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평범한 나의 셋방

친구 초대는 2평, 요리는 3평부터…1평은 잠만 자는 방이죠

2019.11.05 06:00 입력 2019.11.05 09:36 수정

상 - 5평 이하 청년들의 삶

4평 원룸에 사는 김지수씨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부엌과 침실이 중문으로 분리된 구조이지만, 요리를 한 번 하면 침실에 걸린 옷까지 냄새가 밴다.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옆집에서 요리를 하다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4평 원룸에 사는 김지수씨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부엌과 침실이 중문으로 분리된 구조이지만, 요리를 한 번 하면 침실에 걸린 옷까지 냄새가 밴다.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옆집에서 요리를 하다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 1평과 5평 사이엔…사람은 살고, 사람다움은 안 산다

한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은 얼마일까.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 논쟁이 던진 질문이다. 지난 9월 서울주택공사는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면서 대학생과 청년은 5평(16㎡)형에만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사회 초년생은 5평이란 좁은 집에 살아도 되는 것이냐”는 ‘이상파’와 “현실적으로 역세권에 5평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의 ‘현실파’가 맞붙었다. 빨래 건조대 하나 마음 놓고 펴지 못하는 비좁은 방에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자취생들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역세권 청년주택의 ‘5평’은 이유가 있다. 법이 청년에게 허락한 공간 규모다. 국토교통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인 최저주거기준을 주택법에 고시한다. 1인 가구는 4.24평(14㎡)이다. 청년주택 논쟁은 5평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만큼 충분히 넓은 공간은 아니라는 점을 드러냈다. 다만 서울에 괜찮은 5평을 구하는 일이 청년들에겐 녹록지 않고, 그래서 그보다 못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을 뿐이었다.

경향신문은 1·2·3·4·5평 집(방)에 사는 청년을 만나 평수에 따라 삶의 질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비교했다. 집 전체와 가구 크기를 실측하고,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따졌다. 의식주의 하나인 ‘주’가 입고(의) 먹는(식) 것을 결정한다. 수면과 문화 생활 등 청년 건강·일상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1~5평 거주자 5명 전원이 “집이 좁다”는 점을 가장 큰 불편으로 꼽았다.

전용면적만 놓고 보면 5명 중 4명이 최저주거기준 미달이었다. 상세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는 더 많았다. 고시원에 사는 1·2평 거주자에겐 최저주거기준의 필수설비인 전용 부엌과 화장실, 목욕시설이 없다. 원룸인 3·4평 거주자의 화장실과 부엌은 제 기능을 할 정도의 크기가 아니다. 5평 거주자는 반지하에 살았다. ‘적절한 방음·환기·채광을 갖추어야 한다’는 최저주거기준 규정을 충족하지 못했다. 5평 이하의 집에서 이들은 생존할 뿐이다.

공간 제약은 ‘삶과 생활’을 제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나 취향도 생기지 않는다.

1평 고시원 거주자는 사는 곳을 “관짝 같다”고 말한다. 집이 넓어지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 ‘방이 이렇게 넓구나’ 하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최저주거기준 언저리의 3평과 4평 원룸 거주자는 집에서 요리하거나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일상을 꿈꿨다. 이들 청년은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오! 평범한 나의 셋방]친구 초대는 2평, 요리는 3평부터…1평은 잠만 자는 방이죠 이미지 크게 보기

“잠자리에 들 때마다 운이 좋은 편이라고 되새겨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권용석씨(27)는 서울 정릉동의 반지하 원룸에 산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방. 부모의 지원이 없었다면 권씨 선택지에는 없었을 공간이다. 그렇게 얻은 반지하 방은 한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는다. 책 먼지가 환기되지 않은 채 방을 떠돈다. 권씨 원룸은 ‘적절한 방음·환기·채광을 갖추어야 한다’는 국토교통부 최저주거기준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다.

