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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 태어나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해

입력 : 2015.09.04 20:59:21 수정 : 2015.10.02 20:39:51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해

‘미개한’ 한국…“공동체 해체, 청년들 노예 삶”

▲붕괴된 사회 시스템
공동체의 온정도 식어버렸다
남은 건 질시와 냉소뿐

세월호 참사 악성 댓글을 읽으면서
메르스에 대처하는 국가를 보면서
국민도 정부도 ‘미개한 존재’라며
청년들은 ‘헬조선’에 고개 끄덕인다

“직원 10명이 필요한데 12명 뽑아
죽도록 괴롭힌 뒤 2명을 잘라요”
온갖 부조리로 가득찬 세상에서
그들은 ‘희망’을 지워버렸다

대한민국을 ‘지옥’이라고 부르는 청년들은 어떤 심경일까. 경향신문과 데이터 기반 컨설팅 업체 아르스프락시아가 공동분석한 결과 ‘헬조선’은 ‘취업난으로 인한 고통’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사회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선언이었다. ‘노력’만으로 절망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도 보였다.

예고된 유행어 ‘헬조선’

대학생 김현곤씨(19)는 두 학기째 휴학 중이다. 반 년 안에 등록금 320만원을 마련해야 한다.

김씨는 1996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김씨의 아버지는 일본까지 가서 신농법을 배워올 정도로 의욕 넘치는 영농인이었다. 지금도 새벽 3시면 일어나 밤 11시에 일터에서 돌아온다. 하지만 여느 농촌처럼 김씨의 고향마을도 점점 더 가난해졌다. 황폐한 마을주민들의 심리를 악용한 대출사기, 도박, 다단계 열풍이 차례로 지나가면서 가정이 깨지고 가족들은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교육열’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고교 동급생 13명 중 4명만 4년제 대학에 갔다. 김씨의 친척들도 “돈은 누가 대느냐”며 대학 진학을 말렸다. 2013년 전후의 일이다.

김씨는 아버지의 지지 덕분에 대전의 한 사립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도시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생활비가 쪼들리자 영화관람 등 문화생활을 끊었다.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은 방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었다. 싼 월세를 찾아다닌 끝에 겨우 얻은 ‘관’ 같은 방에 누우면 서러움이 밀려왔다. “이렇게 고생해도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걸 아버지한테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아버진 여전히 ‘대학 졸업하면 풀리겠지’라고 생각하시거든요.”

서울대 4학년 이태경씨(22·가명)는 “이십년 남짓 살면서 한국사회가 함께 사는 공동체란 걸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엔 ‘미개한 국민성’과 ‘후진 시스템’ 때문이다.

이씨는 수도권의 한 공업도시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 공부에 두각을 보이자 비슷한 형편의 이웃사람들이 시샘을 하고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유명 사립고에 진학했는데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면 매를 맞았다. “나도 삽으로 300대씩 맞고 사람 됐다”는 동문 출신의 기숙사 사감 말에 질겁했다. 학교를 옮겼다. 새 학교엔 ‘연애금지’, ‘강제 0교시’ 등의 교칙이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면 교칙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았다. 대신에 학교는 진학실적을 위해 원하지 않는 전공 응시를 강요했다. 사립학교법이 개정되고 도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된 이후인 2009~2011년 겪은 일이었다. ‘미개한’ 사람들이 학교를 지배했고, ‘시스템’은 일관성이 없었다. 이웃 간에 정은 사라지고 질시만 남았다.

대학과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즐겁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어요. 선배들 표정은 다 죽어 있고, 교수들은 대학원생 처우를 개선하는 데 관심도 없었습니다.” 방학 중 인턴 등을 하면서 엿본 회사생활은 더 끔찍했다. 남성 상사들이 여직원의 몸매를 품평하고 성희롱 당한 직원이 그만두는데도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현대적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나라가 아니었고, 시스템의 결함을 ‘공동체적 온정’으로 채우지도 못했다. 이런 나라엔 ‘앞날’이 없다. 그는 “전문직이 돼서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방치’와 ‘무원칙’, ‘캄캄한 앞날’. 두 대학생은 1990년대 최고 호황기 때 서로 다른 조건에서 태어났지만 “지금 한국은 지옥으로 불려도 마땅하다”는 데 동의했다. 이들은 ‘헬조선’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지옥 같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참을 수 없는 헬조선의 미개함

