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현장 노동자들 “안전장치 설치 불가능한 현장은 없어…결국 ‘돈’ 문제”

2019.11.25 06:00 입력 2019.11.25 10:47 수정

건설현장의 안전사고 원인과 대책에 관해 전·현직 건설노동자 3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크레인 기사 김상옥씨, 함경식 건설노동안전연구원 원장, 형틀목수 박재원씨(가명).  이상훈 선임기자

건설현장의 안전사고 원인과 대책에 관해 전·현직 건설노동자 3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크레인 기사 김상옥씨, 함경식 건설노동안전연구원 원장, 형틀목수 박재원씨(가명). 이상훈 선임기자

떨어지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죽었나? 안 죽었나?’ 운 좋게 추락방호망에 떨어졌지만 망에 걸렸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도 완전히 살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같이 떨어진 자재에 내가 맞는 건 아닐까?’ 3분여 만에 정신이 번뜩 들어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했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빼내 119에 신고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형틀목수 김정남씨(25)는 세 번의 추락 사고를 경험했다. 2016년 7월에는 3m 높이에서 작업면과 비계 사이의 빈 공간으로 추락했다. 2017년 4월에는 5m 높이에서 고정되지 않은 파이프를 지지대로 잡았다가 빠지는 바람에 떨어졌다. 같은 해 11월에는 시스템 비계 구조물 한쪽 끝을 밟는 바람에 자재와 함께 5m 높이에서 추락했다. 무릎에 금이 가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은 있었지만 다행히 세 차례 모두 추락방호망에 떨어져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추락 사고는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김씨의 첫 번째 사고처럼 작업면과 비계 사이로 추락하거나 안전난간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는 지난해부터 올해 9월 말까지 16건이나 있었다. 고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다리나 비계, 고소작업대에서 작업하다가 떨어진 사고도 43건이나 됐다.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발판이 뒤집히는 사고도 자주 발생했다.

전체 사고의 절반 이상이 건설현장에서 벌어졌다.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12일 전·현직 건설노동자 3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함경식 건설노동안전연구원 원장(47)은 건설현장에서 20여년간 일했다. 김상옥씨(50)는 27년째 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다. 형틀목수인 박재원씨(61·가명)는 경력 27년의 노동자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고의 원인을 정리했다.

■ 돈 때문에 철회된 ‘사다리 금지’

사다리 위 작업 중 사고 많아
노동부, 올해 1월 전면 금지
업계 “어렵다” 반발 거세자
2개월 만에 지침 개정해 완화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1일부터 사다리 위에서의 작업을 전면 금지했다. 최근 10년간 사다리 위에서 작업하다 다친 노동자가 3만8859명이고 사망자만 317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사다리를 위아래로 이동하는 통로로만 쓰라고 했다. 작업을 위해서는 작업발판이 있고 네 개의 다리가 지탱하는 이동식 비계나 말비계를 설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만약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사다리를 작업발판으로 사용하도록 하다가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이 지침이 내려지자 업계의 반발이 거셌다. 비계가 들어가지 않는 좁은 곳이나, 수시로 현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는 도입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노동부는 3월에 다시 지침을 개정했다. 협소한 장소와 가벼운 작업에 한해 2인1조로 작업하면 3.5m 이하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결국 ‘비용의 문제’라고 말했다. “어떤 곳이든 비계를 설치할 수는 있다”(박재원), “비계를 1m가 아니라 25㎝짜리로도 제작은 가능하지만 자르거나 새로 제작하면 몇 배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김상옥)는 것이다. 함 원장은 “시행도 안 했는데 업체의 항의를 받고 바꾼 셈”이라고 말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개인보다는 구조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함 원장은 “100원짜리 공사가 하도급 주면 80원이고, 그 밑에 또 내려가면 60원이고 실질적으로 맨 밑은 40~50원에 공사를 한다”며 “그러면 결국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노동시간이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일하다 보니 “안전장비 다 하고 느릿느릿 일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김상옥씨는 “한 건물을 지으려면 설비, 수도, 도장, 창호 등 여러 업체가 참여한다”며 “창문 한 개를 만들 때도 여러 업체가 와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건마다 다단계 하도급으로 내려가다 보니 빨리하고 빨리 가야 한다”고 말했다.

