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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가 세력화하기엔 통일된 이념이 없다, 그들은 배설을 할 뿐”

2013.06.06 22:18 입력 2013.06.06 22:51 수정

(4) 일베는 ‘세력’으로 진화할 수 있나

“극단적으로 쏟아내는 박탈감… 표현의 규제 앞서 원인에 주목해야”

‘5·18 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과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폄훼, 여성·외국인·다문화가정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 표출 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는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진화할까.

경향신문은 지난 5일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이길호 문화인류학 연구자, 최태섭 문화평론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등 전문가 5명과 함께 한국 사회의 ‘일베 현상’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아직 통일되고 정제된 이념이 없는 일베가 오프라인상에서 정치세력화되는 것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특정 정치세력의 성장동력이 될 우려는 있다고 봤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사이트 폐쇄 등 법적인 강제조치는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적절치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다만 소수자들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은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통해 막아야 한다고 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빈약한 복지 등 일베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제대로 인식하고 개선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재승 건국대 교수·이길호 문화인류학 연구자·최태섭 문화평론가·김민하 정치평론가·정재원 국민대 교수(왼쪽부터) 이미지 크게 보기

이재승 건국대 교수·이길호 문화인류학 연구자·최태섭 문화평론가·김민하 정치평론가·정재원 국민대 교수(왼쪽부터)

▲ 삶이 피폐할 때 등장한 나치즘·파시즘처럼
온라인상에 나타난 한국 사회 모순의 집합체

▲ 불안정한 젊은 세대가 일베로 몰려드는 이유
정치권·기득권 각성해야

- 인터넷상에서 ‘보수 우익’의 논리를 선동하며 영향력을 확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일베가 오프라인상에서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진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최태섭 = 세력화가 되기에는 아직까지 일베 이용자들에게 하나의 ‘이념’이 없다. 최근 일베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한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를 ‘종북’이라고 비판하며 논쟁이 붙었다. 사실 한국 사회의 어느 누구도 보수 우익의 대표적 논객인 조 대표에게 종북이라고 할 순 없다. 그런데 일베에서 조 대표에게 종북 타이틀을 붙였다는 것은 아직까지 이들이, 자신들을 하나로 묶을 이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이 5·18을 폄훼하는 주장들도 그동안 우파 담론에서 나왔던 이야기 외에 새로운 것은 없다. 기존에 나왔던 주장에 대해 표현을 혐오적으로 할 뿐이다. 배설에 가까운 형태다. 일베가 오프라인으로 나올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일베의 마지막 꿈은 자기들도 대규모 ‘촛불시위’를 열어보는 걸 텐데, 못 연다.

김민하 = 오프라인으로 못 나온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일베가 갖고 있는 ‘우린 그냥 쓰레기’라는 마이너 정서는 민중주의적 정서라고 볼 수도 있다. 민중주의적 하위문화의 정서가 매우 긍정적, 생산적으로 나타난 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이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일베와 똑같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경쟁 후보였던 이회창씨를 ‘이회충’이라고 부르고, 열심히 사진 합성을 하면서 놀았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끈 요인 중 하나로 이어졌다. 지금의 일베는 그 대상이 ‘광주’이고 ‘민주화세력’인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이상한 사람들이 출마하는 광경을 본다. 태극기나 독도를 뒷배경으로 하고 나와서 핵무장을 하자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우스개의 대상이지만, 어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일본의 유신회나 프랑스의 국민전선처럼 하나의 형태로 세력화되었을 때 일베 구성원들이 그 안으로 편입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재원 = 아마 일베 자체가 하나의 조직이 되거나 정치권력을 갖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세력들의 정치적 ‘토양’이 될 수는 있다. 일본에서도 재일 조선인(한국인)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주장하는 극우세력인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재특회의 토대가 된 인터넷 우익논객들은 과거엔 돈이 없었는데, 일본 보수 본류들이 도움을 줌으로써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됐다. 반한류 시위에 수천명이 참가하고, 그 연령층이 굉장히 다양해졌다. 과거 일본에서 우익이라고 하면 할아버지들을 떠올렸지만 사회경제적 불황이 오래 이어지는 상황에서 젊은층에 우익이 어필을 했다. 그 흐름이 현재 한국과 유사하다. 일베가 토양이 되어서 한국에 새로운 우파정당이 나올 수도 있고, 기존의 보수정당이 일베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길호 = 일본의 재특회나 프랑스의 극우정치인 르펜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베 등에서 나올 수는 없다고 본다. 애초에 일베의 제1원칙은 ‘친목(뜻이 맞는 회원들끼리 특정 모임을 만드는 것)’하지 말자는 것이다. 일베가 오프라인화될 수 없다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일베는 이용자들이 오프라인상에서 친목모임을 갖게 되면 배타성이 생기고, 이는 새로운 이용자들의 진입을 막아 결국은 일베가 망한다는 것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다. 일베 같은 형태의 사이트들에서는 계속 이 같은 내적 제동이 걸리기 때문에 오프라인 세력화가 되기엔 어려울 거라고 본다. 만약에 그 규칙이 무너진다면 그건 더 이상 일베가 아닌 게 되고, 일베에서 주요하게 활동하던 상당수는 다른 데로 옮겨갈 것이다.