‘헬조선’은 정확히 어떤 뜻으로 쓰이고 있을까. 아르스프락시아가 지난 1~8월 인터넷 게시글(트위터·일간베스트 저장소)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헬조선’은 ‘미개’, ‘탈출’이란 단어와 함께 쓰이는 빈도가 높았다. 이념 성향이 다르다고 평가받는 트위터·일베를 가리지 않고 “헬조선은 역시 미개해”, “헬조선을 탈출해야 해”라는 두 문장이 가장 널리 쓰인다는 의미다.

‘미개함’을 드러내는 상황은 너무나 다양하다. 토목업계에서 일하는 정수현씨(30대·가명)는 “세월호 유가족이나, 공무원 연수생 버스 사고 등 누군가 죽은 대형참사 뉴스에서 ‘잘 죽었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나라가 망했구나’, ‘다들 공감능력도 없는 헬조선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미개’가 유행어가 된 것은 정반대 상황이었다. 지난해 정홍원 전 총리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이 물을 끼얹은 것을 두고 정몽준 의원 아들이 “국민이 미개하다”고 페이스북에 밝힌 데서 유래했다.

정부 역시 ‘미개한 존재’로 풍자됐다. ‘헬조선’은 지난 5월 메르스 사태와 가뭄을 계기로 널리 퍼졌다. “가뭄과 역병이 창궐하는 것이 헬조선(19세기) 시대를 보는 것 같다”는 트위터 농담이 발단이 됐다.

메르스 확산과 사망자 수 증가 소식을 접할 때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병원 방문에 맞춰 ‘살려야 한다’는 글귀를 억지스럽게 붙이는 등의 촌극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헬조선’ 사용 빈도가 껑충 뛰었다.

‘미개’는 ‘시민의식’(트위터), ‘마인드’(트위터), ‘남자’(일베), ‘노예’(일베), ‘결혼’(일베) 등의 단어들과 짝을 이뤄 나타났다. 일베에서는 ‘애국심’과 ‘주입’도 ‘미개’와 함께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였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과 ‘이기적 여성들로 인한 남성들이 손해보는 삶’(일베), ‘시민의식이 상실된 한국인’(트위터)이 ‘지옥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개한 면모’였다. “헬조선 국민들의 쓰레기 같은 문화는 주입식 교육 때문”(일베), “노예처럼 차별당해도 인정하고 마는 건 주입식 교육 탓”(트위터)처럼 ‘미개함’의 구조적 원인을 짚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대부분 ‘교육’이 주 원인으로 꼽혔다.

‘헬조선’이라는 단어의 유행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있다. 대학생 황성만씨(22)는 “헬조선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모든 대상을 싸잡아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사회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고, ‘어차피 헬조선은 안 돼’라고 냉소하는 데서 끝나서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년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사회

‘헬조선’ 목소리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취업과 청년문제다. ‘청년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조직문화’가 지옥의 핵심이다. 정수현씨도 인터뷰 중에 노동 이야기를 가장 많이했다. “비유하자면 삼성은 10명 일할 상황에 12명을 뽑아서 사람을 죽도록 괴롭힌 뒤 2명을 자르는 시스템이고, 현대는 10명 일할 상황에 8명을 뽑아서 죽도록 일하는 시스템이에요. 이게 한국에서 제일 좋은 직장이라죠.”

청년착취는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전직 피트니스 클럽 트레이너(운동강사) 윤소림씨(28)는 서울 강남구의 대형 피트니스 클럽에서 6개월간 일했다. 오전 6시에 출근하면 오후 3시에 퇴근해야 하는데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P.T(개인운동교습) 실적을 채우지 못해서였다. “3개월에 9만9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회원을 받아놓고, 트레이너에게 회원을 상대로 수십만~수백만원짜리 개인운동교습권을 강매하게 해요. 제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팀 전체를 괴롭혀서 그만뒀어요. 손님들에게도 미안했고요.”

소규모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최모씨는 입사 후 2년 동안 거의 매일 야근했다. 그는 “광고주는 무조건 ‘갑’이다. 광고주가 요구한 날짜를 맞추기 위해 한 달에 딱 이틀 쉰 적도 있다. 지옥 같은 근무패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후배가 들어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조직의 막내가 ‘갑질’의 결과를 모두 뒤집어쓰는 구조다.

