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기후의 역습, 불공정의 역설…‘책임 있는 만큼 책임지게 하라’

2019.09.26 21:37 입력 2019.09.26 21:41 수정
조천호

공정함이 기후위기를 막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회의장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유엔 공식 기념일로 ‘세계 푸른 하늘의 날’을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큰 국가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서 실망감을 주고 있다. 뉴욕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문재인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회의장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유엔 공식 기념일로 ‘세계 푸른 하늘의 날’을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큰 국가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서 실망감을 주고 있다. 뉴욕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1961년부터 일어난 지구 온난화
국가 간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들은
대부분 적도 부근의 열대지역
책임이 적은 나라가 피해는 더 큰
잔인한 불공정의 악순환 이어져

잘사는 사람 상위 10%의 노력
저탄소의 대전환 달성 가능케 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녹색기후기금
미국의 약속 불이행 등 지지부진

기후위기를 인식한 첫 세대이자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 우리
최악의 재앙 피하기 위해서
부유한 나라와 더 가진 이들이
더 책임지는 공정함이 절실하다

우리는 모두 유일한 행성인 지구를 공유한다. 그러나 온난화된 지구는 우리를 하나로 묶지 않고 더욱더 나누려고 한다.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배출한 나라와 그 결과로 피해를 보는 나라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일반적으로 과학 문제로 여겨지지만, 사회, 경제와 정치에 모두 연결된 전 지구적 문제다. 이 문제는 세계가 공정하지 않으므로 기후불의가 깊게 작동한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는 공정함의 위기이기도 하다.

미국 스탠퍼드대 지구시스템과학과 노아 디펜바우(Noah Diffenbaugh)와 경제학과 마셜 버크(Marshall Burke)가 2019년 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1961년부터 2010년까지 일어난 지구온난화가 국가 간 불평등을 증가시켰음을 밝혔다. 실제로는 지난 50년 동안 부국과 빈국 간의 경제 차가 줄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없었다면 이 차이가 더 줄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50년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인당 300t을 넘는 부유한 19개 나라 중 14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평균 13% 증가했다. 고위도에 있는 추운 부자 나라들은 노동 생산성과 농업 수확량이 좋아진 것이다. 노르웨이는 1인당 GDP가 무려 34%나 증가했다. 반면 누적 배출량이 1인당 10t 미만인 가난한 18개국 모두는 기후변화로 GDP가 17~31% 줄어들었다. 큰 피해를 본 국가는 대부분 적도 부근 열대지역에 있다. 인도는 GDP가 무려 31%나 더 떨어졌다. 이것은 대공황 기간 미국 경제에 미친 영향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구온난화가 없다고 가정한 경우보다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사이 GDP 격차는 약 25%나 더 벌어졌다.

마셜 버크와 그 동료들이 2015년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평균 기온과 경제 생산 간에 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연평균 기온이 13도인 나라가 가장 경제 생산성이 높고 13도에서 멀어질수록 생산성이 떨어진다. 기온이 너무 높거나 낮지 않아야 생산성이 높은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추운 나라는 최적 기온 13도에 다가가면서 혜택을 받았고, 뜨거운 나라는 최적 온도에서 멀어지면서 피해를 보았다.

가난한 나라는 대부분 뜨거운 지역에 있어 더욱더 심각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저위도 지역은 중위도 지역과 비교하여 기온의 자연 변동성이 작다. 이로 인해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는 저위도 지역에서 뚜렷하고 빠르게 나타나며 재해성 날씨의 발생 빈도도 많이 증가한다. 특히 가난한 나라는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 농업에 더욱더 의존하므로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놓이게 된다.

지구온난화는 가난한 나라에 비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선진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경우 허리케인, 가뭄과 산불을 포함해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심각한 재난이 종종 발생한다. 유럽도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산불로 고통받는 경우가 있다.

마셜 버크의 연구에 의하면 지난 50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미국은 1% 미만의 경제적 손실을 보았고 우리나라는 약간의 이익을 얻었다. 지금까지 연평균 기온이 약 13도인 우리나라, 미국, 중국과 일본은 지구온난화가 경제에 미친 영향을 작게 받았다. 하지만 앞으로 지구온난화는 최적 기온 13도에서 벗어나므로 경제를 저하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 극빈층·인권 담당관 필립 알스턴(Philip Alston)이 2019년 유엔 인권협의회(Human Rights Council·HRC)에 제출한 기후변화와 빈곤에 관한 보고서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과 피할 수 없는 사람 간에 기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합법적으로 제도화된 인종차별과 분리정책을 말한다.

부유한 나라들은 기후위기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가난이 기후위기로부터 탈출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이 때문에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기후위기는 국가 간 불평등뿐만 아니라 각 나라 안의 지역 간, 계층 간 불평등도 악화시킨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80%는 우리나라가 포함된 주요 20개국(G20)이 배출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가난한 나라에 집중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 거의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 대부분을 감당해야만 한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잔인한 현실은 그 책임이 가장 적은 나라가 피해를 더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영국 자선단체 옥스팜은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에서 부유한 10%의 사람들이 온실가스의 절반을 배출하는 반면, 세계 인구 절반인 가난한 35억명은 온실가스의 10%만 배출한다고 밝혔다. 가장 부유한 1% 사람이 소득 하위 10%인 사람보다 175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사용한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기후 피해의 약 75%가 발생한다.