- 일베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적 폄훼나 여성·외국인·다문화가정 등 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들이 문제가 되면서 ‘표현의 자유’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재승 =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말’은 사회를 바꾸는 힘을 갖고 있는 만큼 국가폭력의 희생자나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공격적인 발언들을 단순히 표현의 자유 문제로만 접근해 해석해서는 안된다.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에는 “전쟁 선동과 증오 고취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전쟁과 집단학살 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범위에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일베의 표현)’라는 발언을 했다고 해서 형사처벌하는 것은 맞지 않다. 표현의 강도와 조직성을 따져서 규제를 해야 한다. 유럽에서도 단순히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로 600만명이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했다고 처벌하진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 같은 내용의 책을 내면 처벌된다.

최태섭 = 표현의 자유라는 접근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일베의 문제를 표현의 자유라는 ‘틀’로 끌고가는 순간 논리적 함정이 생긴다. 일베에서 하는 말이 “왜 ‘쥐박이(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는 되는데 ‘노알라(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는 안되느냐, 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은 희화화할 수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희화화할 수 없느냐” 등이다. 만약에 모두 공평하게 사자에 대한 희화화를 하지 말자고 하면 죽은 이에 대해선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게 돼버린다. 저항적 표현 자체를 막아버리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주체가 법이 되는 거다. 어떤 종류든 법적 규제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정재원 = 일베 내의 다양한 발언들을 하나로 묶어, 이를 통틀어서 표현의 자유 문제로 끌고가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일베의 혐오적 발언들은 카테고리별로 나눠서 봐야 한다. 크게 역사적 사실, 죽은 사람, 여성과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 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법적 대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 문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어주면서도 명확하게 잘못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발언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유럽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면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극우정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민주당이 제시한 일베 폐쇄는 그 자체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대응이다.

김민하 = 일베 안의 발언을 사이트 폐쇄와 같은 제도적 해결 방식으로 푸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공감한다. 다만 일베가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원인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인터넷에서 ‘김치녀’ 같은 극단적인 언사까지 동원해 여성을 비하하는 이야기들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극단적인 표현들은 일종의 ‘경쟁’이라고 본다. 남들보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쓴 뒤 느끼는 자존감, 인정받고 싶은 욕구, 또 거기에 도전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인정욕과 자존감 형성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그런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정치권이 생산적이고 올바른 방식으로 풀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 밖에서 파괴적, 파탄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이길호 = 표현의 자유는 사적 영역에선 성립이 안된다. 표현의 자유는 공적 영역에서 우리가 얼마나,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일베를 보면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는 형식이 많다. 일베 이용자들에게는 일베가 일종의 ‘사적 영역’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다보면 여자부터 정치까지 별별 주제가 다 나오는 것처럼 일베도 그렇다. 문제는 접속과 링크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적 영역에서 우리끼리 술자리에서 말하듯이 하는 건데, 거기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려면 일베의 이야기들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린 다음에 처벌을 논의해야 하는데, 그럼 문제가 어그러진다. 일베 이용자들의 행동양식을 고려했을 때 표현의 자유라는 틀로 접근하는 것은 맞지 않다.