권씨는 이 원룸에서 6년을 살았다. ‘5평이면 청년기에 잠깐 거쳐가는 공간으로 괜찮지 않냐’는 질문에 권씨는 이렇게 말했다. “20대 시기의 6년이면 짧은 시간이 아니잖아요. 단순히 거쳐가는 공간이니 참으라는 논리대로라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죠. 어차피 신입사원이나 군인들 처우도 조금만 지나면 나아질 테니까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5평 원룸에서 살 일이 없어 쉽게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경향신문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전용면적(화장실·부엌 포함) 1~5평 거주자를 만나 삶의 양태를 살폈다. 한 평 한 평 넓어질수록 활동에도 차이가 났다. 1평은 ‘잠만 잘 수 있는 방’이었다. 2평부터는 친구 한두 명은 데려올 수 있다. 3·4평에서 화장실과 부엌, 옷장과 세탁기가 등장했다. 5평부터는 음식을 준비하고 여러 친구를 초대할 만한 공간이 생겼다. 이 최소한의 공간마저 개인 노력과 부모 도움(월세·보증금 지원) 없이는 지속이 불가능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7년 기준 청년 10명 중 1명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거빈곤층’인 것으로 추산했다.

<b>잠만 자는, 1평</b> 대학생 박영수씨(21·가명)가 사는 1평 고시원에 가구는 책장과 책상, 의자뿐이다. 곳곳에 옷가지를 담은 박스를 놓았다. 구석엔 이불을 개 둔다. 박씨가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펼치려면 의자를 최대한 왼쪽으로 밀어놓아야 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잠만 자는, 1평 대학생 박영수씨(21·가명)가 사는 1평 고시원에 가구는 책장과 책상, 의자뿐이다. 곳곳에 옷가지를 담은 박스를 놓았다. 구석엔 이불을 개 둔다. 박씨가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펼치려면 의자를 최대한 왼쪽으로 밀어놓아야 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청년의 부엌, 요리의 자격

‘내 집에서 하루 세끼 챙겨먹는 일’은 5평 이하 공간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1~5평에 사는 5명 중 2명은 집(방)에 부엌이 없다. 부엌이 있다고 마음껏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3평부터 있는 ‘무늬만 부엌’
1·2평 고시원엔 그마저도 없어
여럿이 쓰는 고시원 화장실
벌레 나올 정도로 비위생적
4평 집 화장실은 반 평 안돼
“샤워만 하면 수건도 다 젖어”

부엌은 3평 ‘원룸’부터 등장한다. ‘무늬만 부엌’이다. 폭 115㎝의 조리대엔 전자레인지와 식료품, 물버림대가 빈 공간 없이 들어찼다. 3평 거주자 조명국씨(30)는 집이 넓으면 하고 싶은 일로 ‘요리’를 꼽았다. 요리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조씨는 “요리를 좋아할 수 있고 없고를 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선택권이 없다보니 선호가 생길 수 없는 게 문제”라고 했다.

4평에 사는 김지수씨(20)는 닭볶음탕을 해먹을 정도로 요리하기를 좋아한다. 자취방 냉장고는 닫혀 있다. 오래전 사서 넣어둔 재료 상태를 알기가 두렵다. “안 열어본 지 1년이 넘었어요.” 김씨 집은 주방과 침실이 중문을 사이에 두고 나눠진 ‘분리형’ 원룸이지만, 요리를 한 번 하면 침실에 내건 옷에까지 냄새가 밴다. 환기가 안되는 주방에 연기가 차 화재경고음이 울리는 소동도 매달 한 번씩은 생긴다.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김씨는 “신발부터 신어야 한다”며 현관 쪽으로 향했다. 조리대 옆 인덕션은 현관 옆에 있다. “일상 브이로그(Vlog)를 찍어볼까 했는데 (주방이 좁아) 조리만 부엌에서 해야겠더라고요. 방에서 야채를 다듬고, 프라이팬 설거지는 화장실 가서 하고, 밥은 침대에서 먹어야 돼요.” 한 끼 해먹으려면 방안을 누벼야 한다. 집에서 해본 최고의 ‘고급 요리’를 묻자 김씨는 “김치볶음밥?”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고시원에선 요리할 엄두를 낼 수 없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컵라면이 고작이다. 박영수씨(21·가명)가 사는 1평 고시원엔 공용 냉장고와 간이 주방이 있지만 사용해본 적은 없다. “여러 사람이 같이 쓰다보니 정리도 잘 안되고 냄새도 나더라고요.” 2평 거주자 고근형씨(22)는 신문지 더미를 ‘식탁 삼아’ 식사를 한다. 신문지에 컵라면과 맥주도 세팅한다.