기후위기는 누가 어디서 언제 온실가스를 배출했는지에 상관없이 그 피해가 전혀 다른 지역에서, 전혀 다른 세대에게 닥칠 수 있고, 바로 그들이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결과를 야기한 원인 유발자들과 그 결과를 극복해야만 하는 사후처리자들이 같은 지역, 같은 시대 사람이 아니다. 기후위기에서 원인과 결과는 뒤죽박죽이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를 다루는 것은 불공정을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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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원인과 영향, 이에 대한 전 세계 대응이 불공정하다는 문제는 국제 기후협상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기후위기에 더 큰 책임이 있으므로 탄소를 줄이는 데 더 크게 기여하라고 요구한다. 기후정의의 개념은 이 논쟁에서 나왔으며 이것이 국제 기후협상에서 “공통이지만 차별화된 책임” 원칙을 관철시켰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케빈 앤더슨(Kevin Anderson) 교수는 데모크라시나우(democracynow) 뉴스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때 많이 배출하는 사람에게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잘사는 사람 상위 10%가 유럽 사람의 평균 배출 수준으로 줄이면 나머지 사람 90%가 전혀 줄이지 않아도 전 세계 배출량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전 세계 대다수 사람들이 기후대응 비용을 크게 지불하지 않아도 저탄소의 대전환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16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까지 연간 1000억달러의 녹색기후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 후 2013년 인천 송도에서 정식으로 사무국이 출범하였다. 약속과는 달리 지금까지 기금이 103억달러만 조성돼 전 세계 111개 사업에 52억달러를 지원했다. 미국의 경우는 약속한 30억달러 중 10억달러만 낼 정도로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처럼 인류가 지속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이 단 1도 상승했는데도 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불공평하게 일어났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처럼 기후위기가 부유한 국가에서 적게 일어나리라 전망할 수 없다. 기후위기가 증폭되면 부자 나라도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만이 고립된 고통을 겪지 않는다. 기아와 빈곤은 정치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전쟁과 가뭄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시리아 난민처럼 부유한 나라로 피난처를 옮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제 기후위기는 우리의 먼 미래에 잠재된 추상적 위험이 아니다. 바로 우리 앞에 다가왔지만, 그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이 기후위기에 대담한 입장을 취하도록 장려하지 않는다. 아무리 중요한 문제라 해도 자기 임기 내에 유권자에게 가시적 결과를 보일 수 없으면 해결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 체계는 기업이 공동체를 위해 이익을 희생하도록 권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개인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힘들어한다.

지금까지 세계는 과학의 경고를 무시하였고, 그 결과 미래 전망 중 가장 나쁜 기후변화가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 중이다.

2018년 인천에서 열린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 총회에서 현재 지구온난화 추세가 지속하면 광범위하고 심각한 위험이 발생하는 1.5도 억제선이 20여년 안에 무너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리고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추가 조치가 없으면, IPCC는 금세기 말에 지구 평균기온이 3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에는 금세기 중반에도 3도 이상이 될 수 있는 파국적 상황을 예상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기후위기가 지금 우리 대부분이 살아 있을 2050년경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인식한 첫 세대이자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다. 오늘날은 중요한 전환점이며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과감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기다. 2030년까지가 그 결정적인 기간이며 이 기간 안에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산업 체제와 삶을 극적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파국은 필연적이다. 이 과학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결단을 미루면서 우물쭈물 이대로 갈 수는 없다.

기후위기로 인한 최악의 피해를 피하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다. 유엔은 지난 9월23일 기후변화 특별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전 세계가 기온 상승 1.5도 이내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새로운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전 세계 시민단체도 9월20~27일 ‘기후 파업(Climate Strike)’을 선언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단체가 연합하여 2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했고 27일 ‘청소년 기후행동’을 한다.

우리는 각 부분이 역동적으로 연결돼 운명을 함께하는 지구에 살고 있다. 온실가스 농도는 이 세상 모든 곳에서 공정하게 증가해도, 그 대부분의 피해는 지구온난화 책임이 덜한 가난한 곳에서 불공정하게 일어난다. 부유한 나라와 사람이 더 책임을 지는 공정함이 우리를 기후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필자 조천호

[전문가의 세계 - 조천호의 빨간 지구](15)기후의 역습, 불공정의 역설…‘책임 있는 만큼 책임지게 하라’


경희사이버대 기후변화 특임교수. 국립기상과학원에서 30년간 일하고 원장으로 퇴임했다. 연세대학교에서 대기과학을 공부했다. 전 세계 날씨를 예측하는 수치모델과 전 세계 탄소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구축했다. 기후변화 과학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공부하고 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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