트위터에서는 ‘청년·대기업·채용·최저임금·장바구니’가 ‘헬조선’과 함께 검색되는 확률이 높았다. 일베에선 ‘헬조선’과 관련해 ‘취직·피해자·못한다·불가능’ 등이 한 문장에 자주 등장했다. 김학준 아르스프락시아 연구원은 “트위터와 일베 모두 한국은 미개하고 지옥 같은 사회이며, 취업·청년문제가 ‘헬조선’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트위터는 ‘헬조선’의 책임자로 ‘대기업’ 등을 지목하며 ‘구조 탓’을 한다면, 일베는 ‘구조 탓’과 ‘개인 탓’이 섞여 있다”고 분석했다.

청년착취에서 한국사회의 해체를 보는 시각도 있다. 국내 유명 공대 박사급 연구원 장명원씨는‘산학협력’에 참여하면서 “‘먹고사는 공동체’로서 한국사회는 이미 없다”고 진단했다.
“한국을 먹여살리는 최고수준 기술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아니라 기업이 독점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에 더해 무조건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 연구를 하라고 대학에 압박을 넣죠. 대기업은 공장은 해외로 이전하면서 ‘기업 덕분에 한국 전체가 먹고산다’며 직원이나 대학원생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 ‘환멸’로 끝나는 분노

저마다 다른 헬조선 탈출법

‘헬조선’과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는 ‘탈출’이다. 탈출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예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노예가 된 삶’은 업종을 가리지 않았고 탈출 장소와 방법은 제각기 달랐다. 청년층 간 ‘계층’과 ‘불평등’, ‘반목’이 이 대목에서 드러났다.

차은경씨(가명)는 방송통신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며 캐나다 이민을 알아보고 있다.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캐나다에 ‘취업이민’을 지원할 수 있다.

차씨는 “남편이 제 명에 못 살 거 같아 이민을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차씨 남편은 명문대를 졸업한 대기업 직원이다. 일주일에 4일은 오전 6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돌아온다. 토요일에도 출근한다. 최근 업계 상황이 나빠지면서 주 6일 근무와 무한 야근이 시작됐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위에다 보여주기 위한 ‘면피성’ 근무였다. “대기업은 그래도 주말근무·야근 수당이라도 받지 않느냐”며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고민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차씨의 집 근처 유치원 정문엔 ‘○○○어린이 한자급수 합격’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동네에서 가외 학습을 가장 덜 시키는 유치원이 이 정도다. 아들 대에서 반복될 교육경쟁 역시 그가 보기엔 ‘지옥’이다.

차씨 부부와 같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현실에 절망할 때 찾는 해결책이 있다. ‘한국을 뜨는 것’이다. 명문대생들을 중심으로 취업이민 스터디와 이민계까지 결성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민을 꿈꾸거나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대다수는 현재의 직장이라도 탈출하면 다행이다.

디자이너 강수정씨(26)도 탈출을 꿈꾼다. 강씨는 휴일에도 사장이 부르면 달려 나갔다. “여기서 열심히 하면 키워주겠다”는 말 때문이었다. 강씨는 “속았다. 1년만 채우고 주 5일 하는 업체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실업급여도 못 받고, ‘한 직장에 오래 버티지 못하는 근성 없는 젊은이’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당장 그만둘 순 없다.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1년간 부당함을 견디는 노력을 해야 한다. 누리꾼들은 이런 노력을 두고 ‘노오력’이라 부른다.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해

불가능한 ‘노오오오오오오오력하라’

