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의원

2011.05.09 19:24 입력 2011.05.09 19:26 수정
이종탁|사회에디터

“한나라는 과거 민주당, 민주당은 과거 민노당 스탠스가 맞아”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게 정계의 생리다. 때로는 정치 노선과 명분 때문에, 때로는 이해관계 때문에 합쳤다 갈라지기를 반복한다. 최근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결과를 보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친이와 친박만 있는 줄 알았던 한나라당에 비이(非李) 비박(非朴) 세력이 나타나 세를 결집하더니 친박과 손을 잡고 친이에 한방 먹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비이 비박 대열의 선두에 한때 ‘친이계 핵심’이라 불리던 정두언 의원이 있다는 점이다. 정 의원은 이번 당내 선거에서 비주류 무계파인 황우여 후보를 공개적이며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이제 친이계에서 완전히 떠난 걸까.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재·보선 패배 후 당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우리 당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이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그 책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재·보선 패배 후 당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우리 당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이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그 책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정 의원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기에 앞서 먼저 짚고 가야 할 대목이 그를 바라보는 외부인의 오해다. 세간에 그는 여전히 친이계 핵심, 또는 대통령의 측근이나 실세로 알려져 있다. 일부 언론에 그런 표현이 버젓이 쓰이기도 한다. 정치부 기자들도 정치현안이 있을 때 정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친이계 입장은 뭡니까”라고 묻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왕의 남자’였던 것은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이명박 정권의 창업공신이라고 하지만 창업과 동시에 그는 권력의 주류에서 밀려났다. 그는 정권 초기부터 ‘형님(이상득 의원)의 권력 사유화’를 정면 거론했고, 줄기차게 당내 실세(이재오 의원)를 공격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지도부를 향해 독설을 퍼붓는 몇 안되는 한나라당 의원이 그다.

그런 그가 4·27 재·보선이 있은 다음날 “정부·여당은 제2의 6·29 선언을 해야 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6·29라면 1987년 6월 당시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고 한 항복선언이다. 그렇다면 정 의원은 작금의 민심이 당시 6월 민주항쟁을 떠올릴 정도로 심각하다고 보는 걸까. 직선제 개헌과 같은 민심 수습책이 필요하다면 그는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아도 독특한 캐릭터와 당내 입지 때문에 유심히 보아오던 정 의원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된 계기다. “선거 후유증으로 당내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말 조심을 해야 한다”며 한발 빼려는 그를 설득해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 제2의 6·29 선언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멋있는 말 같아서 그냥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더라고요. 6·29 선언은 권력이 국민에 진 것이잖아요. 정권이 국민을 이기려 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또 다른 의미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전임자가 자기 희생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바보가 됐잖아요. 보세요, 6·29 선언을 자기가 했다고 하는 사람이 100명이 넘어요. 그런데 그중에 전두환 대통령은 안들어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그가 했는데…. 그러니까 레임덕 막는 데 연연하지 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이겁니다. 정권 재창출이 안되면 우파진영으로선 정말 우려되는 바가 크거든요. 이 정권에서는 전임 대통령이 자살까지 했어요.”

역시 듣고보니 의미심장한 말이다. 우파의 재집권이 실패하면 무슨 일 일어날지 모르니 현직 대통령이 레임덕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자기 희생을 하라는 주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서 기분 좋을 리 없는 말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하란 말인가요.

“뭐 하나를 폼나게 하라는 얘기는 아니고요, 그런 자세로 국정에 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들이 회전문 인사 하지 말라, 하면 하지 말아야죠.”

- 이번 재·보궐 선거는 왜 졌다고 보십니까.

“한마디로 민심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말로는 민심이 천심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죠. 각론으로 가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인사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 정 의원께선 이 정부 출범 후 줄곧 정권비판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당내에서 왕따가 됐습니까, 아니면 동조자가 늘어가는 편입니까.

