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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병사’ 4만 명인데…관리만 하다 끝나는 군대?

2017.02.19 09:41 입력 2017.02.19 11:07 수정
백철 기자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게 군의 관심병사(현 도움배려병사) 관련 뉴스다. 지난해 5월에는 최전방 부대에서 간부가 관심병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일이 있었다. 8월에는 힐링캠프에 참가한 한 관심병사가 목을 매 사망하기도 했다. 군에서 이런 일은 ‘사고’로 취급된다. 하지만 사고는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다. 언제나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국방부가 직접 파악한 관심병사 숫자가 4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왔다. 관심병사만으로 1개 군단을 창설하고도 남는다. 특히 육군은 전체 인원의 10%가 관심병사다.

군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또 하나 있다. 인구절벽 문제다. 국방부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부터 현역 입대가 가능한 모든 남성이 지금과 같은 비율로 입대한다 해도 군 정원을 맞출 수가 없다. 2026년 한 해에만 입대자가 3만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군은 관심병사, 입대자 부족 문제에 대해 ‘징집률 상승’ 외에 뚜렷한 대책이 없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이후 도움배려병사의 숫자는 총 3만9869명이다. 국방부가 ‘즉각 조치가 필요한 고위험군 장병’으로 명명한 도움병사는 9439명이다. ‘폭력, 구타, 군무이탈 등 사고 유발 가능성이 있는 인원’으로 부른 배려병사는 3만430명이다. 3년 전 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당시 이후로 관심병사 규모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2월 11일 강원 홍천군에서 육군11기계화보병사단이 도빙훈련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 11일 강원 홍천군에서 육군11기계화보병사단이 도빙훈련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육군은 전체 인원의 10%가 관심병사
과거 관심병사는 A, B, C급으로 분류됐다. A급은 특별관리대상, B급은 중점관리대상, C급은 기본관리대상으로 불렸다. 국방부에 따르면 2014년 12월 31일 기준 A급 관심병사는 8433명, B급은 2만4757명, C급은 6만2891명으로 총 9만6081명이다. 하지만 22보병사단 사건 이후 인권위에서 사람을 등급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했다. 이를 군이 받아들여 2015년 2월부터는 도움배려병사 제도가 시행됐다. 현재 도움배려병사는 과거 A, B급 관심병사에 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움배려병사 문제에 대해 국방부는 “복무 적응을 유도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김종대 의원실에 보낸 국방부의 답변서에 따르면 국방부는 도움배려병사를 위해 각 부대에 관리책임 간부를 지정하고, 도움배려병사의 치유를 위해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 상담, 그린캠프 입소 등의 조치를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생활이 어려운 인원에 대해서는 현역복무 부적합 심의에 회부한다. 이 과정에서 부적합으로 결정되면 해당 병사는 전역조치된다.

국방부의 그린캠프 관련 통계에 따르면, 그린캠프를 거친 이후 ‘치유’되는 병사의 비율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육군에 20개소, 해군에 4개소의 그린캠프가 운영 중이다. 이곳을 거쳐간 인원은 총 3596명으로, 전체 도움배려병사의 10분의 1 수준이다. 2012년에는 입소자의 70.6%가 치유과정을 거친 후 자대에 복귀했지만 지난해에는 이 비율이 39.9%로 떨어졌다. 반면 현역복무 부적합 심의에 회부된 인원은 2012년 16.1%에서 지난해 34.6%으로 높아졌다. 재입소를 한 인원도 2012년 13.3%에서 지난해 25.5%로 늘어났다.

2023년부터는 군 정원 유지 자체가 어려워진다. 국방부가 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1만6000명에 달하는 현역 가용자원(18세부터 35세 남자 중 연령별 입대율을 고려한 숫자)은 2018년부터 30만명 아래로 떨어진다. 이 숫자는 2023년에 22만5000명 선이 된다. 현역복무에 필요한 정원에 1000명 모자라는 숫자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2026년부터는 매년 2만~3만명이 정원에서 부족하다. 도움배려병사 규모를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규모로 군대가 유지되기에 부족한 숫자는 5만~6만명에 달한다.

