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불온한 펑크 로커 통해 남한의 반복되는 문화탄압 투영”

2012.03.12 21:27 입력 2012.03.13 15:52 수정
이로사 기자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전 기획한 오도함·박준철

지금 남한에서 ‘북조선’을 자세히 거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온하다. 그러나 불온한 것을 취하고 기성에 저항하는 것이 펑크의 미덕. 인디 펑크록밴드 파블로프의 멤버인 동시에 공연·전시기획팀 더아웅다웅스의 일원이기도 한 고교 동창 오도함(25)과 박준철(25)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 과연 북한에도 펑크 로커가 존재할까? 있다면 그는 어떤 계층의 사람일까?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사로 노래를 하며, 어느 곳에서 어떤 공연을 할까.”

우연히 꺼낸 질문은 술이 깨고 나서도 머리를 맴돌았다. 그것은 “꽤나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수상한 씨앗”이었다. 뭔가 해보자고 생각했다.

더아웅다웅스의 오도함(왼쪽)과 박준철이 전시 설치물 중 하나인 창살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 하면 정치·군사 이야기밖에 없어서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놀고 춤추고 모이고 먹을까 하는 게 궁금했다”며 “리성웅 시나리오 사실 분을 적극 구한다”고 말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더아웅다웅스의 오도함(왼쪽)과 박준철이 전시 설치물 중 하나인 창살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 하면 정치·군사 이야기밖에 없어서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놀고 춤추고 모이고 먹을까 하는 게 궁금했다”며 “리성웅 시나리오 사실 분을 적극 구한다”고 말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펑크록은 기성세대와의 마찰열을 동력원으로 하는 장르예요. 그런 고민을 공유한 상황에서 북한이란 주체사상 국가의 펑크 로커를 ‘가정’해보기 시작한 거죠.”

일단 이 불운한 가상의 펑크 로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리성웅.’ “최대한 멋있고 대단해 보이는 이름을 지으려 했고, 짓고 보니 영웅적·저항적 상징성을 갖기에 딱 적당한 이름”이었다.

이후엔 연구, 조사, 협업의 과정을 거쳤다. 동구권의 록 음악 신에 대해 조사하고, 러시아의 전설적 로커 빅토르 최와 당시 소련의 상황을 알아보고, 북한에 펑크록이 존재했을 법한 시기, 그것을 연주했을 법한 계층, 가사들을 구성해 나갔다.

탈북자들도 적극적으로 만났다. 이들이 탈북자들과 ‘록’에 대해 공유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펑크, 록이란 말 자체를 모르는 분이었어요. 북한에서도 술을 마실 때 기타를 치는 게 인기가 좋다고 해요. 유행가들을 부르는데 원래는 ‘지나간 사랑아~’ 하는 고운 노래인데 술에 취하면 ‘지나간~! 사~ 랑아아!’ 하고 쇳소리를 섞어서 악을 쓰면서 부른다고요. 그러면서 그게 바로 록인 것 같다고. 그분은 펑크도 록도 모르는 분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통일부 자료실에서 봤는데 북한에선 쇳소리를 섞어 부르는 노래는 가락의 품격을 저하시킨다며 금지하고 있거든요.”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전 포스터.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전 포스터.

동료 인디 밴드들에게 리성웅 이야기를 들려주자 이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리성웅’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렇게 ‘리성웅 연대기’라는 한편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전은 10팀의 인디 밴드들이 이 이야기를 퍼포먼스, 무대 설치 등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탄생, 활약, 몰락 세 부분으로 이뤄져, 한번 왔다 가면 끝인 보통의 전시와 달리 3번을 와야 완결된다.

이를 테면 ‘밤섬해적단’은 감옥 창살 안에서 공연한다. 밤섬해적단이 생각한 리성웅은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사람”이었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음흉한 노래를 만들고, 주변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 농담을 계속하다 보위부에 잡혀가게 됩니다.” 이들이 공연을 하는 감옥 앞에는 러시아 전기고문 비디오 테이프, ‘김정일 카섹스’ 카세트 테이프 등 ‘불온한’ 증거품들이 진열된다. 이들은 이것을 “ ‘북한판 박정근’의 이야기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서교그룹사운드’의 경우 리성웅을 ‘놀세족’(평양의 오렌지족)으로 설정했다. “평양의 창광거리에서 야마하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며 볼링을 치는, 방약무인한 고위층 자녀” 중 하나인 셈. 이들의 무대는 창밖으로 평양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호텔방이다. 서구의 팝음악을 북한말 가사로 노래한다.

결국 이들의 전시는 북한의 한 불온한 청년을 ‘재현’하는 데서, ‘우리 모두가 리성웅이 아닌가’ 하는 고민으로 나아간다. “북한의 리성웅을 통해 사회에서 불온한 청년을 관리하는 방식, 음악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게임 셧다운 제도, 웹툰의 공개적 검열, 여성가족부의 음악 사전 검열 등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리성웅의 일대기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동구권에서 일어난 문화 탄압 사례가 지금 한국에서도 반복되고 있어요.”

가상의 인물 리성웅은 체제 속 억압된 개인을 투영하는 불온한 아이콘인 셈이다. 지금 이들은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초기 한국 펑크 신의 이야기들을 모으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 펑크록의 역사를 저희의 시선으로 접근해보고 싶어요.”

전시는 17일부터 4월18일까지 아트선재센터.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지원하고자 시작된 기획공모 ‘아트선재 오픈 콜’의 첫번째 선정작이다. (02)733-8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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