“제가 정부출범 초기 형님문제를 거론하면서 쉽고 편한 길보다 어렵고 험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불편해합니다. 제 근처에 있다가 무슨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 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저를 이해하고 존재의 필요성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고위원도 된 거 아니겠어요.”

그는 2선 의원이다. 두 차례 의원을 하면서 그 흔한 ‘부(副)’자 들어가는 당직 하나 못맡은 사람은 한나라당에서 정 의원 혼자밖에 없다고 한다. 지난해 당 대표선거에 출마해 4위로 득표, 최고위원이 된 것은 “당에서 아무런 역할도 안 주기에 자리를 따낸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 결국 권력다툼 때문 아니었나요. 인수위 때 이상득 의원 측과 틀어지는 바람에 밀려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여러 가지 구체적인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 지금 시간 많이 지났습니다.

“아니, 이 정권 끝난 뒤에요. 또 시간 지나도 할 수 없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총선 전에 이상득 형님이 나서면 안된다 얘기했고, 그게 관철이 안되었죠. 한가지만 얘기하면 인수위 때 있었던 일 중에 국세청 사건이 굉장히 안좋았어요.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이 ‘이명박 파일’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당신이 한 짓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끝내 안내놓고 저를 오히려 모함했어요. 마치 제가 대통령 가족의 자료를 뒤진 것처럼. 그런 거 저런 거가 섞여서 불편한 관계가 됐어요. 그 정도만 얘기할 게요.”

- 당시 한 청장이 이명박 파일을 만들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나요.

“우리가 그 정도는 알죠. 국세청 내부에서 얘기해주니까요.”

정 의원을 권력 핵심에서 멀어지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이명박 파일’을 둘러싼 갈등이었다는 얘기다. 이 파일에 무엇이 담겨있었고, 한 전 청장은 그걸 어디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궁금증이 일지만 정 의원이 답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세청장이 된 한상률씨가 이명박 정부 들어 유임될 때 이 파일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었겠지만, 권력의 구중심처에서 일어난 일이 세상에 드러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믿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 재·보선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의 최고위원으로서 패배를 예상했나요.

“물론이죠. 그거 모르면 바보죠. 작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는데 그 후 득점은 없고 실점만 했잖아요. 그러니까 예상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뻔한 거죠.”

- 선거 전 한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지면 지도부 교체 이상의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고 했더군요. 이건 무슨 의미입니까.

“세대교체라고 하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환골탈태라는 말을 쓴 것뿐입니다. 그리고 사람만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죠. 우리 사회가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할 때 가장 크게 달라진 게 무어냐 하면, 양극화입니다.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 과거의 우리 스탠스(입장)는 현실과 안맞습니다. 지나간 옷이 안맞는 것처럼요. 당내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한나라당은 과거 민주당 스탠스를 따라가고, 민주당은 과거 민노당 스탠스로 가야 한다고요.”

- 전반적으로 좌클릭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설 땅이 없어요. 그런데도 한나라당에는 여전히 보수의 가치 운운하며 옛날 사고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대기업은 수조원씩 이익을 내지만 비정규직은 늘어납니다. 그런데 기업에 추가감세를 또 해준다고 하잖아요. 그게 지금 시대에 맞아요? 그러고도 선거에서 이기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저는 이해가 안갑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가 여당인지 야당인지 혼동될 정도다. 감세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정책 중 하나인데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좌우를 넘나드는 그의 행보는 2009년 외국어고 정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민주당은 기득권 세력이 두려워, 한나라당은 ‘좌파정책’이라고 생각해 입밖에 내지 못한 ‘외고폐지’를 그가 들고 나와 여야 모두를 머쓱하게 만든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기회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적 역학관계가 아니어도 정책적인 면에서도 대통령과 반대되는 길로 가는 것이다.

-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졌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요. 이제 정말 친이계 아닌가요.

