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영구정지

40년 굉음 내던 원자로 터빈, 버튼 하나 누르자 ‘잠잠’

고리 1호기 멈춘 날

원자로의 불이 꺼진 부산 기장군 고리 1호기의 원자로제어반에 발전기 출력이 0으로 표시돼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원자로의 불이 꺼진 부산 기장군 고리 1호기의 원자로제어반에 발전기 출력이 0으로 표시돼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초여름의 따가운 햇볕을 받은 파도는 잔잔했다. 해녀 예닐곱명이 쉼 없이 물질을 하고, 방파제 끝자락에선 낚시꾼 대여섯명이 입질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16일 오후에 찾은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은 한국의 여느 시골 어촌과 다를 바 없이 평온했다. 이내 시선은 지척에 서 있는 높이 60m의 돔 형태 구조물로 향했다.

‘대한민국 원전의 자존심 고리 제1발전소.’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 들어서자 대형 크레인에 이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고리 1호기의 터빈실에 들어서자 적막하던 바깥과는 정반대의 풍경이 보였다. 안전모에다 귀마개까지 착용해야 할 정도로 굉음이 심했다. 영구정지되기 이틀 전이지만 원자로의 열로 생긴 증기가 터빈발전기를 가동해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고리 1호기 영구정지]40년 굉음 내던 원자로 터빈, 버튼 하나 누르자 ‘잠잠’

‘영구정지 D-2.’ 터빈실에서 나와 찾아간 주제어실(MCR) 입구에 달린 모니터는 고리 1호기의 운명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했다. 계기판에 시선을 고정한 근무자들 사이에선 긴장감이 흘렀다. 주제어실 중앙 전광판은 ‘원자로 출력 99.1%, 발전기 출력 603㎿e’를 나타냈다. 박지태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장이 플라스틱 커버 안에 있는 빨간색 버튼을 가리켰다. 터빈 수동정지 버튼이었다.

고리 1호기는 17일 새벽부터 발전 속도를 줄이며 영구정지를 위한 과정을 밟았다. 이날 오후 6시 터빈 수동정지 버튼을 눌러 발전기를 멈췄고, 38분 뒤에는 원자로 가동을 중단했다.

이 순간 고리 1호기는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다. 이후 섭씨 300도에 달하던 원자로 온도는 냉각제의 힘으로 서서히 내려가다 18일 밤 12시(19일 0시) 93도까지 떨어지면서 영구정지 판정이 내려졌다. 1979년 입사해 고리원전과 함께해온 박 소장은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원전을 멈추는 게 안타깝지만, 고리 1호기가 원전 해체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리 1호기에서 나와 공정률 99%인 신고리 4호기로 향했다. 우뚝 솟은 거대한 송전탑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신고리 3·4호기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숱한 갈등으로 점철된 밀양 송전탑으로 향한다. 신고리 4호기 바로 옆에선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한창이었다. 5호기의 둥그런 하부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신고리 4호기와는 거리가 400m에 불과했다. 고리와 신고리 원전은 부산과 울산 경계선에 인접해 있다. 이곳에만 고리 1호기를 포함, 원전 10기가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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