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 변호사, 60번의 이력서를 내고…기간제 교사 되다

2019.10.05 06:00 입력 2019.10.05 06:01 수정
장은교 기자

변호사로 일하던 박종훈씨(35)는 기간제 교사가 됐다.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현재는 비강남권의 한 혁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변호사로 일하던 박종훈씨(35)는 기간제 교사가 됐다.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현재는 비강남권의 한 혁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인권 정책 입안 등 힘쓰던
민변 변호사·교육청 팀장

사표 뒤 기간제 교사 변신
어떤 이는 ‘쇼’라 하지만…
학생 곁에서 ‘현실’을 묻다

박종훈씨(35·사진)는 2018년 3월 기간제 교사가 됐다. 사범대를 졸업한 지 8년 만이었다. 기간제 교사의 구직 문이 열리는 새 학기 시작 전 2주 동안 그는 60개 학교에 원서를 넣어 겨우 한자리를 얻었다. 서류전형을 통과했으니 시범수업을 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박씨는 지하철에 있었다. 그는 보이지도 않는 휴대전화 너머 상대를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씨가 기간제 국어교사로 처음 서울의 한 중학교에 출근하기 두 달 전까지, 그는 서울시교육청 소속 사무관(팀장)이었다.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서울 초·중등학교의 인권정책을 수립했다. 성평등·노동인권 교육정책과 학생인권정책이 그의 결재를 통해 학교에 공문으로 통지됐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 소재 모든 초·중등학교에 적용되는 학생인권종합계획(2017년 11월 발표)도 그의 손을 거쳤다.

교육청에서 일하기 전엔 변호사였다. 3기 로스쿨 출신으로 로펌에서도 일하고 개인사무실을 꾸리기도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교육청소년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변호사이자, 서울시교육청 팀장으로 일하던 그가 기간제 교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쇼(show)”라고 했다. 그는 기꺼이 ‘쇼맨’이 됐다. 박씨는 작년 한 해는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국어교사 겸 학교폭력전담교사로, 올 3월부터는 구로구의 한 혁신학교에서 국어교사 겸 중학교 2학년 담임교사로 일하고 있다. 학생 대부분은 그의 특이한 과거를 모른다. 그저 “복도에서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귀찮게 하고, 다른 선생님들과는 좀 다르고 이상한” 선생님이다.

학교는 쉽게 자주 욕을 먹는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답이 없다고들 한다. 고위공직자들의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 놀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체감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과정은 가장 적나라하고 뜨겁게 입시 공정성과 교육 불평등 문제를 건드렸다.

변호사였다가 교육행정가였다가 기간제 교사가 된 박씨는 우리 교육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2년 동안 다른 환경에서 학생들을 만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는 왜 굳이 기간제 교사가 됐을까. 지난달 17일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그를 만나 ‘교사 박종훈’의 고민을 들어봤다.

◆“내가 변호사가 된 건…법 전문가가 돼서 학교로 가고 싶어서였죠”

박종훈 교사는 스스로를 “경박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아프고 힘든 학생들에게 더 쉽고 편한 친구같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더욱 경박해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박종훈 교사는 스스로를 “경박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아프고 힘든 학생들에게 더 쉽고 편한 친구같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더욱 경박해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 사범대(국어교육·컴퓨터교육)를 졸업했죠. 원래 선생님이 꿈이었나요.

“고향이 경남 마산(현 창원시로 통합)인데요. 중학교가 소위 말해 ‘똥통학교’였어요. 화장실에 가면 담배연기 자욱하고, 학생들끼리 폭력도 난무하고요. 복도에 피가 흥건한 적도 있었어요. 체벌도 많았고요. 저는 전형적인 모범생도 아니었고 날라리도 아니었고, 이쪽저쪽으로 치이는 학생이었죠. 근데 그런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학교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라면 이렇게 안 둘 텐데…내가 선생님이면 다 보일 것 같은데 왜 방치할까. 고등학교는 폭력은 좀 덜했지만 이번엔 성적으로 학생을 완전히 차별하더라고요. 공부 좀 잘한다 싶으면 기숙사에 가둬놓고 공부시켰어요. 식당을 따로 만들어서 기숙사 애들은 밥도 따로 먹게 했어요. 졸업식 땐 서울대 합격한 학생들만 단상에 세워서 학교재단 이사장이 직접 나와 금메달을 걸어줬어요. 얼마나 비인간적이에요.”