국방부의 자료에 따르더라도 이대로는 군 정원을 맞출 수 없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정원 부족 문제에 대해 군은 더 많은 이들을 입대시키는 방법으로 해법을 찾았다. 지난해 국방부는 전환·대체복무 규모 축소를 발표했다. 2019년부터는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 선발 숫자를 줄여 2023년에는 제도 자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1만4000명이 넘는 의무경찰 등 전환복무요원도 감축 대상이다. 또 다른 군의 대책은 장교 비율을 늘리는 것이다. 현행 국방계획에 따르면 25%인 상비 장교의 비율은 장기적으로 40%까지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군은 병역기피자를 한 명이라도 더 입대시키기 위해 병역기피자 신상공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14년 말 국회를 통과한 신상공개 제도는 2015년 7월부터 실시됐다. 유예기간 등을 거쳐 지난해 12월 20일 처음으로 237명의 인적사항이 병무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김종대 의원은 관심병사 문제와 군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 정원 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25년까지 군 정원을 40만명(병사 20만, 간부 20만)으로 줄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징집률을 크게 낮춰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 의원은 “우리 군의 징병제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징병하고 있다. 지금의 징집률은 87% 수준인데, 적정한 징집률은 76% 수준”이라며 “지금의 도움배려병사 규모는 굉장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무분별하게 징병을 하는 만큼 부적응 병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적정한 징집률에 대해 김 의원은 “전문가들이 각종 질병 발병률이나 심리·정신치료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국민의 약 4분의 1은 통제된 공간에서 군생활을 하기에 신체적·정신적으로 적합하지가 않다. 여기에 양심적 이유로 병역을 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25% 정도는 군입대에서 제외를 시켜야 군대가 나름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군 전체 전투력 저하 불러
김 의원은 입영 전부터 이후까지 군대 스스로 도움배려병사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2년 가까이 외부와 단절해 지내야 하는 군 문화를 고려한다면 군에서 철저하게 복무 부적합자를 사전에 선별해야 한다. 하지만 형식적인 신체검사가 이뤄지면서 1차 문제가 발생한다. 인구절벽으로 군 입대 가능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데도 징집률을 높여 해결하려는 발상에서 2차 문제가 생긴다. 복무 부적응자가 발생한 이후에도 ‘군복무를 제대로 해야 남자답다’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인내를 강요한다. 결국 복무 부적응자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서 3차로 문제가 발생한다. 북무 부적응자를 발견했더라도 즉시 전역시키지 않고 억지로 그린캠프에 입소시켜 군생활을 연장시키려는 발상에서 또 한 번 문제가 발생한다.

육군의 10%에 달하는 관심병사(도움배려병사)가 군 전체의 전투력 저하를 불러일으킨다는 분석도 있다. 2월 14일 국가인권위는 입영제도 개선방안 관련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설문조사에는 육군 병사 334명, 간부 333명이 응답했다. 병사의 40.6%는 도움배려병사 제도가 복무 부적응 병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13.6%에 불과했다.

지휘관들도 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휘관의 59.5%는 군생활의 애로사항으로 ‘복무 부적응 병사 관리 스트레스’를 꼽았다. 인권위가 10년 전 같은 취지로 한 조사에서는 복무 부적응 병사 관리에 관한 답변이 26%였던 것에 비하면 2배 이상 늘어났다. 반면, 과다한 업무를 애로사항으로 꼽은 지휘관은 11.9%에 불과했다. 또한 지휘관으로서 가장 부담이 되는 분야에 대한 물음에 응답자의 51.3%는 ‘도움배려병사 선정·관리’를, 39.8%는 ‘부대관리’를 꼽았다. 군사 대비태세나 훈련에 대한 부담감은 각각 4.4%에 불과했다. 이 설문조사에 대해 인권위는 “복무 부적응 병사 문제가 해결돼야 군사 대비태세 확립과 교육훈련에 전념하는 게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군대는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실수와 오차가 용납되지 않는 규율이 요구되는 집단이다. 일반 사회와 달리 한 사람의 문제가 집단 전체로 파급돼 소대 전체가 마비되는 일도 허다하다”며 “과중한 임무를 받은 간부들이 병사 관리와 임무수행을 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부대관리를 하다가 시간이 다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이건 군대 망하는 길이다. 잘못된 징병제의 피해자는 바로 군 자신”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병사와 간부를 합쳐 2025년까지 군 병력을 40만명까지 줄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12개월은 의무로 군생활을 하고, 원하는 사람에 한해 4년간 전문병사로 복무할 수 있게 한다면 군 정원 문제는 물론 관심병사 문제도 많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군 정원을 줄여도 여전히 관심병사는 생길 수 있다.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은 물론이고, 모병제인 미국에서도 군대 부적응자 문제가 이따금 언론에 나온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 정원 축소뿐 아니라, 폭넓은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선병과정에서부터 문제다. 국가가 입영 대상자의 신체와 정신을 들여다보고 적정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입영 대상자가 국가에 자신의 건강상태를 입증해야 한다. 특권층 자녀는 어릴 때부터 병원을 자주 다니며 진료기록을 쌓을 수 있는 반면, 돈 없는 집 자녀는 어딘가 다쳐도 그대로 군대에 가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병역기피자 신상공개제도 논란

