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과 최태원 회장의 ‘신정경유착’

2017.08.07 20:54 입력 2017.08.08 09:15 수정
박용채 논설위원

비빔빵? 비빔밥의 오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각종 야채에 고추장까지 버무려 만든 빵이다. 값은 개당 3000원. 이미 먹어본 이들도 있겠지만 7월 말 대통령과 기업인의 만남에서 최태원 SK 회장이 사회적기업 얘기를 하면서 사례로 들어 화제가 됐다. 이 빵을 만든 곳은 전주빵카페라는 사회적기업이다. 직원은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24명으로, 월 매출액은 7000만원 안팎이다. 당시 문 대통령과 최 회장 간의 대화를 복기해 보자.

[박용채 칼럼]문 대통령과 최태원 회장의 ‘신정경유착’

문 대통령 = 사회적 경제라는 책도 쓰시고, 투자도 많이 하시고, 성과가 어떻습니까.

최 회장 = 한 10년 가까이 투자했습니다. 정부가 하는 것처럼 효율성을 갖고 투자를 해 나가면 일자리 창출의 또 다른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문 대통령 = 그룹에서 투자를 많이 합니까.

최 회장 = 매년 500억원 이상씩은 계속해왔습니다.

문 대통령 = 유럽에서는 사회적 경제 일자리가 전체 고용의 7%까지 차지할 정도의 나라가 있는데 우리는 아직 까마득하죠.

최 회장 = 우리는 0.4% 정도입니다. 5년 안에 3%까지 가봤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가 공공조달 부문에서 사회적기업의 접근을 확대하고, 사회적 가치 창출을 측정·평가하는 시스템 도입을 제안해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최 회장은 요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움직임에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SK브로드밴드가 정규직 전환으로 화답했다. “과거 관심사는 재무적 이슈였으나 이제는 사회적 이슈여야 한다. 고도성장기에 묻고 넘겨왔던 문제들을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내 사회적기업 10만개를 육성하자” “SK의 ‘딥 체인지’(큰 변화)의 핵심은 공유 인프라이다. 사회문제 해결에 더 나서야 한다”는 발언도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2·3차 협력사들과 이익을 공유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거론하자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이건희 삼성 회장)는 반응을 떠올리면 파격적이다.

새 정부 출범 때 흔히 봐오던 코드 맞추기인가? 분식회계와 횡령 혐의로 두차례 수감되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점을 감안하면 손타쿠(忖度·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일본말)로 비칠 법하다. 다만 최 회장이 지난 수년째 사회적기업에 공을 들인 점을 감안하면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최 회장은 기업인으로는 드물게 사회적기업 전문가이다. 2009년 이 개념을 접한 뒤 2014년에는 옥중에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이란 책도 펴냈다. SK는 일감몰아주기 등의 논란이 일었던 재벌들의 소모성 제품 구매업체를 처음으로 사회적기업으로 바꾸는 등 현재까지 사회적기업 12곳을 직접 지원하면서 1700여명을 고용했다.

일자리 창출의 최대 고민은 방법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문제가 부각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공무원 증원 과제는 공무원사회의 효율성 문제뿐 아니라, 막대한 재원 소요 등의 문제점도 안고 있다. 비정규직, 청년들 문제 못지않게 장애인, 노인 등 사회 약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또한 일자리를 통한 소득보장이다. 소득 보장이 안되니 삶의 수준도 낮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적기업은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기업은 영세하고 노동집약적 분야가 많아 고용창출 효과가 높다. 산업평균 고용유발계수가 10억원당 8.5명인 데 반해 사회적기업은 21.6명이다.

정부가 사회적기업 정책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난해 말 현재 인증 기업은 1672개(고용인원 3만6858명)로 미미하다. 단순히 지원금을 주는 방식은 의존성만 심화시킬 뿐 지속가능하지 않다. 사회적기업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제품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는 절대적이다. 당연히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스스로 재무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장애인 고용촉진법도 바꿔 기업들이 미고용부담금으로 사회적 약자의 고용을 회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사회적기업을 키우는 것은 정부가 메우지 못하는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다. 비틀스의 명곡 ‘블랙버드’에는 ‘부러진 날개로 날아오르는 법을 배워/평생 이 순간이 떠오르기를 기다려왔어’라는 구절이 있다. 사회적 약자들 역시 모두들 안정된 일자리를 통한 정상적 생활을 원한다. 문 대통령과 최 회장이 사회적기업 확산을 위해 유착한다면 100번이라도 박수를 치겠다. 이는 반기업 정서를 없애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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