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의존도 줄여야 코리아 패싱 막을 수 있다

2017.08.15 21:11 입력 2017.08.15 21:25 수정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횡행한다. 어법에도 맞지 않고 출처도 알 수 없는 이 말은 어느덧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당사국인 한국은 논의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유신모의 외교 포커스]대미 의존도 줄여야 코리아 패싱 막을 수 있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점점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북·미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부 각료들이 내뱉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난 1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방송에서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거기서 일어나는 일이고 수천명이 죽는다 해도 거기서 죽는 것”이라는 말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면전에서 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말한 ‘거기’는 한반도다. 미국이 아닌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니 누가 죽든 상관없다는 의미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북한에 대해 국제법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예방 타격’을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다. 이쯤 되면 동맹국이자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한국의 존재 자체가 안중에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항상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위협받아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에는 한국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요소가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그에 따른 균형감 상실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미국에 인정받는 진보 정권이 되려는 듯 한·미 정상회담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할 때 곧이어 따라올 한·중 정상회담을 함께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짰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일단 한·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보자는 태도로 임했다. 결국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매끈매끈하게 나왔지만, 그 안에는 중국을 자극할 만한 내용이 가득했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한국이 주변국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미국과 한 몸처럼 밀착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지났다. 한국이 존재감을 가지려면 한국 고유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미국과 같은 입장이라면 주변국들이 한국을 상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해결하면 되는데 굳이 한국에 의견을 묻고 이해를 구하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가장 믿고 의지한다는 미국조차 한국을 가벼이 보고 있는데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은 사드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을 미국의 하수인쯤 취급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한국은 제치고 미국만 보고 가면 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다.

남북관계 당사자인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군사회담·적십자회담 제안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연설에서 “미국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생존방식으로 하고 있는 일본과 남조선 당국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미국과 담판하면 한국은 저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부도 인정하고 있듯이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사안에서 한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한국이 미·중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균형감을 갖고 중심을 잡을 수는 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자격으로 미·중이 받아들일 수 있고 북한도 관심을 가질 만한 창의적 해법을 꾸준히 개발하고 제시하고 설득해 판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한국의 역할이다. 특히 지금처럼 미국의 대북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는 한국의 행동반경이 넓어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교환하는 방안은 적극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 이 방법은 미국 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타당성을 인정받았다. 중국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며 북한이 원하는 요소도 포함돼 있다. 문재인 정부도 당초 이 방안을 구상했지만 국내 보수층과 미 행정부 일각의 반발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접어버린 상태다.

정부는 북한의 ‘불법적’ 핵·미사일 활동과 ‘합법적’ 방어훈련은 교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자가당착이며 현실부정이다. 그런 논리라면 북핵 문제 자체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과거 제네바 합의, 2·13 합의를 통해 북한에 중유와 경수로 제공을 약속하고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이런 논리를 고수하는 것은 현실 타개를 외면하는 것이며 위기 극복의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는 지난 지금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에는 후한 성적을 주기 어렵다. 전임 정부로부터 가혹한 외교환경을 물려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정말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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