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 자메이카, 달리기

2017.08.07 20:58 입력 2017.08.07 21:02 수정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볼트, 자메이카, 달리기

음악평론가 강헌씨가 재즈를 설명하면서 ‘흑인 특유의 폐활량과 두툼한 입술’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이에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인종주의적 표현이 아닌가’ 하고 우려한 적 있다. 물론 강헌씨는 재즈를 신체적 특징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19세기 노예 무역과 남북전쟁, 철도와 시카고, 2차 세계대전과 뉴욕, 1960년대 정체성의 미학과 민권운동 등을 두루 언급하였다. 서정민갑씨의 우려도 조잡한 비난은 아니다. 신체적 특징에 대한 과도한 표현이 복합적인 음악 세계를 일거에 덮어버릴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볼트, 자메이카, 달리기

이처럼 특정 예술 분야를 그 인종적이고 신체적인 특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거부하기 어려운 심미적 풍경도 있다.

며칠 전 유튜브로 현존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 허비 행콕을 위한 헌정 공연을 보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까지 참석한 기념비적인 공연이다. 평생의 ‘지음’인 웨인 쇼터를 비롯하여 칙 코리아, 잭 디조넷, 마커스 밀러 등이 무대를 채웠으며 힙합의 절대지존 스눕 독까지 등장했다.

나는 한쪽 눈으로는 온갖 악기들을 윷놀이 하듯 다루는 최고 명인들의 공연을 보면서도 다른 눈으로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았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관중들의 몸짓은, 그루브를 타고 비트를 즐기는 것이었고 그에 비하여 백인 관중들의 몸짓은 간소했다. 이때, 약간의 인종적 특성과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차이’다. 특정 예술이 특정 피부색과 반드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쇼미더머니 6>의 ‘N분의 1’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조우찬은 13살, 초등학생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우사인 볼트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100m 마지막 기록은 9초95로 3위. 하지만 그의 위업은 찬란하다. 그가 이룩한 기록과 성적을 일일이 적는다면 이 지면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니 개틀린처럼, 볼트라는 이름 앞에 경의를 표할 뿐, 나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볼트를 말하면서 대개 자메이카를 동시에 언급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20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는 대구광역시 정도로 260만여명이며 국내총생산(GDP)은 143억달러로 세계 118위의 가난한 나라다. 볼트를 비롯하여 아사다 파웰, 일레인 톰슨 같은 선수들이 성장기만이 아니라 전성기 시절에도 잔디가 듬성듬성 나 있는 트랙에서 훈련할 정도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작고 가난한 나라가 육상의 강자가 되었을까.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벤 존슨(캐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린퍼드 크리스티(영국),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도노반 베일리(캐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멀린 오티(슬로베니아) 등이 자메이카 출신이다.

자메이카의 육상을 설명하면서 쉽게 떠올리는 것이 그 유전자와 토종 음식이다. 글래스고대학과 서인도대학이 200명 이상 자메이카 육상 선수들을 조사했더니 ‘액티넨 A’라는 특이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근육 수축와 이완을 빨리 일으키는 유전자라고 한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참마가 선수들의 스피드를 배가시키는 데 효험이 있다는 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은 재즈와 흑인의 폐활량처럼, 물리적인 요인으로는 충분히 거론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유전자적 특징과 풍토적인 속성이 절대적인 이유처럼 표현되어서는 곤란하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국내 방송사는 줄곧 아프리카 선수들을 ‘흑인 특유의 파워’라는 말로 묘사했다.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전략이나 전술 없이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준다. 그 밖의 더 중요한 요인들은 이러한 오해와 편견 아래 묻혀 버린다. 나아가 제3세계의 당대적 삶 자체가 소멸된다.

다시 자메이카 얘기를 해보자. ‘타고난 기질’ 말고 그들이 이뤄낸 20세기적 성취 말이다. 자메이카 출신의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 올란도 패터슨은 특정 종목과 인종의 관련성을 의심한다. 오래전 자메이카인들은 서아프리카에서 건너왔다. 오늘날 서아프리카는 케냐 같은 동아프리카에 비해 육상을 잘하지는 않는다. 산악지대가 많은 자연 환경에서 ‘거침없이’ 달리다 보니 잘 달리게 되었다는 원시적인 해석도 거부한다.

대신 패터슨 교수는 공중보건과 사회체육을 거론한다. 20세기 초엽,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은 미국의 록펠러 재단 같은 곳의 원조를 받으면서 자국의 질병 퇴치와 보건위생 개선을 시도했다. 이 사업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의료봉사단의 능력과 헌신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재원이 필요하다. 재정이 열악한 자메이카는 주거환경의 개선과 사회 체육의 확산을 통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려 했다. 상대적으로 재원이 덜 드는 달리기는 최고의 사회 재생과 활력의 수단이었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 자메이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극대화되는 ‘라스파타리아니즘’의 분위기 속에서, 자메이카는 달리기를 통한 개인 건강 도모와 사회적 활력 신장에 집중하게 된다. 동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렸고 정기적으로 대회가 열렸으며 그 탄탄한 저변 속에서 곳곳에서 우사인 볼트 같은 선수가 속출했다. 이런 자메이카 육상의 핵심이 자메이카 공과대학이다. 이 학교는 ‘육상학교’를 모태로 출발하여 1960년대에 선진적인 스포츠과학을 접목하였으며 오늘날 세계 육상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자메이카 육상은 타고난 인종적 특징이나 신토불이 음식의 성과가 아니라, 가난과 비위생의 생존 조건을 벗어나려는 자메이카의 ‘현대적 삶’의 성취다.

솔직히 여기에 밥 말리의 저항적인 레게 문화 운동까지 덧붙이고 싶으나 그 또한 과잉 해석인 듯하여 자제한다. 다만 2012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에서 울려 퍼졌던 밥 말리의 노래들 그리고 2006년에 맨체스터에서 직접 보았던 수많은 자메이카 축구팬들의 레게 응원이 단순히 그들의 신체적 특징이 넘실댔던 장면이 아니라, 식민과 가난의 일그러진 현대성을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몸짓이었음을 기억하고 싶다. 우사인 볼트의 달리기 그리고 그의 유쾌하고도 의미 있는 세리머니 또한 그러하다. 그는 단순히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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