- 보통 학창시절이 불행하면 다시는 학교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지 않나요.

“고2 때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났거든요. 첫 상담을 하는데 첫 질문이 ‘집에서 학교에 어떻게 오냐. 오가는 길에 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니?’였어요. 보통 성적 물어보고 어느 학교 갈래, 무슨 과 갈래 물어보는데 ‘어떤 노래 좋아하냐’ 이런 질문만 해요. ‘심쿵’했죠. ‘인생에서 가장 희열에 찬 순간이 언제였는지’도 물어봤어요. 뭐라고 대답했는지 지금도 기억나요. 롯데랑 삼성이랑 야구할 때 호세라는 외국인 선수가 다 지던 게임을 뒤집은 적이 있어요. 그때 얘길 했죠. 학교 상담시간이 처음으로 즐거웠어요. 전 굉장히 내성적인 학생이었고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는 게 한 번도 즐거웠던 적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그 선생님이 국어수업을 너무 잘하셨어요. 전 학교 다니기 싫었고, 인생을 왜 사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아이였는데 처음으로 그 1년 동안 인생이 재밌구나, 저런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고3 초에 선생님 계신 교실로 막 뛰어갔어요. ‘쌤쌤쌤! 쌤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여쭤봤죠. 그다음부턴 각 대학 사범대 입학요건을 다 오려 붙여놓고 공부했어요.”

등하굣길 풍경, 희열의 순간…
고2 상담 때 색다른 질문에 ‘심쿵’
‘쌤’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교사의 꿈을 키웠죠

- 근데 로스쿨을 갔네요.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다 보니까, 좀 더 교육현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교사가 될까, 학자가 될까, 행시를 봐서 관료가 될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게 법이에요. 군대에서 법무실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 법의 힘을 알게 됐어요. 군가산점제도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으로 없어졌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데모를 해도 안되던 사건들이 해결되는 걸 보고 법의 매력에 빠진 거예요. 저는 변호사가 되기보다는 얼른 법전문가가 돼서 교육현장에 뛰어들고 싶었어요.”

- 변호사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교육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하다, 서울시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겼죠.

“시민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면 눈치 안 보고 크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현장엔 안 먹히잖아요. 저는 현장에 뛰어들고 싶었어요. 2015년 9월에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센터 사무관으로 갔는데 처음 1년은 매일 야근을 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제가 학생들의 인권이나 교육정책을 바꿔간다고 생각하니까 신났죠. 제가 결재만 하면 모든 서울 초·중등학교에 공문이 가니까요. 성인권정책전문관, 노동인권전문관 만들고 진짜 신나게 일했어요.”

- 현장이 바뀌던가요.

“아니오.(한숨)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탁탁 막혔어요. 현장의 저항이 느껴졌어요. ‘학생인권만 챙기냐, 교사들이 얼마나 힘든지 네가 아냐?’ 이런 목소리가 들렸죠. 교사의무연수 때 강의를 가면 거의 너덜너덜해져서 왔어요. 특히 교장·교감 선생님들 앞에 서면 거의 조롱을 당하고 왔어요. 네가 현장을 아느냐는 거죠. 근데 저를 괴롭힌 건 현장의 저항보다는 교육청 내부였어요. 처음 제가 교육청에 갈 때만 해도 교육감 임기가 많이 남아있어서 제가 생각하던 것들이 현장에 바로 전달은 됐어요. 그런데 교육감 재선 시기가 다가올수록 점점 어떤 정책도 추진이 안 되는 거예요. 실컷 연구한 걸 왜 발표도 안하느냐고 하면 위에서는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예요. 너무 답답했어요. 몇 번이나 사표를 냈어요. 교육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교육감님이 재선만 되면 시원하게 해 볼 테니 기다려보라고 했죠.”

- 그땐 아니었지만 결국은 사표를 던졌네요. 결정적인 이유가 뭐였나요.