‘헬조선’보다 많이 쓰이는 말이 있다. ‘노오력’이다. 아르스 프락시아의 집계 결과 일베와 트위터에서 ‘헬조선’과 관련된 게시물은 4000여건, ‘노오력’과 관련된 게시물은 6000여건 검색됐다. ‘노오력’이 유행한 것도 메르스 사태 이후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서 한 말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편안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다가 대통령까지 됐다”며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누리꾼들은 “내가 힘든 이유는 온 우주가 감동할 만큼 노오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응수했다.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노오력’과 짝을 이룬 말 중에 압도적으로 많은 단어는 ‘부족’이었다. “노오력이 부족해”란 문장이 가장 널리 쓰였다. “금수저(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로 태어나려는 노오력이 부족했다”(트위터), “내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은 노오력이 부족해서”(일베)라는 문장이 단적이다. ‘노력 강조’에 대한 풍자와 한국사회는 노력으로 극복 불가능한 사회가 됐다는 비판이 담겼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양기혁씨(29·가명)는 경북 지역 사립학교 이사장인 아버지 친구로부터 “어렵게 취업 준비하지 말고 아무 교육대학원에나 진학해서 학위만 따오면 ‘우리 학교’에 꽂아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 친구 자녀들은 모두 해당 학교에서 근무한다. 양씨의 조부·외조부는 모두 은행장 출신이고, 아버지 친구와 친·인척 중에는 정·관계 요직에 있는 사람이 즐비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철 연구위원의 분석을 보면 한국에서 인맥에 의한 채용빈도는 60%에 달한다. “믿을 만한 친척이나 지인이 있다”는 응답 비율은 고졸(41.6%)이 대졸(81.8%)의 절반 수준이다. OECD국가 중 격차가 가장 크다.

‘노력’ 풍자는 자책으로 이어진다. 김현곤씨는 자책에서 분노로 전환한 경우다.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너무 노력하고 있어요. ‘1시간 덜 자고 노력하라’고 하는데, ‘여기서 1시간 덜 자면 죽어요.” 그는 학내언론을 통해 등록금 문제 등을 다뤄보려고 노력했지만 학교 측과 대립해야 했다.

‘노오력’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자신을 향하는 경우도 있다. 박모씨(31)는 택배일을 하며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박씨의 아버지는 막노동 일을 했고, 가게를 하던 어머니는 폐업했다. 지방대 출신인 그를 받아주는 곳은 군 조직뿐이었다. 부사관으로 자원입대해 4년간 모은 돈으로 등록금 빚을 갚고, 어머니의 전세금을 대고 나니 남는 것이 없었다. 박씨는 “이게 다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 탓이다. 부모님은 누가 모시나. 결국 내가 노력해야지”라고 말했다.

김학준 연구원은 “트위터는 노오력에서 바로 헬조선을 읽어내는 반면 일베는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현재의 고통을 ‘누구나 겪는 고통’이라고 여기면서 고통 자체를 당연히 받아들이며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항’이나 ‘연대’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박 대통령의 어린이날 발언 이후
‘노오력’ 관련 검색어가 급속히 번졌다

“죽도록 노력해도 탈출은 불가능
평등이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
이민을 꿈꿀 수 있는 사람도 극히 제한
대한민국 청년의 절망이 너무나 깊다
평등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

‘헬조선’을 사회구조 문제로 인식하는 트위터에서는 ‘죽창’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타난다. ‘노오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죽창은 120년 전 동학농민군의 무기였다. 한국의 분통 터지는 뉴스를 모아놓은 ‘헬조선 닷컴’의 메인화면에도 죽창이 그려져 있다. ‘헬조선’, ‘불반도지옥’이라는 현실이 젊은이들을 저항에 눈 뜨게 하는 것일까. 학내게시판 스누라이프에서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연구해 학내 매체에 글을 쓴 이태경씨의 답은 부정적이었다. 김현곤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창’은 좀 더 섬뜩한 뜻을 담고 있었다.

“죽창요? ‘금수저’들이 연애 자랑, 여행 자랑, 자기 뭐 먹은 거, 자동차 산 거 자랑하면 ‘그래 봤자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죽창 앞에서는 다 평등하다’고 댓글 달아요. ‘네까짓 게 금수저라고 아무리 잘난 척해도 죽창 앞에서는 너나 나나 한방에 나가 죽는 평등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인데 속이 시원해지죠.”(이태경) “다들 살인충동 날 정도로 짜증나 있다는 거죠.”(김현곤)

‘헬조선’에서 “죽창을 달라”는 목소리는 ‘저항’보다는 ‘자기파괴’에 더 가까웠다. 죽창이 소환하는 ‘동학농민운동’의 이미지도 ‘농민들의 반봉건 저항’이 아니라 ‘일본군에게 진압된 실패한 혁명’이었다. 기회의 평등조차 완전히 사라진 한국사회에서 20대 초반 대학생들에게 평등이란 죽창으로 서로를 찔러 죽이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했다. “청년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미개한 헬조선을 탈출하자”는 서사의 끝은 이렇게 “노오력해도 탈출은 불가능하니 죽창으로 서로 찌르며 함께 파국적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자조와 환멸로 끝난다. 말에 담긴 대한민국 청년들의 절망과 분노는 그만큼 깊고, 응어리져 있었다.

