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군 궤도차와 소녀의 죽음

2002.06.22 19:13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월드컵 열기에 묻혀버렸지만 그냥 잊혀지기에는 너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하나 있다. 월드컵 한·포르투갈전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경기도 양주군 한 마을 앞의 작은 도로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 마을에 사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 2명이 친구 생일잔치에 가다가 미군 궤도차에 치여 죽은 것이다. 한·미 합동조사반은 미 2사단 소속 궤도차가 좁은 편도 1차선 도로를 따라가던 중 관제장교가 두 소녀를 발견하고 운전병에게 정지를 명령했으나 듣지 못해 그대로 치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마주오던 장갑차를 피하기 위해 소녀가 있는 방향으로 차를 급히 돌리다가 사고가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사반이 좀더 면밀하게 사고경위를 조사, 의문의 여지가 없도록 해야겠지만 문제는 한·미 군당국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좁은 도로에서 궤도차와 장갑차의 교행을 지시했고, 마을에 훈련사실을 통보하지 않았으며, 교통통제소도 두지 않은 것은 물론 경고표지판 하나 없이 훈련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양주군 다른 곳에서도 미군 탱크가 9명을 다치게 하는 등 미군기지가 있는 마을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반복됐는데도 미군당국은 어떻게 지금까지 손을 놓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1995년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으로 주일 미군사령관, 주일 미국대사는 물론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사과하고 피해자가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한 주둔군지위협정을 개정한 적이 있다. 그러나 주한 미사령부나 미대사관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고 한국 국방당국은 사회적 쟁점화를 걱정하고 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은 미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어린 딸들을 거리로 내보내야 할 것인가. 그런 위험을 ‘안보의 대가’라며 참고 살라고 할 것인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안보는 그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한참 꿈을 꾸어야 할 소녀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미군 스스로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주권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시민의 각성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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