2평 고시원에 사는 고근형씨는 신문지를 식탁 삼아 컵라면 등 간단한 간식을 먹는다. 고씨가 사는 고시원에는 공용 부엌도 없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2평 고시원에 사는 고근형씨는 신문지를 식탁 삼아 컵라면 등 간단한 간식을 먹는다. 고씨가 사는 고시원에는 공용 부엌도 없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5평 권용석씨가 집에서 만들어먹은 요리. 권씨는 친구들을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눠먹는 것을 좋아한다. 왼쪽은 알리오올리오와 스패니시오믈렛, 오른쪽은 스페인식 프렌치토스트 토리하스. 권용석씨 제공

5평 권용석씨가 집에서 만들어먹은 요리. 권씨는 친구들을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눠먹는 것을 좋아한다. 왼쪽은 알리오올리오와 스패니시오믈렛, 오른쪽은 스페인식 프렌치토스트 토리하스. 권용석씨 제공

“얼마 전엔 간짜장이랑 칠리콘카르네를 만들었어요.” 권용석씨가 5평 반지하 원룸에서 한 요리들이다.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다. 그럴듯한 요리 하나를 하려면 “인덕션 앞 빨래건조대와 토스터기를 치우고, 전자레인지 위 각종 향신료와 커피포트를 치우는” 대작업을 거쳐야 한다. 전자레인지를 놓고 남은 공간엔 작은 도마만 하나 간신히 들어간다. 인덕션 화구와 싱크대는 각각 한 칸씩이다.

<b>화장실 따로 없는, 2평</b> 대학생 고근형씨(22)의 2평짜리 고시원엔 개인 가구가 없다. 창문엔 맞은편 주택 때문에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앞집 형광등 불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화장실 따로 없는, 2평 대학생 고근형씨(22)의 2평짜리 고시원엔 개인 가구가 없다. 창문엔 맞은편 주택 때문에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앞집 형광등 불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적응 불가 화장실

“씻으러 갈 때마다 ‘아, 들어가기 싫다’ 생각이 들어요.” 1평 고시원에 산 지 1년이 넘었지만 박씨는 여전히 화장실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고시원 건물엔 공용 화장실 4개, 샤워부스 3개가 있다. 60명이 같이 쓴다. 하루는 샤워하러 갔다가 지네를 마주쳤다.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씻는다는 게 모순으로 느껴졌지만, 고시원에 이야기해도 해결은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다. 2평 고시원에 사는 고씨도 “한 층에 사는 사람들(16명)이 화장실 하나를 쓰다보니 아침마다 다른 층을 오르락내리락한다”고 말했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몸을 씻을 수 있는 화장실은 인간 생활에 필수요소다. 국토부 최저주거기준 역시 ‘주택 필수설비’로 상수도(지하수 이용시설)와 하수도 시설이 완비된 전용 수세식화장실·목욕시설을 규정한다. 1·2평 고시원에는 공용 화장실만 있다. 5평 미만 원룸 화장실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좁게 설계됐다.

