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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두이노 비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17.04.20 22:53 입력 2017.04.24 16:19 수정
이다희 시인

릴케를 읽는다면

[이다희의 내 인생의 책] ⑤ 두이노 비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모든 천사는 끔찍하다.”

릴케를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길었다. 릴케의 사로잡힘(어조)과 죽음(비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릴케의 연대기적 사건을 따라가며 공부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릴케를 읽는 사람들의 공동체적이라 할 만한 파토스에 진입할 수 없어서 난감했다.

내가 이제 비가를 읽을 준비가 된 것일까? 서점을 둘러보다가 새 책이 나와서 샀고, 읽었다. 릴케가 읽혔다. 이제 와서 생각하건대 비가의 형식을 번역이 견디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번역자는 모두 저마다의 비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닐까. 울음과 비명을 알아듣게 전달해야 한다니. 이 책을 읽으며 시 번역의 어려움을 얼핏 이해한 것 같다.

누구의 릴케든, 릴케를 읽는다면 낭송을 추천한다. 이건 조금 묘한 기분인데 마치 연주자가 된 기분이다. 훌륭한 악보는 이미 그려져 있고, 내가 연주(낭독)해서 다시 곡을 살리는 것이다. 계속 연주하다보면 쓰는 자와 낭송하는 자의 구분이 사라진다. 그때 내가 릴케의 한가운데로 내려왔음을 느낄 수 있다.

“청년의 눈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이른 죽음 속에서,/ 어지러울 따름이기에, 그러나 비탄의 눈길은/ 스켄트 왕관 뒤, 부엉이를 내쫓는다. 그러면 놀란 부엉이/ 천천히 두 뺨을 따라,/ 완숙한 곡선을 스치며,/ 죽은 이의 새로 얻은 청각,/ 양쪽으로 활짝 열린 면면에다가,/ 부드러이, 형언할 길 없는 윤곽을 그려 넣는다.”(‘제10비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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