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우경화의 엔진...6만명 극우집회 조직한 '청년 민족주의'

2017.11.13 17:47
이인숙 기자

폴란드 깃발을 든 민족주의자들이 독립기념일인 11일 수도 바르샤바의 포니아토우스키 다리를 행진하고 있다. 이날 바르샤바 도심에는 극우 민족주의자 6만명이 집결했다. 바르샤바|EPA연합뉴스

폴란드 깃발을 든 민족주의자들이 독립기념일인 11일 수도 바르샤바의 포니아토우스키 다리를 행진하고 있다. 이날 바르샤바 도심에는 극우 민족주의자 6만명이 집결했다. 바르샤바|EPA연합뉴스

“순수한 피” “하얀 유럽”

지난 1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시내가 붉은색과 흰색으로 물들었다. 극우 민족주의자, 신나치주의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십자가와 나치의 상징 스와스티카, 횃불을 들었다. 폴란드 뿐 아니라 스웨덴, 영국, 헝가리 등 유럽 각지에서 집결했다. 최근 미국·유럽에서 일어난 극우 집회 중 최대라는 말이 나왔다.

이날은 폴란드가 지도에서 123년 동안 사라졌다가 99년 전 다시 주권을 되찾은 독립기념일이다. 폴란드인에게는 의미가 깊은 국경절이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극우세력이 조직한 ‘독립의 행진’ 행사가 이날을 점령하고 있다. 2012년 ‘독립의 행진’이 시작됐을 때 가담한 이들은 수백명에 불과했지만 이날 참가자는 6만여명에 달했다. 이들에 대항하는 시위대는 2000여명 규모였다.

이날 행사는 기독교 민족주의 청년단체 전폴란드청년, 신나치주의 단체 민족급진진영, 이들과 연계된 극우 정당 민족운동이 조직했다. 최근 몇년 사이 20~30대 청년이 주도하는 민족주의는 폴란드의 우경화를 추동하는 엔진으로 부상했다. 폴란드 중도 언론 가제타 비보르타는 13일 이들을 ‘자발적 민족주의자’라고 표현하며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적이며 반자본주의적”이라고 적었다.

2년 전 총선에서 극보수 법과정의당의 압승 뒤에는 이들의 몰표가 있었다. 당시 출구조사에서 18~26세 유권자의 3분의 2가 법과정의당을 비롯한 3개 우파 정당을 선택했다. 1990년 민주화 이후 좌파 정당이 한 석도 얻지 못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청년들의 선택의 근저에는 공산주의 붕괴 후 경제개혁의 실패로 인한 실업난, 부동산 가격 폭등 등으로 인한 좌절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기득권 정치, 자본주의와 유럽연합(EU)에 대한 반감으로 연결됐다. 폴란드 뿐 아니라, 헝가리, 슬로베니아 등 과거 공산권 중유럽 청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수정당은 이런 심리를 이용했다. 폴란드 정부는 이날 ‘독립의 행진’ 행사를 정규 행사로 인정하고 있다. 마리우스 부아쉬타크 폴란드 내무부 장관은 행진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시위에 등장한 이슬람 혐오, 반유대주의, 성소수자 반대 슬로건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불가리아 인문사회연구재단의 역사학자 톰 준스는 “포퓰리즘에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이 애국주의를 소비하고 있다”며 “집권세력의 ‘역사 정치’와 소비적 애국주의의 결합은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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