■ 서로 모르는 노동자들

다단계식 하도급 구조 속에서
물량 채우기 급급, 안전 뒷전
노동자들, 서로 누군지도 몰라
현장 안전교육·관리 어려워

2~3단계가 넘는 하도급이 이뤄지다 보니 노동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도 서로 모르고 작업하기도 한다. 현장 안전교육이나 관리가 어려운 구조다. 함 원장은 “심지어 한 하도급 노동자는 집에서 연락이 안된다고 우리한테 전화가 왔는데 우리도 누군지 몰라 알려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현행법상 전문업체까지만 하도급을 줄 수 있게 돼 있지만 그 이상의 하도급도 많다고 했다. 업체는 일일이 노동자들에게 노임을 지급하고 관리하기보다는 일정 금액을 주고 하도급을 맡기는 게 편하다. 일정만 압박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도급 업자들도 중간에서 이윤을 챙긴다. 만약 1인당 품삯이 24만원이라고 정해져 팀 전체 일당이 지급된다 해도 하도급 업자가 숙련도에 따라 사람마다 조금씩 덜 주면서 본인 몫으로 가져가는 구조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불법하도급을 잡으려 해도 단속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근로감독관이 나와서 보면 이게 직고용 형태로 보이는데, 자기들끼리 근로계약서 쓴 것처럼 만들어놓기 때문이에요.”(김상옥) 불법하도급 문제는 사망 사고 시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박재원씨는 “모든 현장이 원청 직고용으로 가야 사고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사망 사고 사례를 보면 6~7m 높이에서 15~20㎝의 좁은 철제빔을 밟고 이동하면서도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고 추락방호망조차 설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함 원장은 “안전대를 착용하더라도 고리를 걸 생명줄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생명줄 자체가 가설 작업이고 일이 끝나면 계속 옮겨서 또 설치해야 하는데 이것도 공사비에 들어가니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옥상에서부터 줄을 내려 작업대를 거는 달비계는 건물 외벽 청소나 도장 작업에 흔히 쓰이지만 사고도 잦다. 원칙상 작업대를 고정하는 줄과 별도로 안전대 고리를 걸 생명줄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사망 사고 사례를 보면 작업줄 하나만 걸고 일하다 줄이 끊어져 추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설치하고 해체하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려다 벌어진다”고 말했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현장 노동자들 “안전장치 설치 불가능한 현장은 없어…결국 ‘돈’ 문제”

■ 신호수 없이 움직이는 공사차량

덤프트럭이나 굴착기, 지게차 등 공사·하역 차량에 의한 사고도 많다. 후진하다가 노동자들을 치는 사고도 많고 차량이 뒤집혀 깔리는 사고도 흔하다. 재해조사 의견서를 보면 작업차량과 노동자들이 다니는 통로를 구분하지 않고, 차량 유도자 혹은 신호수를 배치하지 않았다는 원인 분석이 많이 나온다. 김상옥씨는 “내가 이 일을 30년 가까이 했는데 사람하고 기계하고 거의 같이 다닌다”며 “신호수는 뒤에다 배치하고 사진만 찍는데, 제대로 하는 곳이 5%도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호수를 장비당 1명씩 배치해야 하는데 그런 현장은 찾기 어렵다. 신호수도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관련 교육을 받고 신호방법도 공유해야 하는데 그저 형식상으로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재원씨는 “전문적인 신호수를 교육시켜야 하는데 그날그날 오는 일회성 사람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노동자가 문제 제기 가능해야”

작업계획서 작성 유명무실
안전감시단도 현장과 괴리
사람 죽어도 원청 처벌 미약
안전 투자 잘될 수 없는 구조

재해조사 의견서는 작업계획서를 쓰지 않고 사전에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빠지지 않고 지적한다. 김상옥씨는 “작업계획서를 쓰는 데가 간혹 있지만 큰 업체나 현장 위주이고, 그나마도 현장 노동자는 빼고 담당자들끼리만 맞춰서 쓴다”고 말했다. 안전감시단이 있다 해도 실제 일하는 현장과는 괴리돼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만 쓰인다는 것이다. 박재원씨는 “실제로 현장에서 안전과장이 공사과장에게 찍소리도 못한다”고도 했다.

김용균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원청의 책임이 일부 강화되기도 했지만 처음 논의와는 달리 많이 후퇴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함 원장은 “지금도 산안법에서 도급 사업 시 원청의 안전조치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처벌은 잘 되지 않는다”며 “사람 1명 죽으면 원청에는 벌금 400만원 정도밖에 안 내려진다고 하는데 이런 구조에서 사업주가 안전에 투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현장 노동자들 “안전장치 설치 불가능한 현장은 없어…결국 ‘돈’ 문제”

▶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인터랙티브 뉴스 바로가기
http://news.khan.co.kr/kh_storytelling/2019/labordeath/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