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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사현장 깐깐한 기준에 초보 현장 관리자인 나로선 진땀이…

2018.02.02 17:03 입력 2018.02.02 17:25 수정
필자 박철현

박철현의 일기일회(一期一會)

초보 공사현장 관리자로 보낸 90일간의 대장정이 끝났다. 돌이켜보면 말이 좋아 관리자지 이런저런 잡일만 도맡아서 다 한 것 같다. 건물 틀만 남겨두고 연면적 약 120평(30평이 4층)을 다 뜯어고치는 작업이라 처음에는 ‘이게 과연 말이 되나’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는데, 일은 손이 하는 법.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완성됐다. 그리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90일 동안 한국에서는 몇몇 사고가 터졌다. 대표적인 것이 포항 지진과 제천 화재다. 포항 지진 때 필로티 건축물이 피해가 컸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은 지 52년 된 우연찮게도 비슷한 공법으로 지어진 이번 도쿄 이리야 공사현장의 구형 필로티 건물을 소재로 이 ‘일기일회’에 글을 쓰기도 했다. 인명피해가 크게 난 제천 화재는 너무 큰 사고라 차마 언급하지 못했다. 비명에 가신 분들의 명복만 빌 뿐이다.

사실 한국공사현장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다. 대학시절에 다들 한번쯤은 해 본다는 새벽인력시장 아르바이트도 해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공사현장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유학생들은 고임금 때문에 한번씩 해본다고 하던데 이상하게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이번 현장이 내 생애 최초의 현장이다. 그런데 일본현장은 아니다. 도쿄 이리야에서 하는 공사인데 왜 일본현장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이유는 장소만 도쿄이지, 나머지는 전부 한국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대표가 한국인이고, 마지막에 합류한 네팔 친구 2명을 빼면 목수들도 죄다 한국인이다. 그래서 지리적으론 일본이긴 하지만, 일본인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일본공사현장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다. 일종의 퓨전현장인 셈이다. 또 실제 공사도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관청의 허가와 지적을 받으면 그걸 따르긴 하는데 융통성이 작동하는 ‘그레이존’이랄까. 일본어 표현으로는 미나시(見做し)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가령 일본공사현장은 2층 이상 외벽에 손이 갈 경우 보통 아시바(足場)라 불리는 발판을 설치한다. 그런데 발판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도로를 침범할 수밖에 없으므로 해당관청으로부터 도로사용점유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신청하는 사람이 현장감독, 즉 나였던 관계로 구청 도로교통과와 경찰서를 찾아갔는데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구청에서 신청서 두 종류를 받아 경찰서 가서 접수하고 경찰서에서 이런저런 걸 물어보며 주의사항을 적은 후 허가를 해준다. 그러면 다시 그걸 들고 구청에 가서 최종허가를 받아야 겨우 설치할 수 있다.

90일 만에 리모델링한 도쿄 시내 건물의 전(사진 왼쪽)과 후(사진 오른쪽). 7개의 원룸이 14개의 소형 원룸으로 재탄생했다. 박철현씨 제공

90일 만에 리모델링한 도쿄 시내 건물의 전(사진 왼쪽)과 후(사진 오른쪽). 7개의 원룸이 14개의 소형 원룸으로 재탄생했다. 박철현씨 제공

그런데 구청신청서를 찬찬히 훑어보니 건물이 서 있는 토지(사유지) 경계선으로부터 60㎝를 넘어 150㎝까지(건물과 접한 도로 및 인도 폭에 따라 다른데 우리 건물은 60~150㎝) 이용 가능하다고 하길래 담당구청 직원에게 “이거 60㎝ 안 넘으면 신청 안 해도 되는 건가요?”라고 겁없이 물었다. 그러자 구청 직원이 뭔 이딴 현장감독을 봤냐는 시선으로 “발판 설치하는데 어떻게 60이 안 넘어요?”라고 반문한다. 모를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면박을 주는지 참나.(실제로 찾아보니 가장 작은 사이즈가 폭 61㎝였다) 조용히 두말 않고 신청서 받아와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도로사용허가에만 3일이 걸리고 설치비용까지 하면 100만엔 정도가 들었다. 정석대로 하기엔 예상하지 못한 시간낭비에 예산초과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한국식 공법의 도입, 즉 메슈매트라 부르는 통풍 및 방음효과가 있는 길다란 천막을 도로 쪽으로 60㎝가 넘어가지 않게 바닥으로 늘어뜨려 그 안에서 안전장비를 완벽하게 구비한 베테랑 한국인 목수가 줄을 타고 내려와 페인트를 칠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일본에서는 드문 방식이라 오가던 일본인들이 얼마나 사진을 찍어댔는지 모른다. 또 그게 위험해 보였는지 경찰서에 신고한 사람도 있었다. 자전거를 탄 경찰이 와서 입을 쩍 벌리더니만 고개를 갸우뚱하고 도로로 삐져나온 메슈매트의 길이를 잰다. 당연히 60㎝를 안 넘었으니 뭐라 할 말이 없는지(사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매트가 휘날려 60㎝를 넘기도 하지만 아무튼) 안전에 주의하라는 말만 하고 갔다. 물론 시타야 경찰서 소속 그 경찰도 스마트폰으로 몇 장이나 사진을 찍어갔다. 아마 자기 소셜미디어에 오늘 신기한 구경했다고 자랑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유의 융통성은 사실 일본 사회에 넓고 깊게 퍼져 있다. 자전거 문화만 해도 그렇다. 두 명 이상이 하나의 자전거에 타는 건 엄격하게 따지면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그런데 예외규정을 두어 어른 하나에 아이 하나 혹은 둘이 탈 경우는 넘어간다. 사실 이 예외규정도 자전거의 규격에 따라 복잡한데 규격 가지고 시비 거는 경찰은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 이것 역시 미나시의 영역이라 하겠다. 또 자전거도 차로 분류되기 때문에(일본어로 자전차라 하며 법적으로는 ‘경차량’으로 분류되고 그래서 자전거를 살 경우 경시청에 등록된다) 도로교통법상의 법령을 따르는 각종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너무 심한 경우, 이를테면 만취운전이 아니면 웬만하면 봐준다. 법령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설정해 놓고 적용은 유연하게 하는 셈이다.