최태섭 = 일베 이용자들이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첫째는 박탈감, 둘째는 쾌락이다. 박탈감의 측면에서 이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민주화세대, 여성일반,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다. 일베는 민주화의 역사 안에서 자기를 피해자라고 인식한다. 자기들은 태어나보니까 딱히 주워먹을 것도 없었는데 민주화세대들이 맨날 자기들한테 와서 ‘꼰대질’이나 하니까 열받는다는 말이다. 일베에게 어떻게 일베를 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있다. 촛불시위 때 그렇게 됐다는 거다. 자기도 노무현 지지자였는데, 광우병 촛불시위 때 ‘어, 이건 아니지 않아’ 했다가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에서 욕먹고 상처를 받았는데, 일베에 와보니 나랑 똑같은 애들이 있다는 거다. 일베 이용자들도 공적 담론에서 영향력을 갖고 싶어한다. 지금 민주화를 공격하는 것은 일종의 ‘블루오션 전략’이다. 민주화는 아직 깨지지 않은 신화고, 아무도 거기에 돌을 던지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막 돌을 던지기 시작하니까 언론에서 다뤄주고, 민주당에서 뭐라고 하기 시작했다. 일베 이용자들은 아마 지금 너무 행복할 것이다. 날 좀 봐달라고, 봐달라고 하는 사람들인데 하루에 기사가 수십개씩 나오니까.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이재승 = 일베가 한국 사회 안에 있는 어떤 권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민주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지난 정부부터 뉴라이트를 동원한 교과서 파동, 5·18 폄훼 등으로 나타났다. 소수자에 대한 일베의 공격은 한국 사회에 확산되어 있는 반인권적인 사회관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엄청나게 권력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프랑스의 폴리송이라는 교수가 르몽드에 홀로코스트가 집단학살이라는데 그게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후 폴리송은 리옹대의 문학교수직에서 해직되고 벌금도 물었다. 폴리송이 자유권위원회에 청원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치전범뿐만 아니라 나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것도 처벌했다. 처음에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접근했다가 나중에 ‘대중선동죄’라는 것을 들여왔다. 대중강연 등 일정한 방식으로 나치 체제를 찬양하는 것,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을 처벌토록 했다. 피해가 있느냐, 없느냐는 따지지 않고 처벌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인터넷상의 증오적 표현을 규제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5일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가 향후 일본의 넷우익처럼 진화할 가능성이 있을지에 대해 논의해보는 집담회를 마련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경향신문은 지난 5일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가 향후 일본의 넷우익처럼 진화할 가능성이 있을지에 대해 논의해보는 집담회를 마련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 일베도 유럽에서 홀로코스트 부정이나 나치 찬양이 처벌받듯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정재원 = 카테고리별로 나눠서 대응해야 한다. 여성이나 외국인, 다문화가정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 등은 차별금지법이나 인종차별금지법 등과 같은 법을 만들어서라도 대응해야 한다. 예전에 스위스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경기 중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해 팀에서 퇴출을 당한 일이 있다. 그리스 육상선수도 흑인 비하 발언을 했다가 퇴출당했다. 중요한 것은 경기 중에 바로 이들을 소환하도록 한 나름의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법적 규제를 통해 ‘너무 너희들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꼭 일베라는 하나의 사이트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온라인상에서의 표현을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최태섭 = 일베 등을 처벌하는 법을 섣불리 만드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법을 만드는 순간에 그건 그대로 금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법이 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꼭 수긍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부적으로 일베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활동할 수 있다. 법이 사람을 바꿀 수 없다. 지금의 일베가 문제가 안된다는 게 아니다. 이게 어떤 문제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일베는 자기들끼리 날뛰는 게 유일한 목적이다. 왜 날뛰고 싶어하느냐, 이들이 굉장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온 사회가 일베를 비판하니까 일베 이용자들끼리는 더 결집한다. 일베가 이렇게 관심을 받고 ‘좌빨’들이 일베를 욕하는 거 보니까 자신들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들과 어떻게 대화를 시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길호 =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통한 규제를 이야기하려면 인터넷을 공적 영역으로 규정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안되니까 애매한 거다. 일베 이용자들이 영향력을 넓히고 싶어한다고 해서 사적 영역으로 안 보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이들이 진짜로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싶어했다면 지금과 같은 식의 저급한 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바깥에 가서 뭘 해야 한다’ ‘영향력을 넓혀보자’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우리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다수였다’ 같은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좌파적인 목소리에 눌려왔었는데 사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 일베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

