문제는 기초연금 인상으로 보완한다.

세 번째는 국민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이다. 정부안은 보험료율을 인상하므로 재정안정화 조치도 담았다고 설명한다. 사실이 아니다. 소득대체율 인상분만큼만 올리기에, 애초 연금개혁 논의를 촉발한 현행 국민연금의 재정불균형은 그대로 놔둔다. 재정안정화에 있어선 국민연금개혁 없이 그냥 넘어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르지 않다. 이사장의 구체적인 재정안정화 방안은 알 수 없으나 국민연금을 완전비례연금으로 전환할 경우 재정의 지속가능성 논점도 적극적으로 다루어지리라 기대한다.

사실 위 구조개혁은 선진국 연금체계가 발전해온 방향이다. 서구 연금에서 현재 세대들은 수지균형에 맞게 보험료를 내면서 동시에 하위계층의 노후도 보장한다. 심지어 수명이 늘어나면 수급연령을 늦추거나 급여를 조정하는 자동안정화장치까지 갖춰가고 있다. 내부 수지불균형과 초고령화 위험을 방치하면서 단지 ‘연금지급 법제화’에 의존하려는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낸 것보다 2배 이상 평생 받으며 기금이 소진돼도 지급되는 마법의 제도’로 홍보한다. 이 정도면 국민연금에 감탄하고 고마워해야 하건만 여전히 시민들은 무언가 개운치 않다며 의문을 떨치지 못한다. 지급 보장은 법률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질적 기반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연금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그만큼 정부안이 좁은 틀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이사장의 제안대로 연금개혁의 지평을 넓히자. 노후 빈곤에 처한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두껍게 지급하면서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도 추구하는 구조개혁까지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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