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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문제는 코칭스태프다

2017.09.04 21:30 입력 2017.09.04 21:32 수정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한국 축구, 문제는 코칭스태프다

열광의 경기장이 싸늘한 냉소로 바뀐 지 5일째, 칼럼을 쓰기가 여의치 않은 시점이다. 지난 목요일 밤에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며칠 동안 수많은 언론과 축구팬들이 다해버렸다. 대부분의 비판은 적절했다. ‘악으로 깡으로’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축구는 머리로, 그러니까 명석한 판단과 기술로 하는 것이다.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한국 축구, 문제는 코칭스태프다

그리고 오늘 밤, 중앙아시아 최대 공업도시 타슈켄트의 경기장을 우리는 또한 열망한다. 경우의 수? 까짓 거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라. 이런 기대들을 누구나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축구는 이처럼 얼핏 보기에 양립하기 어려운 양극단 사이에 있다. 팬들의 함성이나 잔디 상태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켜내되 전술적으로 유의미한 공간을 순간적으로 파악하여 신묘하게 접근해 나가는 기술? 그것을 아쉽게도 우리 대표팀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지치게 된다. 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지고 몸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여 오히려 둔하게 움직이게 된다.

지난 이란전, 경기 시작하자마자 텔레비전 중계에서는 ‘대표팀이라는 각오와 정신력으로’라는 말이 들려왔는데 스포츠 경기는 무게를 달 수 없는 그 무슨 정신력을 겨루는 행위가 아니다. 이란과의 졸전 후에 김남일 코치가 ‘빠따’(몽둥이)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설마 ‘빠따’를 치지도 않겠지만 ‘빠따’를 친다 해서 달라질 게 없는 게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그러나 지금의 대표팀을 살펴보기 위한 열쇠말이다. 지난 7월12일, 코치로 선임되면서 김남일은 “마음 같으면 지금 들어가서 바로 ‘빠따’라도 좀 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김남일 코치는 덧붙였다. “세월도 많이 흐르고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 같고요. 어떤 마음을 갖고 경기장에 나가야 되는지를 후배들한테 좀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여 ‘빠따라도 치고 싶다’는 말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나는 해프닝으로 넘기고 싶지 않다. ‘터프’한 성격의 신임 코치가 젊은 선수들에게 뼈있는 덕담을 한 것이라고 넘겨서는 안된다. ‘빠따’는 곧장 ‘애정 어린 질책’으로 해석되면서 여러 언론과 인터넷에서 긍정적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어느 스포츠 뉴스는 “김 코치는 후배들에게 쓴소리부터 했습니다. 이런 걸 ‘사이다 발언’이라고 하나요”라고 보도했다. 어느 스포츠지는 “요즘 젊은 선수들이 간절함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승부 근성’과 ‘국위선양’ 정신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빠따’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의 ‘승부 근성’으로 이어지고 ‘태극마크를 향한 간절함’으로 연결되어 ‘대한건아 국위선양’으로까지 격상되었다. 그리고 이란과의 졸전으로 인하여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대표팀의 ‘태도와 자격’을 문제 삼는 식으로 헝클어졌다.

문제는 기술이지 정신력이 아니다. 그 무슨 ‘정신력이 뒷받침된 기술’ 같은 형용모순도 아니며 신태용 감독 개인에게 덮어씌울 문제도 아니다. 지금 대표팀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세계 축구에 간신히 턱걸이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정적인 것은, 현재의 코칭스태프가 장기적인 계획과 안정된 구도 속에 안착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태용 감독은 부임한 지 겨우 두 달이 지났다. 그사이, 유럽의 여러 리그들은 휴식기였고 8월 말에 일제히 개막한 경기들에서 이른바 유럽파들은 부상이나 팀내 경쟁 등으로 밀린 상태다.

선임되자마자 K리그에 방점을 찍었지만 각 포지션에서 한두 명의 획기적인 선택이 있었을 뿐 비교적 많이 선발했다 해서 시너지가 자연스럽게 생기지는 않았다. 기성용의 부상으로 경기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는 그라운드 안의 조율사가 없었다.

특히 7월 초순의 코칭스태프 구성은 이미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둘이 합쳐 A매치 174경기에 달하는 김남일과 차두리는, 그러나 코치 경험이 짧고 그나마도 지속적이지 못했다. 2016년 4월 선수에서 은퇴한 김남일은 축구협회 미래전략기획단 위원으로 있다가 2017년 2월 중국 장쑤 쑤닝의 코치로 부임하여 4개월 활동했다. 그게 전부다. 차두리는 2016년 10월 전력분석관이라는 ‘위장 보직’으로 사실상 코치 역할을 하다가 A급 자격증 문제 등으로 올해 4월에 자진 사퇴했다가 7월에 복귀했다.

그나마 전경준 수석코치가 이들보다는 경력이 많지만 그래 봐야 2012년부터이며 그것도 프로구단 제주의 짧은 경력을 제외하고 보면 대체로 20세 이하의 성장기 선수들과 생활했다. 전임 코치가 ‘나이, 선후배’ 등을 감안하여 사퇴함으로써 신 감독보다 ‘후배’로 현재 골키퍼 코치를 맡고 있는 김해운 정도가 일정 경력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경기 전체를 주도할 만한 포지션은 아니다.

이렇게 구성된 대표팀에 물어보자. 이 중에서 누가 대표팀의 상시적인 전력 향상과 실제 경기 중의 효과적인 전술 구사 및 임기응변을 하는가. 물론 감독이다. 그러나 감독 외에는 누구란 말인가. 언필칭 코칭스태프 아닌가. 급변하는 세계 축구의 흐름은 누가 파악하고 보고하여 토론하는가. 3개 대륙 전역에 나가 있는 해외 선수들의 역량과 컨디션은 누가 분석하는가. 국내 선수들의 심리 상태와 기술 수준은 누가 판단하는가. 어떻게든 이런 과정을 거쳐 집중된 정보들을 어떻게들 토론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가.

‘기술’이 관건이라고 할 때, 바로 이런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사안의 강렬한 실천이 중요하다. 타슈켄트 이후 한국 대표팀은 막연한 기술 보강이나 추상적인 정신력이 아니라, 현재의 코칭스태프에 대한 날카로운 점검부터 해내야 한다. 그 속에 기술이 있고 그 속에 정신력이 있다. 그게 ‘빠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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