“2018년 1월에 결국 사표를 썼어요. 원래 교사가 꿈이기도 했고, 교사들이 현장이 너무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얼마나 어떻게 힘든 건지 알고 싶었어요. 왜 좋은 정책이 현장에선 안 되는가 궁금하기도 했고요.”

- 금방 자리를 구했나요.

“전 그럴 줄 알았거든요. 자신감이 넘쳤어요.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1~2월에 각 학교의 기간제 교사 구인공고가 쫙 올라와요. 저도 열심히 지원했죠. 근데 서류통과도 안 되는 거예요. 기간제 교사들은 그 2~3주 동안 자리를 못 구하면 끝이거든요. 미치겠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았어요. 제가 교육청에 있을 때 사무관(팀장)이었는데 학교로 치면 교장급이에요. 근데 서류심사를 주로 ‘교감쌤’이 하시거든요.(웃음) 자기보다 더 윗급에 있던 사람인데다, 학생인권정책을 했던 사람이라니…뽑을 리가 없죠. 처음에는 경제·사회적으로 여건이 좋지 않은 지역의 학교들만 쓰다가, 결국 범위를 넓혀갔어요. 60개 학교를 지원했는데 딱 한 곳, 제가 생각지도 않았던 서초동에 있는 중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커버스토리]학생 인권 변호사, 60번의 이력서를 내고…기간제 교사 되다

교육 현장 바꾸려고 로스쿨 선택
민변 활동하다 교육청으로 옮겨
학생 인권 바꾼다 생각에 신났죠
교육감 바뀔 때마다 정책도 주춤

- 첫 학교에선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학교폭력전담교사가 됐어요. 알고 보니까 학교폭력사건으로 학부모가 교사와 학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건 상태더라고요. 저를 뽑은 이유 중 그 점이 크지 않았을까요.(웃음) 학교 소송수행담당자가 돼서 소송을 제기한 어머님을 직접 만났어요. 내용을 보니까, 학부모가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제가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한 달 뒤 법원에서 온 준비서면 소송 당사자에 제 이름이 적혀있더라고요. ‘학생부 박종훈 선생이 자신의 법조경력을 내세우며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요. 학교에서, 변호사로서 처음 쓴맛을 본 거죠. 소송은 결국 취하됐고, 잘 마무리됐어요.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지만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 1·3학년 국어수업도 진행했죠.

“네. ‘모둠수업(3~4명씩 조를 짜서 진행하는 협동수업)’을 했는데 1학년 수업은 잘됐어요. 자유학기제라 (고교입시) 내신에 반영이 안 되거든요. 근데 3학년 수업이 잘 안되더라고요. 3학년 학생들에게 문제를 주면 조금 풀다가 ‘답이 뭐예요?’라고 해요. 함께 의논해보라고 해도, 얼른 (답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거죠. 중 2때부터 자사고·특목고 입시에 내신이 반영되거든요. 같이 협동하고 발표하는 수업을 즐거워하고 잘하던 학생들도 1년 만에 달라지는 거예요. 슬프죠. 애들이 아무리 못해도 학원을 3~4개씩 다녀요. 상담 중에 ‘학원을 원해서 다니는 거니?’라고 물어보기만 했는데도, 우는 학생이 있었어요. 힘든 거죠.”

- ‘강남 교육’을 교사로 경험해보니 어땠나요.

“강남 안에서도 차이가 나요.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압구정, 청담을 ‘진남(진짜 강남)’이라고 하더라고요. 원래 잘살던 사람들. 그쪽 부모들은 자식을 그렇게 ‘쪼지’ 않아요. 드라마 <스카이 캐슬> 속 모습은 서초동, 대치동에 가까워요. 원래 잘사는 집은 아니지만 본인이 공부로 성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그러나 자식들이 자기들처럼 상위 10~20%의 삶을 누리지 못할까봐 불안한 사람들이죠.”

왜 좋은 정책이 학교에선 안될까
교육청 사표 쓰고 기간제 교사로
수업 때 ‘이 교과서 별로야’ 했는데
그 반에 저자 아들이 있었더라구요

- 학부모들의 개입이 많았나요.