“저는 친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권하면서부터 동질성이 없어졌거든요. 아, 비박(非朴)이라는 공통점은 있네요. 보세요, 친박은 박근혜 전 대표를 비판하는 일이 없잖아요. 하지만 친이는 제각각이거든요. 어쨌거나 저는 분명히 친이 아니죠. 얼마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내 정치를 하겠다, 내 갈 길을 가겠다고요. 대통령을 비판할 건 비판하고 지원할 건 지원하는 거죠. 그렇게 분명히 하고 정치를 해야지, 애매하게 하는 것은 생리에 안맞아요.”

- 대통령이 섭섭해 하지 않습니까.

“모르겠어요. 대통령과 별로 소통을 안하니까. 뭐 섭섭하겠죠. 안그러겠어요? 아니 그래도 제가 섭섭한 게 더 많죠. 사찰까지 당했으니까요.”

- 1년에 몇번씩은 청와대 가서 만나지 않나요? 그런 얘기 안합니까.

“그동안 몇번 가긴 했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만나는 것은 의미없고, 둘이 만난 적도 있는데 그런 얘기는 안합니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한번도 ‘당신 왜 그래?’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 저 또한 ‘이래서 이럽니다’라고 말할 기회가 없었죠.”

- 그거 의외네요.

“그렇죠. 의외죠. 소통에 문제가 많은 거죠.”

대통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그는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사랑이 깊으면 미움도 크다고 했는데, 그 때문일까. 아무리 정치가 살아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정 의원이 친이로 돌아갈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희박해보인다. 그를 비롯한 비이비박 세력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앞으로도 주목대상 1순위다.

다음은 소셜네트워크(SNS)로 들어온 질문을 던질 차례다. 경향신문 온라인 편집실에서는 인터뷰를 만 하루 앞둔 시점에서 트위터와 미투데이에 ‘정두언 의원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받는다’란 공지를 띄웠다. 여기에서 들어온 질문을 간추려왔다고 설명했더니 정 의원은 “이미 보았다”며 응답했다. 정 의원 역시 트위터 애용자인 것이다.

- 첫번째 질문은 이렇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어떤 점이 좋아서 친이계가 되었나요. 지금도 후회없나요.

“제가 이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공무원 그만두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져 백수생활을 하던 2001년입니다.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는데 서울시장 출마를 앞둔 그 분이 문병을 왔죠. 그때 저는 <신화는 없다>란 책을 읽고 그 분에 반했습니다. 그를 도와 신화를 완성해보고 싶었죠. 그렇게 이명박 시장이 당선됐고, 저는 정무부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백수에서 부시장, 국회의원이 된 게 다 그 사람 덕분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예요. 내 뜻이 안받아들여졌으니까 내 길을 가는거죠. 대통령과의 관계, 후회는 없습니다. 아쉬움이 남을 뿐이죠. 많이.”

- 두번째 질문입니다. 이재오 의원이 “젊은이들이 한나라당을 그냥 싫어한다”는 말을 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정말 젊은이들이 이유없이 싫어하는 거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말에 대한 댓글이 다음 아고라에 5000개쯤 달린 거 봤어요. 소통의 중요성을 새삼 느낍니다. 소통이 무엇이겠어요. 한마디로 역지사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거예요. 한나라당이 대학생 입장에서 생각해봤느냐, 그럴 능력도 없지만 노력도 안합니다. 제가 얼마전 서울대에 가보았는데 플래카드에 ‘이명박 독재자’라고 쓰여있어요. 처음엔 이해가 안갔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알겠어요. 기준이 다른 거예요. 우리 때는 김근태 잡아가면 독재자였지만 지금은 김미화, 김제동 출연못하게 하면 그게 독재자인 거예요. 세상에 이유없이 그냥 싫어하는 게 어디 있겠어요. 제가 그랬어요. 한나라당에 대해 20대는 재수없다, 30대는 죽이고 싶다, 40대는 관심도 없다고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 좀 해보라고요.”