어떤 단어의 쓰임새를 파악하기 위해 함께 문장을 이룰 가능성이 큰 단어를 찾아내 그룹을 짓는 방식을 ‘의미망 분석’이라고 한다. 경향신문이 데이터 기반 컨설팅업체 ‘아르스프락시아’에 의뢰해 ‘헬조선’과 ‘노오력’의 의미망을 분석했다. 지난 1~8월 일간베스트 저장소와 트위터상의 게시물에서 ‘헬조선’과 ‘노오력’을 주요 키워드로 검색해 짝을 이루는 비율이 높은 단어를 그래픽으로 나타냈다.

트위터에서 추출된 단어는 파란색, 일베에서 추출된 단어는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단어 사이를 잇는 화살표의 굵기가 굵을수록 한 문장에서 함께 쓰이는 빈도가 높다. 화살표 방향은 문장 속 단어의 앞뒤 순서를 가리킨다. 트위터와 일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공통적 경향은 검은색으로 표시했다. 진보·보수성향 누리꾼들 간 차이와 공통점을 알아보기 위해 트위터와 일베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해


(1) 취업·노동문제에 대한 인식
ex)“헬조선에서는 취직이 불가능”(트위터)
· 일베와 트위터 모두 취업·청년 문제를 ‘지옥’의 핵심으로 파악했다.
· 일베에서는 ‘헬조선에서 취업은 불가능하다’는 좌절이 나타났다.
· 트위터에서는 대기업, 최저임금, 인상 등 구조적 문제가 주로 거론됐다.

(2) 헬조선의 미개한 국민들
ex)“군대에 끌려가 노예처럼 사는 미개한 반도의 남자들”(일베)
· ‘미개함’에 대한 적개심·조롱이 두드러진다.
· 일베는 결혼·남녀관계에서 ‘미개함’을 찾았다.

(3) 애국심 비판과 탈출
ex) “헬조선을 탈출해야 해”(공통) “기득권이 주입한 애국심”(일베)

· 헬조선과 함께 등장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던 단어는 ‘탈출’이었다.
· 트위터에서는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것이 탈출 이유로 꼽혔다.
· 일베에서는 애국심을 주입하는 교육에 대한 강한 반감이 드러났다.

(4) 헬조선의 미개한 구조
ex) “헬조선 국민성 쓰레기 같은 건 주입식 교육 탓”(일베)

· 일베와 트위터 모두 ‘국민성이 미개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 한줄서기 교육, 차별 등을 미개한 국민성의 원인으로 파악한다.
· 트위터는 ‘구조 탓’, 일베는 ‘남 탓’과 ‘구조 탓’이 혼재돼 있다.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해


(1) ‘노오력’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조롱
ex)“금수저로 태어나려는 노오력이 부족했다”(트위터·일베 공통)
· 노오력과 함께 등장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던 단어는 ‘부족’이었다.
· 반어적 표현으로 불가능한 노력을 요구한다는 조롱을 담았다.

(2) ‘노오력’ 강요하는 사회가 곧 헬조선
ex)“죽창 앞에서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트위터)
· 노오력을 강요하는 헬조선을 탈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 죽창으로 서로 찌르는 것도 해법으로 제시됐다.
· 노오력에서 탈출과 죽창은 트위터에서만 두드러진다.

(3) ‘노오력’ 해도 안되는 것들
ex)“노오력이 부족해 흙수저로 태어났다”(일베)
· 취업, 공부, 토익 등이 ‘노오력’을 강요받는 영역으로 제시됐다.
· 사회비판적 내용(노예, 변혁)을 담은 단어도 발견된다.

(4) ‘노오력’의 내면화
ex) “노오력 안 한 내 책임” (일베)
· 노오력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음을 깨닫고 자기 책임으로 돌린다.
· 일베에서만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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