“음. 좋게 보면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동기부여를 잘 해줘요. 강요가 아니라 아이가 선택하는 것처럼 이끌기도 하고요. 학부모 중에 전문직 비중이 높죠. 한번은 제가 수업시간에 농담조로 ‘이 교과서 진짜 별로니까 이해하세요’라고 했어요. 그 얘기를 학교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다른 쌤에게 했는데 수저를 떨어뜨리더라고요. 그 반에 그 교과서 저자 아들이 있었어요. 심지어 그 교수님이 진로탐색시간에 일일교사로 오셨어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검사들을 욕할 때가 있었는데, 어떤 반에 검찰 고위간부 딸도 있어요. 검찰을 비판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거죠. 영어는…학부모 중에 전문통역사도 있고, 너무 잘하는 분들이 많아서 민원이 몰리는 과목이고요. 한번은 학생회장 선거를 하는데, 결선투표를 당일에 갑자기 진행하게 됐어요. 문제는 탈락한 학생이 미리 선거방식을 고지받지 못했다고 주장한 거예요. 그 학생의 부모가 학교로 직접 찾아와서 저녁 10시가 넘어서까지 거세게 항의했어요. ‘왜 선거 룰을 고지하지 않느냐’고요. 학생회장을 하면 내신 가산점이 있던 때여서 민감했던 거죠.”

◆“공교육 불신 아닌 사회에 대한 공포 존재…계급문제 잡아야 풀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 작년엔 강남의 일반 중학교에서, 지금은 비강남권의 혁신중학교에서 일하고 있는데 차이가 많이 느껴지나요.

“차이가 많죠. 강남에선 학부모총회를 하면 강당이 꽉 찼어요. 지금 학교는 한 반에 3~4명도 안 와요. 그만큼 이쪽 학부모들은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바쁘고 힘든 거예요. 학교가 좀 알아서 아이들을 맡아줬으면 하죠. 서초동에선 자사고·특목고 가는 학생이 한 반에 5명이 넘었어요. 특성화고는 한 명도 안 가요. 여긴 자사고·특목고 가는 수가 전교에서 10명 정도 될까. 일반고 아니면 특성화고죠. 저는 교육 얘기하면서, 현실을 모른 척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경제력 차이를 무시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 인프라 풍부한 강남 아이들
성소수자·노동·인권에 진보적
자라서도 좋은 엘리트일 수 있을까
비슷한 이들만 보고 자라는 ‘한계’

- 교사로 일하기엔 어느 쪽이 더 좋았나요.

“한마디로 얘기하기 복잡한데요. 강남 학생들은 학원을 많이 다니니까, 낮에 피곤해서 조는 친구들도 많아요. 수업시간에 다 자는데도 100점을 맞는 친구도 있었죠. 학원에서 진도를 다 맞춰서 빼주니까. 강남 학생들을 보는 제 마음은 굉장히 양가적이에요. 그 친구들은 인권동아리 만드는 것에 굉장히 적극적이었어요.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니까 아는 것도 많고 보는 것도 많아요. 그래서 성소수자라든지, 노동·인권 이슈에 굉장히 진보적이에요. 학교 오케스트라를 취미로 하는데도 수준급이에요. 부모들도 전인교육을 바라거든요. 모든 걸 다 두루두루 잘하죠. 그런데, 이 친구들이 자라서 이 사회의 좋은 엘리트가 될 수 있을까? ‘제2의 우병우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요. 좀 더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점점 더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살잖아요. 강남 학생들은 자기들이 속한 세상이 이 사회의 전부라고 알 거예요. 그게 과연 바람직한 사회일까요. 전 그래서 자사고나 특목고를 반대해요. 자꾸 누구누구네 자식들, 공부 잘하는 애들끼리만 모이는 건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어떤가요.