-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 한나라당에서 노 대통령을 비하하는 연극을 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거기 출연진이었는데 지금도 잘했다 생각하는지요.

“풍자연극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못했죠. 그것도 역지사지를 못한 거거든요. 노 대통령이 국회 들어와 연설할 때 제가 안일어났어요.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왔을 때 민주당 사람들이 안일어나더라고요. 그걸 보고 제가 반성을 했죠.”

- 한나라당 의원한테는 궁금함 자체가 없다, 빨리 이 정권 끝나기만을 바란다, 부탁이라면 임기 동안 아무일도 안해달라는 거다, 이런 아주 시니컬한 코멘트도 있습니다.

“그게 노무현 정부 때 우리가 한 말이에요. 그 소리 그대로 똑같이 듣는 거예요. 그런 정서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지금 이명박 정권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니까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진 거죠. 물론 심한 표현이지만 왜 그런 상황에 와있는지 처절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종탁이 만난 사람]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의원


앨범 4집 낸 가수… 탤런트 응모했다가 아내 반대로 포기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사진)에게 휴대전화를 걸면 통화연결음으로 어느 노래가 나온다.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어 ‘이게 뭐지?’하고 듣다보면 목소리의 주인공이 정 의원이다. 자기 노래인 것이다. 실제 그는 가수다. 2005년 데뷔해 지금까지 앨범을 4집이나 냈다. “연예인하다가 국회의원된 사람은 있어도 국회의원하면서 연예인된 경우는 내가 처음”이라고 자랑한다. 대학 다닐 때 그룹사운드를 했는데 당시 ‘나 어떡해’로 유명한 ‘샌드페블즈’보다 “더 잘 불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탤런트가 될 뻔도 했다. 행정고시를 거쳐 공무원 생활을 할 때 방송사에서 드라마 <토지>의 배우를 공개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아내 몰래 응시해 8명이 남은 최종 단계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때 주위의 귀띔으로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부인이 “나는 탤런트랑 결혼한 게 아니다”라며 눈물로 반대해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이때 뽑힌 여배우가 최수지다.)

그래도 그는 “정치가 내 적성에 가장 맞는 것 같다”고 한다. 정치는 종합예술이어서 모든 것이 다 쓸모가 있는데 자신의 연예인 기질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어릴 적 유복하게 자란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광주 출신 6선 국회의원이던 정성태 의원의 운전기사를 했으나 월급을 꼬박꼬박 집에 가져다주는 착실한 가장과는 거리가 멀었고, 집안 살림은 어머니가 온갖 장사를 해 간신히 꾸려야 했다. 어린 두언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은 아버지가 모는 자동차의 주인, 정성태 의원이었다. 큰아버지라 불렀던 그는 키 크고 성격 호방하고 소탈한 정치인으로 두언을 보면 “너 공부 잘한다면서”하며 어깨를 두드려주곤 했다. 그때마다 두언은 ‘나도 커서 꼭 큰 아버지처럼 돼야지’하며 마음먹곤 했다.

정 의원의 역할모델인 큰아버지는 정 의원이 2000년 공직에서 사표내고 국회의원 선거 출마차 인사를 가자 “잘해보라”며 “이왕 정치하려면 대망을 가져야 한다”고 격려했다. 첫 출마하는 사람에게 대권의 꿈을 가지라고 주문한 것이다. 당시에는 황당했지만 대망을 가진 사람과 안가진 사람은 몸가짐이 다르다는 점에서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고 정 의원은 말했다. 그럼 정 의원도 대권에 도전할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정두언 의원은
◇ 약력

△1957년생 △경기고·서울대 무역학과 △국민대 행정학박사 △행정고시 24회 △국무총리 정보·공보비서관 △서울시 정무부시장 △17대 대통령 선거 이명박 후보 전략기획 총괄팀장 △17대 대통령 당선자 보좌역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수상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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