김지수씨의 4평 집에서 화장실(1.56㎡)은 반 평이 채 안된다. 최저주거기준이 전용 화장실의 최소 면적으로 산정한 0.7평(2.4㎡)보다도 작다. 키가 174㎝인 김씨가 변기에 앉자 무릎이 벽에 거의 닿았다. “너무 좁고 답답해 문을 열어놓고 샤워하거든요. 씻을 때 환기도 잘 안되고요.”

화장실은 김씨 한 명만 들어가도 꽉 찼다. 샤워공간은 세면대를 제외하고 가로·세로 70㎝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움직임을 크게 하면 세면대나 벽에 부딪칠 정도다. 최저주거기준 주거면적에 따르면 “성인이 자유롭게 허리를 굽히는 데 방해가 없을 정도의 샤워공간”은 최소한 폭 90㎝, 길이 100㎝ 정도다. 김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좁은 공간에 샤워기랑 수건걸이가 마주 보고 있잖아요. 샤워만 하면 수건이 다 젖어요.”

5평 반지하에 6년째 사는 권용석씨도 “대학가 원룸 자체가 장기 사용을 전제로 만든 공간이 아니다. 화장실 세면대 스테인리스 부분이 녹슬거나 배관이 자주 막힌다”고 했다. 화장실 문은 고장나 잘 닫히지 않는다.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란 값을 치른 덕이다. “보통 제 친구들은 보증금 500에 월세 30짜리 방에 많이 사는데, 그런 곳은 화장실이 유리창으로 된 경우도 있더라고요. 집이 아니라 모텔 같았어요. 이곳에 이사오기 전 살았던 4인용 기숙사 화장실이 딱 그런 구조라 충격을 받았죠.” 권씨는 부모로부터 주거비 지원을 받고서야 ‘모텔처럼’ 충격적인 화장실이 있던 기숙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b>부엌 있어도 침실과 분리 안 된, 3평</b> 프리랜서 조명국씨(30)의 3평 원룸은 대학 입학 후 살았던 집 중 가장 넓다. 요리를 제대로 할 공간은 없다. 다음에 이사를 간다면 요리할 수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부엌 있어도 침실과 분리 안 된, 3평 프리랜서 조명국씨(30)의 3평 원룸은 대학 입학 후 살았던 집 중 가장 넓다. 요리를 제대로 할 공간은 없다. 다음에 이사를 간다면 요리할 수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방이 허락한 패션 취향

2평 고시원 수납장은 캐리어
새 옷 사려면 다른 옷 버려야
5평은 그나마 ‘취향’껏 옷 선택

고근형씨 옷장은 ‘캐리어’다. 2평 고시원엔 개인 수납장을 따로 둘 공간이 없다. 고씨는 캐리어에 옷을 담아 일주일에 한 번씩 근처 코인빨래방으로 향한다. 새 옷은 다시 캐리어에 담아와 하나씩 꺼내 입는다. ‘계절별로 옷을 다 넣긴 어려울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충분히 들어간다. 많이 안 사면 된다”며 웃었다. 옷은 계절별로 5벌 정도씩 있다. 고씨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극단적 미니멀리즘’이라고 표현했다. ‘원래 물욕이 없는 편이냐’는 질문에는 “물욕이 없어진 거다. 좋게 말하면 적응을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4평 원룸에 사는 김지수씨가 화장실에서 손빨래를 하고 있다. 키가 174㎝인 김씨가 화장실에 들어서면 빈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좁다. 화장실이 좁고 답답해 문을 열고 샤워를 한다.  화장실 문턱에 곰팡이가 펴있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4평 원룸에 사는 김지수씨가 화장실에서 손빨래를 하고 있다. 키가 174㎝인 김씨가 화장실에 들어서면 빈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좁다. 화장실이 좁고 답답해 문을 열고 샤워를 한다. 화장실 문턱에 곰팡이가 펴있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옷은 취향을 반영하지만 공간을 잡아먹는다. 5평 이하 청년들은 취향대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4평 김씨는 새 옷을 사려면 다른 옷을 버려야 한다. 수납공간이 부족해 서랍장을 잔뜩 샀다. 서랍마다 진공포장한 듯 옷과 화장품이 빽빽하게 쌓였다. 그 서랍장이 침대 옆, 책상 위아래를 모두 점령했다. 김씨가 모든 생활을 침대 위에서만 하게 된 이유도 여기 있다. “수납공간이 없어 수납용품을 샀더니 오히려 빈 공간 없이 채워진 느낌이에요. 방에 오면 숨이 막히듯 답답해요.”