“여기서도 굉장히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요. 어떤 친구는 소설을 정말 잘 써요. 제가 미리 사인을 받아두고 싶을 정도로요. 어떤 친구는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애니메이션 덕후(매우 좋아하는 사람)예요. 어떤 친구는 당장 강남의 학교에 가도 뒤처지지 않고 공부를 잘할 거라는 게 보여요. 근데 이 친구들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제 신념이 특목고를 반대한다고 해서, ‘넌 외고 가지마’ 이럴 수도 없고요. 제가 입시컨설턴트처럼 대학에 가려면 이렇게 하는 게 유리하다, 아니다 말하는 건 너무 슬픈 거잖아요. 그런데 현실을 모른 척할 수도 없고요. 좀 더 비교를 하면, 강북(박씨는 강북이라고 표현했다)에 있는 친구들이 훨씬 더 밝고 행복해보여요. 아무래도 당장의 학업스트레스가 적으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밝을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요. 강남 친구들을 위해서도, 강북 친구들을 위해서도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교육격차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당장 대학입시에서 학종과 수시·정시 비중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까지 불붙었는데 어떻게 보나요.

“솔직히 정말 답답해요.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양극화가 심한 사회예요. 이런 사회에서 대학입시제도가 어떻냐가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요. 단순하게 비교하면 미국이 대표적인 ‘학종 입시’고요, 유럽은 한 번에 시험을 보는 우리말로 하면 ‘수능 모델’이죠. 그런데 유럽이 바칼로레아 시험 같은 것으로 단순하게 할 수 있는 건, 대학이 평준화되어있고 사회노동소득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안정돼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우리나라가 바칼로레아 모델을 도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은 다 학교에서 놀고 초등학교 때부터 논술학원에 등록해서 그것만 죽어라 할 거예요. 불평등한 이 사회를 바꿔야지, 입시제도만 자꾸 바꾼다고 뭐가 해결되나요. 전 지금 한국 상황에선 어떤 입시 제도를 채택해도 사교육을 막기 힘들다고 봐요. 공교육에 대한 불신보다는 이 사회에 대한 공포가 있는 거예요. 계급문제를 잡지 않으면,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서울 송파 헬리오시티 학부모들이 단지 내 ‘혁신학교 지정 반대’ 시위를 했어요. 피켓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어요. ‘대학입시개편 없는 혁신학교 웬 말이냐.’ 그분들도 혁신학교를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다들 자기 자식들이 행복하고 민주적인 교육을 받길 원해요. 그런데, 대학입시라는 현실 때문에 그런 거죠.”

[커버스토리]학생 인권 변호사, 60번의 이력서를 내고…기간제 교사 되다

- 하루하루 낙이 없는 아이들 곁으로 가고 싶었다고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보니 어떤가요.

“웃으실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어떨 때 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눈물이 핑 돌기도 해요.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장면이고, 나중에 제가 죽기 전에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지금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절대 빼놓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물론 힘든 점이 있죠. 아무리 말을 해도 엇나가는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에게 거의 들으라는 듯이 욕하는 친구도 있고요. 어떨 땐 정말 미쳐버리겠다 하는 순간도 있어요. 그래도 행복해요. 저는 아픈 아이들이 많이 보여요. 차라리 학교라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건 괜찮다고 봐요. 그런데 삶을 무기력하게 느끼고, 어떤 문제들 때문에 이미 자신의 삶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어떻게든 그 친구들을 붙잡아보려고 노력해요. 복도에서 한손으로 반쪽 하트를 만들고, 친구들이 나머지 반쪽을 채워주길 기다리면서 있으면 마지못해 와서 하고 가요. 그래도 가끔은 웃어주죠. 이런 아이들이 많은데, 이런 사회에서 학교란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입시제도가 아니라 이런 걸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첫날부터 웃는 선생님
내가 지금 학생을 대하는 방식
다른 이에게 공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 중학교 2학년 담임교사로서 선생님의 가장 큰 고민은 뭔가요.

