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여자들도 군대 간다?…유럽 징병제 부활 바로보기

2017.10.07 11:42 입력 2017.10.07 11:49 수정
나지원 EAI(동아시아연구원) 연구원

평등 앞서 병력증강 해법의 일환… 복무환경 개선 등 동기부여가 먼

“남성만의 실질적 독박 국방의무 이행에서 벗어나 여성도 의무 이행에 동참하도록 법률개정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청와대 웹사이트 ‘국민청원 및 제안’에 제출된 이 청원은 12만3000여명이 참여하며 다양한 청원 중에서도 특히 논쟁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여성 병역 수행 논란을 단지 남녀갈등의 문제로만 파악하는 것은 게으른 추론이다. 몇 년 새 소재만 바꿔가며 지속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성평등 논쟁이 바탕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석에서나 회자되던 주제가 공론장에 나온 것은 고령화와 인구절벽의 위기감이 좀 더 피부에 와닿게 된, 좀 더 구체적인 맥락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 군 복무 논쟁만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보다는 모병제 등 병력 충원 개편에 관한 다른 논의와 더불어 인구문제, 사회적 인식, 경제력, 안보환경 등 한국 사회의 여러 조건들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징병제 시행국가(2017년 현재)/Center for Security Studies 바탕으로 필자가 구성

유럽의 징병제 시행국가(2017년 현재)/Center for Security Studies 바탕으로 필자가 구성

■유럽 여성 징병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뿐

“남성만의 실질적 독박 국방의무 이행에서 벗어나 여성도 의무 이행에 동참하도록 법률개정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청와대 웹사이트 ‘국민청원 및 제안’에 제출된 이 청원은 12만 3000여 명이 참여하며 다양한 청원 중에서도 특히 논쟁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여성 병역 수행 논란을 단지 남녀갈등의 문제로만 파악하는 것은 게으른 추론이다. 몇 년 새 소재만 바꿔가며 지속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 성 평등 논쟁이 바탕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석에서나 회자되던 주제가 공론장에 나온 것은 고령화와 인구절벽의 위기감이 좀 더 피부에 와닿게 된, 좀 더 구체적인 맥락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 군 복무 논쟁만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보다는 모병제 등 병력 충원 개편에 관한 다른 논의와 더불어 인구 문제, 사회적 인식, 경제력, 안보 환경 등 한국 사회의 여러 조건들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성 군 복무와 징병제 (재)도입 움직임 역시 각국의 독특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한국의 군 복무 논쟁에서 남성만 ‘독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근거로 ‘유럽 국가들(과 이스라엘)도 실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거론된다. 성 평등을 논하려면 ‘선진국 여성들’처럼 의무도 동등하게 분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유럽 국가 중에서 현재 여성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거나 할 예정인 국가는 노르웨이(2016년 7월)과 스웨덴(2018년 1월)뿐이다.

사실 1990년 냉전 종식 후 유럽에서는 징병제 폐지가 큰 흐름이었고 2013년까지 24개국이 징병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2014)와 리투아니아(2015)가 최근 징병제를 재도입했고 서유럽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연이은 테러 공격으로 안보에 대한 불안이 커진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유럽 전체로 보면 변화의 가장 큰 도화선은 역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 반도 합병 등 일련의 무력 사태를 지켜본 유럽 국가들은 탈냉전기의 평화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여성 징병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징병제를 추진하고 강화한 국가들이 러시아의 인접국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남녀 의무복무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 역시 이러한 안보환경 악화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특히 스웨덴의 경우, 2010년 모병제로 전환한 이후 예상보다 병력 충원이 힘들었다는 점도 요인이었다. 2015년 징병제를 재개한 리투아니아 정부가 징집 가능한 연령대의 남성 인구가 감소로 고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여성도 징집의 대상이 된 것은 성 평등의 문제이기에 앞서 병력 증강과 인구 부족이라는 상충하는 조건에서 나온 절충안인 것이다.