공사 중인 건물 내부. 박철현씨 제공

공사 중인 건물 내부. 박철현씨 제공

공사현장은 이러한 부분을 극도로 활용해야 한다. 비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 참, 안전은 당연히 지키는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발판 설치를 다른 일본현장처럼 할 경우 발판 설치 비용에만 100만엔이 들고 신청에만 3일이 걸린다. 발판 설치 시간도 하루는 잡아야 하니 도합 4일이 날아간다. 하지만 우리 식으로 하면 반나절에 설치 다하고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비용은 메슈매트와 각종 로프, 고정 쇠파이프 및 파이프 이음쇠, 그리고 인건비가 전부다. 실제로 계산해보니 이것에만 85만엔과 3일 반나절이 절약됐다.

수도 설비도 비슷하다. 일본업자한테 맡기면 500만엔은 가볍게 들 정도의 일을 여러 ‘적법한 편법’을 이용해 200만엔 정도로 해결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수도 설비를 일본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한국인이 했기 때문이다. 이분이 처음 와서 농담조로 웃으며 했던 말이 “이 정도 규모 일본현장은 아침에 가면 회의하는 데 몇 십분씩 걸리고, 끝나면 정리한다고 한 시간 잡아먹고 휴식도 충분히 주는데 여긴 뭐가 이리 빡세냐?”였을 정도로 일을 해나갔다. 그렇다고 부실공사를 한 건 물론 아니다. 지금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다들 일본이란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크지 않을까 싶다. 초보 현장감독이긴 하지만 나도 이미 여기서 17년째 살고 있고 나머지 한국인 목수들도 5년에서 20년씩 거주했다. 살다보니 눈에 보인다. 다들 자기가 사는 집과 비교한다. 방수에 대한 철저한 의식과 방음재 등 층간소음 대비는 확실히 해야 하고, 벽지는 당연히 불연(FR) 등급이 최고등급이어야 한다. 페인트, 본드, 합판, 마루 재료는 새집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없어야 함은 당연지사이고.

즉 여러 안전의식은 일본인 수준과 비슷한데 일 처리 및 진행속도는 빠르다. 그만큼 일당도 조금씩 높게 책정했다. 또 직접고용제이기 때문에 중간에 따로 새는 것 없이 고스란히 목수들 통장으로 입금했다. 고용안정도 실현했다. 일이 조금 늘어지는 기미가 보여 한번은 종례시간에 “자기 일 끝났다고 해서 그만두라고 하지 않겠고, 이 일 끝나면 우리가 직접 하는 다른 현장도 숱하게 있으니 일은 걱정하지 마시라. 앞으로 1년은 더 해야 한다”고 안심시켰다. 그러다 보니 목수들이 나보다 두세배씩 급료를 챙겨갔다. (이 현장이 다 끝난 지금 다들 다른 현장으로 나뉘어 계속 일을 하고 있으니 고용안정화 약속도 지키고 있다.)

물론 공사기간 중 자잘한 트러블은 있었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기일을 무사히 맞추었다. 가스, 수도, 전기도 새롭게 증설하거나 구비했고 각 원룸에 들어간 설비는 모두 신형으로 교체했다.

원래 7개(2층 3개, 3층 3개, 4층 1개)밖에 없던 방을 14개 소형 원룸으로 재탄생시켰으니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라 자평한다. 물론 갖가지 안전조치도 다 갖추었다. 아니다. 갖추었다기보다 갖추지 않으면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그렇게 해야만 한다.

중요한 건 이렇게 해서 공사비가 얼마나 절약되었냐는 건데 업자에게 발주를 맡겼을 때보다 40% 정도는 비용절감에 성공한 것 같다.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일련의 리모델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던 건 덤이고. 그리고 완공된 다음 날인 1월21일,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본어학교 원장이 각 원룸을 둘러보더니 1시간도 안되어서 “우리가 전부 빌리면 안됩니까?”라는 의사타진을 해 와 순조롭게 계약까지 진행됐다. 너무 순조롭게 진행돼 무서울 정도인데 대표가 “야. 뭐가 무섭냐? 다 네가 감독을 잘해서 그런 거지. 당연한 거야”라고 치켜세워준다. 순간 한 며칠 휴가 좀 주려나 김칫국 마시는데 “내일부턴 가마타, 야나기하라, 도리고에 세 군데로 나눠서 할 테니까 목수님들 잘 분배해 봐”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세 현장을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눈이 아니라 손이 일한다는 금언을 매분 매초 생각하면서 말이다.

필자 박철현
2001년 도일. 한국에선 영화 연출을 공부했지만 일본에선 오마이뉴스재팬, JP뉴스 등에서 기자로 10년간 일했다. 도쿄 우에노에서 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일본인 아내와의 러브스토리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고, <일본 제국은 왜 실패했는가>와 <인터넷 동반자살>을 번역했다. 1976년생.

필자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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