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 갇힌 여아를 ‘외모허상’ 아는 여성으로 키우려면

2017.12.22 17:24 입력 2017.12.22 17:27 수정
최현희|초등교사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한 장면. 안경을 끼고 통통한 소녀 올리브가 어른처럼 화장한 어린이들이 즐비한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한 장면. 안경을 끼고 통통한 소녀 올리브가 어른처럼 화장한 어린이들이 즐비한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예전 근무하던 학교 급식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급식을 먹다가 식판에 먹은 것을 도로 뱉어냈다. 담임 선생님이 깜짝 놀라 아이와 상담을 해보니 가정에서 여자는 절대 뚱뚱하면 안된다는 말을 수시로 듣는 아이였다고 한다. 항상 짧은 스커트에 잘록한 허리가 부각되는 옷을 주로 입는 비교적 마른 체형의 아이였다. 열 살 아이가 자신의 몸매나 외모에 대해 이토록 강박을 느끼는 일이 정상적인 것일까. 이 아이 한 명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우리나라 여성 아동 및 청소년(5~17세) 비만율은 14.1%이다. 이는 OECD 최하위 수준으로 매우 마른 편이다. 2015년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교육부·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결과에 따르면, 마른 사람(체질량지수 85% 미만) 중에서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여학생이 34.7%로, 신체 이미지 왜곡 인지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마른 체형의 여학생 10명 중 약 3.5명은 항상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10대 여성 청소년의 섭식장애 비율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교실에서 많은 학생들과 생활하다보면 통계의 숫자가 무섭게 현실로 다가온다. 6학년 담임을 할 때는 교실에서 늘 여학생들의 푸념을 듣곤 했다. “난 너무 뚱뚱해” “난 얼굴이 너무 커” “내 팔뚝 살 좀 봐” “난 다리가 너무 굵어. 완전 하체비만이야” 신체의 부분부분을 조각내어 스스로의 외모를 자조적으로 품평하는 아이들의 말을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한창 타인을 의식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을 청소년 시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자연스럽게 넘겨야 할까. 남학생들이 자신의 신체 이미지에 비교적 무심하고 장난스레 자신감을 비치기도 하는 것에 비해, 왜 여학생들에게서 자기 신체에 대한 만족감과 자신감이 부족한 현상이 유난히 두드러질까.

자기 몸매와 외모를 불평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보지만, 말하면서도 나의 말이 공중에서 힘없이 흩어지는 게 느껴진다. 지금 너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말이 아이들의 귓가에 닿지 않는다. “아이참. 선생님 또 그런다. 선생님이니까 그렇게 보는 거죠. 저 완전 뚱뚱해요”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미디어의 메시지가 내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말과는 정반대인 현실을 본다. 거리를 걸으면 전광판과 상점 유리마다 날씬하고 예쁜 젊은 여성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텔레비전을 켜면 나오는 다양한 개성과 연령대, 외모의 남성에 비해 여성은 젊고 마르며 ‘예쁜’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높은 기준의 미의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 연예인들은 쉽게 체중이나 외모에 대한 평가를 받고 웃음거리로 소비된다. 최근 한 예능에서 남성 패널들이 여성 아이돌의 나이가 26세라는 것을 강조하며 아이돌을 하기에 나이가 많다는 것을 놀림거리로 삼았다. 남성 패널들의 평균 나이는 40세는 될 법했다. ‘젊고’ ‘예쁘고’ ‘충분히 날씬하지’ 않은 여성은 미디어에서 긍정적으로 재현되지 않거나 연령이 있는 경우에는 주부나 엄마 역할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노력과 자질로 성취하며,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개성과 능력을 당당히 드러내는 여성 롤모델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드물다.

외모가 중요하며 특히 여성에게는 마른 몸과 예쁜 얼굴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거리에서, 광고에서, 예능과 드라마에서 심지어 뉴스에서도 소리를 높인다. 문화 전반에 퍼져 있는 여성의 이미지가 대부분 해롭지만 가끔 뉴스가 그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매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뉴스 앵커의 구성은 하나같이 중년의 남성 앵커 옆에 젊고 날씬한 매력적인 외모의 여성이 자리한다. 뉴스를 전하는 것에서조차 외모가 중요하다는 소리 없는 메시지는 외침이 꽤 크고 강력하다. 도대체 중년의 여성 앵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여아들은 끊임없이 미디어를 통해 성상품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접하며, 자신의 노력과 성취로 유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박탈당한다. 미디어가 젊고 마른 여성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현하고 다양한 체형과 연령의 여성을 부정적으로 다루거나 아예 삭제함으로써, 여아들은 여성을 은밀히 깎아내리고 하나의 대상(Object)으로 전락시키는 것에 무감각해진다.

여아들이 겪는 외모 압박감의 정도는 이전 세대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를 형성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는 수백개의 TV채널과 유튜브 등의 인터넷을 타고 아이들이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채널들은 관심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는 별다른 개입 없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된다. 반면 미디어의 발달속도에 비해 우리 사회 미디어의 공적 책임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학교에서 미디어 해독력을 배우는 것은 문해력을 습득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활자로만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다. 미디어를 규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 경험하는 미디어 콘텐츠 및 사회에 쏟아지는 이미지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할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이 이미지는 누구의 시선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인가, 사람을 물건이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은 없는가, 여성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기준과 잣대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양한 성별과 연령, 체형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는가. 획일적인 신체 규범에 의해 삭제당하거나 놀림거리로 전락하는 사람이 있는가.

여성을 대상이나 물건으로 바라보는 인식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토양이 된다. 여성을 향한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범죄자를 우리 사회의 맥락과 무관한 정신질환자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여성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여성에 대한 제한적이고 왜곡된 이미지가 범람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하나의 주체라는 인식은 단순히 양성평등을 선언적으로 주장한다고 절로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미디어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지하고 바로잡아가게 해줄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미디어 환경을 꾸준히 개선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압도하는 자본과 결탁한 채 비대해져버린 미디어 환경을 단박에 바로잡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절실한 것은 다름 아닌 페미니즘 교육을 통한 미디어 해독 능력이다. 학교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미뤄서도, 외면하고 없는 척해서도 안된다.

아이들의 삶의 현실을 어른으로서 책임감 있게 돌아보고, 페미니즘 교육이 할 수 있고 해내야 하는 역할을 더 이상 방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나에게 아무리 불편하고 거북스러운 단어라고 해도 말이다.



[최현희 교사의 학교에 페미니즘을]‘외모지상’ 갇힌 여아를 ‘외모허상’ 아는 여성으로 키우려면


필자 최현희

13년차 초등교사. 좋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던 중에 페미니즘을 만나버렸다.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에는 스스로 꽤 좋은 교사라고 믿었으나,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로 다시 바라본 교실과 학교는 좋은 교사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했다. 페미니즘으로 직업과 일상이 고단해졌지만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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