군필자들 사이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는 ‘건빵 농단’으로 유명하다. 황 총리는 설 연휴를 앞둔 1월 24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함께 충남 논산시의 육군훈련소를 방문했다. 생활관을 찾은 황 총리는 한 장관에게 받은 건빵 하나를 물더니 “건빵 맛 여전하네”라며 웃었다. 황 총리는 두드러기의 일종인 ‘담마진’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물론 황 총리는 합법적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직 중 군 면제를 받은 이들의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군 입대 여부가 일종의 ‘국민 면허증’으로 통하는 상황에서 사회 고위층 인사의 군 면제는 병역기피와 사실상 동의어로 인식돼 왔다.

병역기피를 근절하기 위한 취지로 2015년 7월부터 병역기피자 신상공개제도가 시행됐다. 신상공개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인 2014년 11월, 백승주 당시 국방부 차관은 신상공개제도에 대해 “신상이 공개되면 자기뿐만 아니라 자식과 가족이 망신당한다. 병역의무를 다하도록 경각심을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병역기피자 237명의 명단이 처음으로 병무청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이 제도를 군 입대자 부족이 현실화된 상황에 대한 군의 대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병무청은 “성실한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병역기피 신상공개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병역자원 부족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병역기피자 전원을 입대시켜도 군 정원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병무청이 김종대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병역기피자 발생 숫자는 연 1000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2015년의 경우 입영 기피자 606명, 사회복무요원 소집 기피자 108명, 병역검사 기피 26명, 국외 불법체류자 161명으로 총 병역기피자는 901명이었다. 지난해는 11월 기준으로 556명이 병역을 기피한 것으로 병무청은 파악했다. 그나마 공개된 명단 중에 과연 특권층 자제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2015년 1월 병무청은 병역이 면제된 장·차관급 공직자나 국회의원 중 75%가 질병으로 면제됐다고 발표했다. 이런 이들은 신상공개 명단에서 제외된다. 유민봉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자유한국당 의원)의 아들이나 가수 유승준씨처럼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 역시 신상공개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신상공개 대상에서 빠진다.

김종대 의원은 “신상공개제도의 원래 취지는 권력 고위층과 부유층의 악의적 병역기피를 근절시키려는 것이었으나, 입법과정에서부터 원래 취지가 퇴색했다”며 “지난해에 병역법이 개정돼 고위공직자와 그 자녀들의 병적은 따로 관리하고 있다. 사회 지도층의 책임을 묻는 방법으로 명단 공개가 이뤄져야 하는 제도적인 명분에는 이상이 없지만, 기득권의 사회적 저항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역기피자 신상공개제도가 ‘군생활은 신성하다’는 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관심병사 규모가 4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군복무에 부적합한 인원까지 억지로 징병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제도가 아니다. ‘남자라면 군대는 다녀와야지’라는 이데올로기는 국방개혁의 걸림돌일 뿐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총 들고 싸우는 사람만 군인이 아니라 전투요원을 지원하는 사람도 군인이다. 무조건 현역 입영을 강요할 게 아니라, 현역 입영이 부적합한 사람은 사회복무 등 다른 임무를 주고 복무기간을 늘리면 된다. 그게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민주공화국의 병역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병무청은 신상공개제도에 논란이 없도록 적절히 운영하고 있다며 “억울하게 신상이 공개됐을 경우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1년간 소명 기회를 주고 있다. 당초 600여명인 공개대상도 절반 이하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대체복무 늘리는 방안 고려해야”
임 소장은 대체복무제도를 확대하는 대신 군 면제의 폭을 좁게 줄이는 안을 제안했다. 임 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현행 병역법에 따르면 사회복무요원 등 대체복무도 국방의 의무를 하는 것이다. 군생활에 부적응하는 병사들을 군이 끌어안을 게 아니라, 심사를 거쳐 대체복무로 전환시키자는 것이다. 그는 “병역기피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하나 대체복무를 하게 되면 군생활 기간이 늘어나는 데다가 몇 단계 심사를 거쳐야 한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몇 개월 더 병역의무를 지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라며 “심각한 장애가 아니면, 최소한 황교안 총리처럼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정도라면 무조건 입대를 하도록 면제의 폭을 줄이고 대체복무를 시키면 된다. 특권층의 병역기피도 상당히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관심병사 문제 해결방안의 하나로 대체복무제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복무와 관련, 정책연구한 내역을 보내달라는 김종대 의원실의 요구에 국방부는 “해당 자료 없음”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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