“저희 반이 여학생 12명, 남학생 10명인데요. 정말 해맑고 밝아요. 이 친구들의 밝은 모습이 죽을 때까지 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대로라면 이 모습이 당장 고등학교만 가도 유지될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담임은 챙겨야 할 게 많아서 힘들긴 해요. 교사들끼리는 ‘3월달엔 애들 앞에서 웃지 마라’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근데 저는 첫날부터 웃어요. 애들 앞에서 더없이 가벼운 사람이에요. 제가 수업에 들어가기 전 교실은 엉망이에요. 수업시간에도 사실 시끄럽고 난리예요. 근데 저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무서운 선생님들 수업시간엔 선생님 들어오기 전부터 애들이 경직돼있는데요. 저는 그게 이상한 것 같아요. 내가 지금 학생들에게 하는 모습이 언제, 누구한테 보이더라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집중 못할 때, 가끔 긴장이 필요할 때는 소리지르고 싶기도 하죠. 근데 강압적으로 하는 방식을 누군가에게 공개하지 못한다면 그 방식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학부모들이 다 보고 있는데 제가 아이들한테 악~악~ 소리를 낼 수 있겠어요?”

-담임으로서 정한 원칙이 있나요.

“학기 초 아이들 스스로 반의 규칙을 만들고 지키게 하기로 했어요. (박종훈 교사의 반에는 선생님의 이름을 따서 학생들이 만든 ‘종훈정음’이 있다.) 저는 개입을 안했는데, 안 지키면 ‘꿀밤, 딱밤’, ‘벌금’ 이런 걸 만들더라고요. 다 비인권적인 거예요. 저는 차라리 ‘담임과 10시간 상담’ 이런 거였으면 좋겠어요. 학기 초에 ‘저는 여러분의 인권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우리반 원칙은 이겁니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자유예요’라고 말했어요. 기본적으로 우리반은 자유로워요. 작년에도, 올해도 학생들에게는 제가 변호사였다는 얘기를 전혀 안했어요. 그런데 저희반의 한 학생이 어디서 그 얘기를 들었나봐요. ‘쌤. 어딜 봐도 변호사 같지 않은데. 쌤 그냥 쌤 같아요’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좋았어요. 저는 학칙(rule)이 아니라 가치(value)를 가르치고 싶어요. 내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데 어떻게 타인의 인권을 얘기하겠어요. 저는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양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학교에 와서 현장의 현실을 많이 느꼈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교육청에 있을 때 많이 낭만적이었구나(웃음) 뼈저리게 느꼈죠. 막상 학교에 와보니, 선생님들의 행정업무가 너무 많고 자율적인 권한은 너무 없더라고요. 우리나라는 교육과정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만들어요. 그건 교사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거예요. 어떤 수업을 할 것인가 고민할 수 있는 폭이 확 줄어드는 거죠. 저는 무조건 학교를 옹호하고 싶진 않아요. 학교에 와보니까 아직 바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배우지 않으면 아무 권리도 행사할 수 없거든요. 중세시대, 일제강점기 때는 다 사교육이었잖아요. 돈 있는 사람만 교육을 받았죠. 돈 있는 사람만 뭘 배울 수 있었어요. 헌법에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를 기본권으로 정했고, 우리 교육의 목적이 자주적인 생활능력을 기르게 하고 인간적인 삶을 살게 한다는 거잖아요. 그럼 아동청소년이 학교라는 시스템을 거부할 때 아동청소년만의 문제로 볼 것이냐, 그 사람의 교육받을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 다양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교 부적응자들을 꼭 사회 부적응자로만 보는 시선이 많잖아요.”

교사, 행정업무 많고 권한은 없어
변호사이자 교사인 나의 역할은
아이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교육
학교와 사회 연결시키는 역할도

- 선생님의 ‘장래희망’은 뭔가요.

“제가 처음 교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많이 말렸어요. 제 진정성을 별로 알아주지 않을 거라고 걱정하는 분도 많았고요. 그런데 저는 교사가 정말 좋아요. 기간제 교사의 장점은 다양한 학교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 학교도 좋은데, 1년 계약이 끝나면 이번에는 ‘입시지옥’을 제대로 느낄 고등학교에 가볼까 싶기도 하고, 특성화고에 가볼까 싶기도 해요. 저는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또 어떤 의미에선 밖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그는 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 활동 등 교육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학교와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변호사는 저에게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에요. 교육을 바꾸는 것. 아이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교육을 만드는 거요.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행복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교육이요. 교육이 아이들을 더 불행하게 하면 안되잖아요. 어떻게든 아이들 곁에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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