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세이' 시대 31년 만에 막...아키히토 일왕 2019년 4월30일 퇴위, 왕세자 5월1일 즉위

2017.12.08 11:43 입력 2017.12.08 14:55 수정

일본 '헤이세이' 시대 31년 만에 막...아키히토 일왕 2019년 4월30일 퇴위, 왕세자 5월1일 즉위

2019년 4월 30일 퇴위가 결정된 아히키토 일왕(위 사진 왼쪽)과 그 다음날 새 일왕으로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아래 사진 오른쪽). EPA연합뉴스

2019년 4월 30일 퇴위가 결정된 아히키토 일왕(위 사진 왼쪽)과 그 다음날 새 일왕으로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아래 사진 오른쪽). EPA연합뉴스

지난해 퇴위 의사를 밝힌 아키히토(明仁) 일왕(83)이 2019년 4월 30일 퇴위하고 다음날인 5월 1일 장남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57)가 새 일왕으로 즉위하는 공식일정이 결정됐다. 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절대 군주’에서 ‘국가의 상징’으로 위상이 변한 일왕의 새 모델을 구축하려 했던 ‘헤이세이(平成·현 일왕의 연호)’ 일왕의 시대는 31 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2019년 4월 30일 퇴위, 바로 다음날 신 일왕 즉위

일본 정부는 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이같은 일정을 담은 정령(政令·법률의 하위 개념인 명령)을 의결했다. 일왕이 사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도 퇴위하는 것은 1817년 고카쿠(光格) 일왕 이후 202년 만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연호 ‘헤이세이(올해는 헤이세이 29년)’는 31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나루히토 왕세자의 즉위와 함께 사용될 새 연호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새 연호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아베 총리가 내년 여름쯤 결정하게 된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가 결정되면서 일본에선 근대 들어 처음으로 전·현직 일왕이 존재하게 된다고 NHK는 전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퇴위 이후엔 ‘상왕(上皇·조코)’으로, 왕비는 ‘상왕비(上皇后·조코고)’로 불리게 된다. 나루히토 왕세자가 즉위할 경우 왕위 계승 1순위가 되는 동생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왕자는 ‘왕세자(皇太子·고타이시)’ 대신 ‘왕사(皇嗣·고시)’라는 호칭을 사용하도록 했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퇴위 후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도쿄 지요다구 고쿄(皇居)의 ‘고쇼(御所)’에서 나루히토 왕세자가 거주하고 있는 미나토구의 ‘도구고쇼(東宮御所)’로 거처를 옮기고, 반대로 나루히토 왕세자 가족이 고쇼로 들어오게 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해 8월 생전에 중도 퇴위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전문가회의 등을 열어 ‘2018년 12월말 퇴위, 2019년 1월 1일 즉위’, ‘2019년 3월말 퇴위, 4월 1일 즉위’등의 방안을 논의해왔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일 도쿄 궁내청 특별회의실에서 중참 양원 의장과 최고재판소 장관(대법원장 격), 왕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왕실회의를 열고 ‘2019년 4월 30일 퇴위, 5월 1일 즉위’ 방안을 확정했다.

일본 정부는 새 일왕이 즉위하는 5월 1일을 축일로 정해 열흘 간의 장기 연휴를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5월 1일을 축일로 정할 경우 축일법 규정에 의해 그 전후인 4월 30일과 5월 2일도 휴일이 된다. 그렇게 되면 쇼와의 날과 어린이날 등 휴일을 끼고 4월27일부터 10일 연휴가 된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친국민 행보로 새 일왕상 구축 노력

히로히토 일왕(1926∼1989년 재위)의 장남인 아키히토 일왕은 ‘국가의 상징’으로 일왕을 규정한 현행 헌법에 충실하면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적극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일왕은 1889년 공포된 메이지헌법 하에선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는 ‘절대 군주’였지만, 패전 후인 1946년 공포된 현행 헌법은 일왕을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헌법 제1조)으로 “국정에 관한 권능을 지니지 않는다”(4조)고 명시해 상징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이 현행 헌법 하에서의 첫 일왕이 아키히토 일왕이다. 아버지 히로히토 일왕은 패전 후 자리를 보전했지만 ‘전쟁 책임론’에서 평생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비해 11세 때 패전을 지켜본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는 모습을 적극 보이면서 ‘국가 상징’으로서의 일왕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1989년 즉위 뒤 사이판과 오키나와 등 태평양전쟁 무대를 찾아 희생자를 위령하거나, 재해 지역을 방문해 이재민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했다. 이 때문에 일본 국민들이 일왕에게 보내는 경외심은 지대하다는 게 중평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특히 극우 일변도인 아베 정권과는 대비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3년간 2차대전 패전일(종전일)인 8월15일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반복해서 말해왔다. 반면 아베 총리는 ‘가해’와 ‘반성’ 언급을 피해왔다.

아키히토 일왕은 또 2001년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자신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지난 9월 20일에는 일본으로 건너온 고구려 왕족을 모시고 있는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 고마(高麗)신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에 이어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도 부친의 친국민 행보를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2015년 “전쟁의 기억이 옅어지려 하는 요즘 겸허히 과거를 돌아보고,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이를 알지 못하는 세대에게 비참한 체험이나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일부 우익 일부 세력은 일왕을 ‘국가원수’로 헌법에 명기할 것을 주장하는 등 일본에선 일왕을 중심으로 국민 총동원 체재가 가동됐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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