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의 돈냄새 맡는 법

2017.07.17 20:54 입력 2017.07.17 20:59 수정
박용채 논설위원

돈냄새 맡는데 어찌 은행을 따라갈까. 특히 선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은행들의 후각은 탁월하다. 한국씨티은행이 엊그제 개인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점포 126개 중 90개를 줄이기로 했다. 그 첫 시도로 지난 7일 서울 올림픽 훼미리 지점 등 5개 지점이 문을 닫았다. 금융위기 같은 특별한 상황 때도 이런 엄청난 구조조정은 본 적이 없다. 씨티는 고객 95%가량이 금융 서비스를 디지털 채널을 통해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영업점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일견 그럴듯하다. 하지만 배경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금융기관으로서의 공적 기능 무력화 시도이다. 씨티는 지점 폐쇄 논란이 심화되자 사회적 책임 운운하며 각 시·도에 하나밖에 없는 지점은 살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점포를 80%나 줄인다는 것은 시중은행으로서의 역할은 그만두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박용채 칼럼]한국씨티은행의 돈냄새 맡는 법

실제 씨티는 역량을 부자 고객에 집중하고 있다. 고액 자산가 위주의 자산관리센터의 규모를 확충했다. 올 초에는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계좌유지 수수료제도도 도입했다. 씨티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몇 년 새 지속적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한 데 따른 조치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 본사에 대한 배당, 경영진 보수는 업계 최고수준이다. 결과적으로 이익 극대화를 위해 금융의 공적 기능은 최소화하고, 사적 기능은 최대화하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벽지의 버스 노선 운용은 그만두고 돈 되는 노선만 운용하겠다는 뜻이다.

은행들의 돈 버는 방법은 흔히 ‘듣보잡’ 다국적 용어인 예대마진(預貸 Margin)으로 표현된다. 다수로부터 예금을 모아 기업에 대출하는 착한 일을 한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하지만 똑같은 돈을 빌려주면서 가진 자에게는 싼 이자로, 갖지 못한 자에게는 높은 이자를 받는다. 씨티의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하다. 씨티의 이번 전략은 부자고객만 상대하고 일반인, 특히 지방 및 고령자에 대한 역차별을 의미한다. 씨티가 영업점 폐쇄로 돈을 더 많이 벌게 되면 배당이나 경영진 급여가 더 높아질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를 시중은행으로서 건전하고 타당한 사업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금융당국은 씨티의 지점폐쇄로 인한 소비자 불편 여부를 점검해보겠다고 말하지만 면피성 발언이라는 것은 쉬 짐작할 수 있다. 행여 신한이 씨티처럼 지점의 80% 폐쇄를 선언한다면 뒷짐만 지고 있을까. 은행업은 그 자체만으로 제도적 수혜를 누리는 업종이다. 최소한의 공적 기능도 부담하지 않는 은행에 면허를 주고 보호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한편으로 씨티의 파격은 우리에게 4차 산업혁명에 준비는 되어 있는가를 묻는다. 최근 은행 창구에 가 본 기억이 있나? 기껏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찾는 게 전부일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창구에서 입출금이나 이체하는 고객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입출금 전표로 현금을 맡기고 찾던 금융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말한 ‘우리는 정보기술(IT)회사’라는 말은 새삼스럽지 않다. 골드만삭스는 직원 3만5000명 중 9000명이 IT 인력이다.

미국이나 영국 은행들의 영업점 폐쇄는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국내은행들도 지점을 줄여가고 있다. 5대은행의 경우 지난해 점포 수는 총 4392개로 전년보다 3.83% 줄었다. 이미 은행의 비대면 서비스는 우리 곁에 있다. 비대면 서비스는 정보나 서비스를 받는데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장점은 많다. 사람이었다면 눈치도 보이고 시간 제약도 있고 태도도 차이가 있고 하지만 비대면 서비스에서는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 제공받는 정보의 수준도 높다.

‘인간’ 은행원들은 이제 절체절명의 순간이 됐다. 전조등 없이 밤길을 운전하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수십 년간 영업점에서 송금·외환·대출 등으로 고객을 응대하며 쌓아온 은행원들의 경력은 혁신적 기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씨티 보고서에는 미국과 유럽 은행에서 향후 10년간 일자리 170만개가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현재 인력의 30%에 해당한다.

4차 산업혁명을 쉽게 말하면 영리한 컴퓨터가 사람이 맡는 업무를 대신하는 것이다. 관련 기술 직군과 산업분야에서 새 일자리도 등장하겠지만 총량은 감소할 것이라는 게 미래학자들의 일치된 예측이다.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같은 이는 1960년대에는 미국의 25~54세 인구 20명 중 1명만 일을 안 했지만 앞으로 10년 내 7명은 일을 못하게 될 것으로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이 결코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엄청난 갈림길에 금융당국은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