4평 김지수씨는 원룸에서의 생활을 ‘사람답게 살려면 발디딜틈 없이 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수납장은 침대 옆과 책상 위아래를 모두 점령했다. 김씨가 모든 생활을 침대 위에서만 하게 된 이유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4평 김지수씨는 원룸에서의 생활을 ‘사람답게 살려면 발디딜틈 없이 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수납장은 침대 옆과 책상 위아래를 모두 점령했다. 김씨가 모든 생활을 침대 위에서만 하게 된 이유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화장품을 좋아하는 김지수씨의 수납장 한 칸에 가득찬 화장품들. 김지수씨 제공

화장품을 좋아하는 김지수씨의 수납장 한 칸에 가득찬 화장품들. 김지수씨 제공

빨래할 때도 골치가 아프다. 수납장과 침대 사이에 건조대를 펴면 걸어다닐 공간이 없다. ‘빨래는 모아서 일주일에 한 번.’ 건조대를 최소한으로 쓰기 위한 김씨의 생활팁이다. 세탁기는 신발을 놓는 현관 바로 앞에 있다. “빨래한 옷을 꺼내다 신발 위에 떨어지는 거예요. 100번은 다시 한 것 같아요.” 3평 조씨는 화장실에서 빨래를 말린다. “호흡기 질환이 있는데, 방에서 빨래 널고 자면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난리가 나요.”

5평에 사는 권씨는 패션에 관심이 많다. 현관문에는 실내에서 입는 실크 로브가 걸려 있다. 신발장엔 구두에 형태유지기가 꽂힌 채로 놓여 있었다. 권씨가 취향대로 옷을 입으려면 부모 도움이 필수적이다.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천안 본가로 보낸다.

<b>빨래 방 안에 너는, 4평</b> 4평 원룸에 사는 대학생 김지수씨(20)는 주로 침대에서 생활한다. 침대에서 음식을 먹고, 책을 읽으며, 머리를 말린다. 좁은 공간에 이동 수납장은 필수 품목이다. 빨래건조대 날개를 양쪽으로 다 펼치려면 수납장을 다시 옮겨야 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빨래 방 안에 너는, 4평 4평 원룸에 사는 대학생 김지수씨(20)는 주로 침대에서 생활한다. 침대에서 음식을 먹고, 책을 읽으며, 머리를 말린다. 좁은 공간에 이동 수납장은 필수 품목이다. 빨래건조대 날개를 양쪽으로 다 펼치려면 수납장을 다시 옮겨야 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집이 휴식공간이 되려면

1~5평 거주자들 “좁아 불편”
청년기 잠깐 머무르는 5평 집?
다음 집 미래도 그리기 어려워

가장 불편한 점이 뭐냐는 질문에 경향신문이 만난 1~5평 거주자 모두 ‘좁다’는 점을 먼저 꼽았다. 면적 차이는 집에 대한 생각이나 삶의 태도와도 직결됐다. 지금 생활을 한마디로 묘사해달라는 질문에 각각 “잠자는 방 이상은 아니다. 관짝 같다”(1평), “극단적 미니멀리즘”(2평), “선택권이 없으니 취향도 없다”(3평), “사람답게 살려면 발디딜 틈 없이 살아야 한다”(4평)는 답이 돌아왔다.