이재승 = 진실이란 것은 날마다 도전받고 깨어남으로써 살아남는 것이지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국가의 권력이고, 국가권력은 권력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일베에 대한 법적인 규제는 자제하거나, 한다면 굉장히 정밀하게 되어야 한다. 1977년 미국 시카고의 소도시 스코키시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이곳은 유태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도시인데, 거기에 미국의 네오나치 당원들이 “유태인은 떠나라”는 인종차별적 시위를 하려고 계획했다. 그래서 시 당국이 시 조례를 만들어 집회를 못하게 했다. 법원도 폭력선동이라고 해서 집회를 못하게 했다. 그런데 미국 연방대법원은 그 결정을 번복하고 시가 만든 조례도 무효화시켰다. 표현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본 것이다. 그럼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됐을까. 도시 주민들이 그 집회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맞섰다. 그러자 네오나치 당원들이 더 이상 집회를 하지 않겠다며 물러갔다. 문화적인 투쟁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이 증오 같은 것을 극복하는 방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김민하 = ‘2030세대’들이 교육과정에서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성과 같은 ‘가치’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교육과정에 그런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입시위주의 교육 때문에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넘어간다고 본다. 교육과정에서 그런 내용들을 강화하면, 일베 내에서의 자극적인 표현들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선까지는 방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재원 =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삶이 피폐해질수록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등장한다. 특히 요즘엔 인터넷 등 서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져 극단적 주장이 급속히 확산될 우려도 높아졌다. 사회경제적인 민주화, 복지 부분이 강화되면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베는 과거부터 한국 사회에 있었던 문제점, 모순의 집합이다. 정치제도적인 민주화는 됐는데 사회경제적, 복지 부분에서의 민주화는 거의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불안정 노동을 하는 수많은 젊은 집단들이 생겨났다. 인권의식, 남녀평등이 강조되면서 그동안 사회적으로 가부장적 권력을 누려왔던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느끼게 됐다. 민주정권에 대한 기대는 많았는데 자신은 여전히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고, 그런데 지켜야 될 것들은 너무 많아졌다는 것에 대한 불만들이 폭발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결국 일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은 경제민주화나 무상복지 실현 등을 통해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민하 = 일베는 정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거 유럽의 사민주의가 중도의 길을 선택하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차라리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 잘할 수 있는 우파를 찍겠다”고 했다.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이 이민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를 표현하면서 행동이나 생각이 급진적인 이들이 국민전선을 더 많이 지지하게 됐다. 젊은이들을 일베로 몰리게 하는 에너지에 대해 정치권이 충분히 인식하고 각성해, 대중에게 정치적으로 다른 선택들을 제공해야 한다.

최태섭 = 전 사회가 총체적인 반성을 해야 한다. 지금 모든 언론이 일베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한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저널리즘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기사화하니까 그대로 공식화가 되어버렸다. 민주화세력도 반성을 해야 한다. ‘민주화·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화·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삶에 대한 태도다. 일베 이용자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굉장히 파괴적이다. ‘어차피 난 쓰레기니까’ 하는 식이다. 이런 문제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극도의 소외감을 느끼고,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정재원 = 일베를 두고 ‘언론이 호명(의미를 둘 가치가 없는 집단에 의미를 부여)했다’ ‘정치권이 호명했다’고 하는데, 거꾸로 진작에 나왔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늦게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미 쌓여가고 있었다.

이길호 = 일베 이용자들에게 ‘왜 일베를 하게 됐느냐’고 하면 공통적으로 ‘일베에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나름의 ‘팩트주의(사실에 대한 추적)’다. 그렇다면 이들이 잘못된 사실을 옹호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단순히 교육의 문제일까. 유럽에서도 아무리 교육을 해도 르펜과 같은 극우정치인이 나온다. 결국은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훈계조로 다른 의견을 이야기했을 때 ‘너는 잘못됐어’ 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물론 어떤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합의되어야 할 가치는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선 평범한 사람들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일베는 우리 사회가 계속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 시리즈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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