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

2017.11.27 21:20 입력 2017.11.27 21:22 수정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평화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 그 험난한 도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휴전을 결의하는 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로써, 숱한 무리수와 거의 파괴적인 개발 홍역에도 불구하고, 내년 2월의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려야만 하는 상황적 명분을 일단 사후적으로라도 확보했다.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평화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

다행이다.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평창 올림픽의 역사적 명분이나 문화적 가치는 훨씬 가벼워졌을 것이다. 김연아 홍보대사가 특별연설에서 밝힌 대로 평창 올림픽은 “남북의 얼어붙은 경계를 넘어서 평화적 분위기 조성”을 모색할 수 있는 일차적인 출발점이다.

그러나, 누구나 아다시피, 결의안 채택이나 특별연설로 평화적 분위기가 금세 조성되지는 않는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인류는 이미 기원전부터 평화적인 황금시대를 살아왔을 것이다.

근래의 올림픽 역사에는 피의 흔적이 배어 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는 선수촌에 테러집단이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했고 1984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사라예보는 1990년대 이후 끔찍한 내전에 시달렸다. 올림픽 기간 중에라도 휴전을 하자는 결의를 1993년부터 채택해 왔지만 러시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당일에 조지아를 침공했다.

결의안이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올림픽의 흑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로서는 193개 회원국 중 157개국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휴전결의안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크게 세 가지로 천명된 사안 중 핵심은 올림픽 기간 전후(개최 7일 전부터 종료 7일 후까지) 적대행위 중단이다. 이 기간만이라도 북은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남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쌍중단’인데, 이를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므로, 우리로서는 유엔의 휴전결의안을 효과적인 우회로로 삼아 일시적이나마 실질적인 상호 적대행위 중단을 추진할 수 있다.

아직 청와대와 군 당국은 ‘한·미동맹’이라는 강력한 제어장치를 고려하여 훈련 연기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단이 취소가 아니라 연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추진할 만한 사항이다. 현재 북한은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밝힌 상태는 아니지만, 가을 이후 겨울에 이르는 동안 일단 충격적인 도발 요법은 쓰지 않고 있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의문이지만, 최소한 북한 병사의 판문점을 통한 탈북 사건 등의 국지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평화를 위한 평창 올림픽의 의지를 다각도로 밝히면서 북한 선수단의 참가, 안전 보장 및 스포츠 교류를 위한 특사 교환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면, 적어도 내년 2월의 한반도가 조금은 더 따스해질 것이다.

결의안 중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다. 이 결의안이 북한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상정하고 채택된 것이지만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라는 목표는 특정 국가의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인류사적 목표다. 비단 올림픽 기간만이 아니라, 남북 상호간에나 우리 사회 내부에서나, 반드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숙제다. 평화는, 단순한 캠페인 몇 번으로는 도저히 획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단순히 말로 도달할 수 있는 지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호 군사행동 중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스포츠를 통한 평화, 개발, 인권 증진’이라는 유엔결의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좋은 말 대잔치’로 그쳐서는 안될 중요한 사안이다.

‘스포츠를 통한’이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도구적 측면이다. 이른바 ‘핑퐁 외교’처럼,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상호 적대하는 나라끼리 친선의 가교로 만들거나 한 사회 내에 첨예한 갈등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스포츠는 충분히 그럴 만한 도구적 기능이 있고 국내외적으로 그러한 기능이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도구적으로 스포츠가 작동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더욱이 이렇게 도구적으로 잠깐 쓰이고 말 경우 그나마 그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기능조차 ‘이벤트’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스포츠를 통한’이라는 표현의 진정한 해석은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와 미학으로’라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스포츠나 올림픽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강한 신체적 능력의 비적대적 경쟁이라는 기본 골격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현재의 스포츠나 올림픽을 둘러싼 담론은 20세기 중엽 이후 강대국이 형성한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국가주의와 남성주의가 압도적인 가운데 약간의 휴머니즘과 헐거운 이벤트성 멘트들뿐이다.

이를 평창을 계기로, 두터운 휴머니즘과 다양한 가치들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 내전, 빈부격차, 인종 갈등, 교육, 성, 환경 파괴 등 21세기 들어 제기된 숱한 문제들이 스포츠와 연관되어 있다. 그것들은 심지어 스포츠를 통해 더욱 심해지거나 스포츠를 통해 파괴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를 제어하고 해결하는 것, 그것을 다름 아닌 ‘스포츠를 통해’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 유엔결의안의 가치적 해석이다. 앞으로 두 달 남짓, 짧은 기간이지만,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이 가치적 해석이 평창에서부터 가능할 수 있으며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천명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를 통한 다양한 가치의 새로운 실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때에, 올림픽 기간 중 상호 군사행동 중단도, 북한을 명분으로 고립시키려는 이벤트가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숭고한 결단임을 재천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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