하지만 명목상 징병제라고 하더라도 실상은 국가마다 판이하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징집 대상 인구 전체에게 병역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인원만큼만 선발한다. 스웨덴의 경우, 향후 매년 최대 8000명의 남녀를 징집할 예정인데 이는 징집 대상 인구 중 9%에 불과하다. 또 스웨덴 병무청은 매년 18세 남녀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군 복무 의사를 밝힌 사람들부터 우선 선발하기로 했다. 2015년 노드그렌 크리스텐슨 전 의원이 주도한 징병제 재도입 의회 보고서에서 동기부여가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나를 끌고 갈까?”가 아니라 “나를 뽑아줄까?”라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역시 여성 의무병역제 도입에 앞서 이 부분에 가장 신경을 썼다. 우선 징집 대상인 젊은 여성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홍보 캠페인과 함께 병역의 모든 사항을 가감 없이 알리면서 군 복무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제고했다. 또 성별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적성과 역량만을 따져 선발함으로써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양성 징병제 도입 이후 복무 인원 중 여성 90%, 남성 83%가 군 경험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스웨덴 역시 이웃의 성공 사례를 참고해 유사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제도의 안착과 동기부여가 가능했던 근본 이유는 이들 국가에서 군 복무가 사회적, 직업적으로 매력적이고 명예로운 선택이라는 점이다. 노르웨이 대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군대는 꾸준히 인기 직장 20위 안에 들고 있으며 이력서에서도 중요한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징병제 재도입에 국민 62%가 찬성한 스웨덴 역시 군 복무가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병사들에게 장교와 동일한 시설과 생활수준을 보장할 계획이다.

■병역에 대한 우호적 사회인식 필요

다시 말해, 병역에 대한 사회인식, 업무와 생활환경, 군 경력의 보편적 인정 등 물질적, 제도적, 문화적 기반을 갖춘 국가에서 비로소 여성 징병제를 성공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여성 징병은 남자도 군대에 갈 만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고, 이에 더해 성 평등이 사회적으로 정착된 나라가 병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방편인 것이다. 여성 징병제로 알려진 또 다른 국가인 이스라엘에서 군내 성범죄와 성차별이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현실은 남녀가 함께 병역을 수행한다고 저절로 성 평등이 촉진되지는 않는다는 방증이다. 고전적 공화주의에서는 군대가 공동체 의식과 시민의 덕성을 함양하는 ‘학교’역할을 한다고 보았지만 이는 국민 개념이 형성되던 시대에 적합한 이론이며, 현대에는 오히려 군이 외부 사회의 구조와 문화를 확대재생산하는 측면이 더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여자들도 군대 간다?…유럽 징병제 부활 바로보기

한편으로 기술 발전으로 군사에서도 전문성이 중시되면서 시민군에 대비되는 직업군의 속성 역시 꾸준히 강조되고 있다. 병역 또한 직업 선택의 자유에 속한다는 자유주의적 관점과도 맞닿아있는 이 경향의 연장선상에 모병제가 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사례 또한 본질적으로 징병과 모병의 혼합형이라는 점에서 상황에 맞게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모델 사이의 균형점을 모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념할 것은 이 실험의 성공사례라고 할 만한 국가는 노르웨이뿐이며 그조차 5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모델의 보편적 적용 가능성은 인구가 노르웨이의 두 배에 육박하고 영토도 더 큰 스웨덴의 성공에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여러 모로 동떨어진 유럽 국가보다는 2014년까지 모병제 전면 전환을 공언했다가 지원자 미달과 국방비 지출 급증으로 2018년까지 일정이 지연된 대만 사례가 더 많은 교훈을 준다.

대만군이 병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는 군내 폭행과 사망 사건 등 연이은 추문으로 직업으로서 군인의 매력이 떨어지고 출산율 급감으로 병역자원의 규모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 지목된다. 또한 인근에 안보 위협이 상존하며, 전선은 길고 종심(縱深, 전방에서 후방까지 거리)은 짧아 국토 전체가 곧바로 전장이 되는 지리조건에서 소수정예를 근간으로 하는 모병제는 부적합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체로 한국에 옮겨놓아도 타당한 지적이다.

결국 군 복무 환경 개선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경제적 조건 그리고 안보 환경에 대한 검토 없이 여성 징병이나 모병제 등 병역제도 전환부터 논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군의 존재이유가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 즉 국방에 있다는 점에서 병역제도에 대한 모든 고려 역시 숙련되고 의욕 넘치는 병력의 육성과 유지라는 목표에 최우선적으로 부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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