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의 ‘취재 제한’

2007.06.05 18:02

1992년 10월1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롯데와 빙그레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열렸다. 두 팀 선발은 롯데 염종석과 빙그레 정민철. 한국시리즈 사상 첫 고졸 신인 선발 투수끼리의 맞대결이었다.

[베이스볼 라운지] KBO의 ‘취재 제한’

그런데, 염종석의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5와 3분의 2이닝 동안 3실점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다행히 롯데의 6-5 힘겨운 승리. 염종석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전날 어머니께서 잘 던지라고 장어탕을 끓여주셨는데 그걸 먹고 배탈이 났다”고 말했다. 롯데 강병철 감독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마땅히 바꿀만한 투수가 없었다”고 거들었다.

이른바 ‘염종석 장어탕 투혼’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간하는 1993년 야구연감에도 당시 상황에 대해 ‘염종석이 모친의 장어탕을 먹고 밤새 설사를 하느라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이를 악물고 한 이닝 한 이닝을 막아내자 타선이 폭발적인 타봉을 선보였다’고 묘사돼있다.

사실 배탈이 아니었다. 염종석은 팔꿈치가 아팠다. 롯데로서는 이후 경기에 등판할지 모르는 투수에 대해 팔꿈치가 아프다고 할 수 없었고 결국 ‘장어탕 배탈’을 만들어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얘기했으니 세간에는 장어탕 투혼으로 알려졌다. 정보의 왜곡이다. 신인왕을 먹었던 염종석은 다음해 10승10패를 거뒀고 94년에는 결국 4승8패로 무너졌다.

염종석이 그 한 경기 안 던졌다고 팔꿈치를 다치지 않았으리란 법, 물론 없다. 그러나 다음해 조심하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됐을테고 어쩌면 개인 통산 최다승은 한화 송진우가 아니라 염종석일 수도 있다.

이참에 야구도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을 도입할 때가 됐다. MLB.com에서는 투수의 상대팀별 성적까지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반면, KBO 홈페이지에서는 타자의 득점권 타율 조차 알 수 없다.

일본 야후 재팬만 봐도 이승엽의 볼카운트별 타격 성적을 쉽게 알 수 있는 반면 우리는 이대호가 홈런을 언제 어떻게 쳤는지 홈런 일지 조차 볼 수 없다. (사실, 알 수는 있다. 그러나 국내 통계 회사에 연간 4000만원을 내야 하기 때문에 프로야구 구단들 조차 자신의 통계 시스템을 이용한다)

통계 뿐만 아니다. 경기전 집중력 강화를 이유로 메이저리그에서 허용하고 있는 라커룸 취재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취재가 허용된 더그아웃에는 감독만 있을 뿐 훈련을 핑계로 선수들이 없다.

그래서 한국 신문에 ‘감독들의 수다’ 기사가 유난히 많은지 모른다.

한 인터넷 포탈 사이트는 ‘공유가 지금보다 아름다웠던 때는 없었다’고 광고한다. 야구 정보의 독점, 이제 어느 정도는 풀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용균기자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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