유일하게 최저주거기준 전용면적(5평) 이상에 살았던 권씨는 “내 취향으로 물들인 방”이라는 표현을 했다. 그의 책상 한쪽에는 와인병에 리본과 드라이플라워를 꽂은 장식이 있다. 책상과 부엌을 분리하는 파티션을 설치하고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도 붙였다. “이곳을 ‘방’이 아니라 ‘집’이라 불러요. 방이라 하면 일시적이고 단절된 거주지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1평 고시원에 사는 박영수씨. 이불을 펴고 몸을 누이면 남는 공간이 없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1평 고시원에 사는 박영수씨. 이불을 펴고 몸을 누이면 남는 공간이 없다. 유명종 PD yoopd@kyunghyang.com

‘편안한 휴식공간’에 필요한 건 적정 면적뿐만이 아니다. 환기와 채광, 방음과 냉난방, 와이파이도 필수조건이다. 1평 고시원에 사는 박씨는 옆방에 소리가 들릴까봐 방 안에서 노트북도 쓰지 못한다. 와이파이가 되는 근처 카페에서 과제를 하다 자기 직전 고시원으로 돌아온다. 4평 원룸에 사는 김씨는 아침마다 윗집에서 울리는 휴대폰 진동소리 때문에 ‘강제 기상’을 한다. 2평 고씨의 집은 중앙냉방시스템이라 에어컨을 스스로 조작할 수 없다. 고시원 사장이 퇴근한 밤 12시부터 냉방이 끊긴다. 서울이 관측 사상 최고였던 39.6도의 폭염을 기록한 지난해 여름엔 제주도 본가로 ‘피서’를 떠났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다. 3평 거주자 조명국씨는 요리를 할 수 있는 집을, 4평 거주자 김지수씨는 한쪽 벽면을 스크린 삼아 빔프로젝터로 영화 보기를 꿈꾼다. 서울시 5평 청년주택 논쟁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는 ‘청년기 잠깐 거쳐가는 공간 정도로 5평은 괜찮지 않냐’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일수록 다음 집에서의 미래를 그리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1평 고시원에 사는 박영수씨는 ‘집이 넓어지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짧지 않은 침묵 끝에 “‘방이 이렇게 넓구나’ 하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주거시설이라기보단 생존시설이죠.” 고씨는 ‘2평 고시원’을 이렇게 표현한다. 집이란 추위나 더위, 비바람을 피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다. 유일한 취미는 넷플릭스 보기인데, 방 안에서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근처 카페로 향한다. 최저주거기준(14㎡·4.2평) 이하의 삶은 취향이 소거된 삶이다.

<b>환기·채광 버리고 얻은 반지하, 5평</b> 대학생 권용석씨(27)는 5평 반지하 원룸에 산다. 책이 400권 정도다. 책 둘 공간이 더 없어 의자와 책상에 놓인 책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생활한다. 책 먼지는 반지하 방을 맴돈다. 이사를 가면 서재를 꼭 갖고 싶다고 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환기·채광 버리고 얻은 반지하, 5평 대학생 권용석씨(27)는 5평 반지하 원룸에 산다. 책이 400권 정도다. 책 둘 공간이 더 없어 의자와 책상에 놓인 책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생활한다. 책 먼지는 반지하 방을 맴돈다. 이사를 가면 서재를 꼭 갖고 싶다고 한다. (1~5평 5곳의 주거공간을 16㎜ 렌즈로 촬영했다. 협소한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왜곡이 있는 렌즈다. 사진 프레임에 가까운 부분들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좁은 공간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촬영 위치는 대체로 주거공간 입구, 입구 맞은편 침대 쪽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청년들에게 5평이면 충분할까. 고씨가 말했다. “저도 5평 원룸 살아봤지만 절대 충분하지 않아요. 조선시대라면 5평이 ‘감지덕지할 정도’가 맞겠죠. 한국이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적당한 가격에 양질의 주택을 많이 지을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 게 문제라고 저는 생각해요. 청년들도 인간답게 살아야죠.”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