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베트남 공장 보고서, 진실공방 치닫나

2018.02.04 09:26 입력 2018.02.05 13:34 수정
이하늬 기자

베트남 시민단체 “삼성, 보고서 수정 요구하고 협박” VS 삼성 “만난 적 없다”

2016년 8월 31일 베트남 타이응웬에 있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조립공장. 오후 2시쯤이 되자 22세 여성노동자 탐(Tam)이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사측은 급히 탐을 인근 군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오후 5시30분에 탐은 사망했다. 사인은 심근염. 가족들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그의 오빠는 “아침에 통화할 때 며칠 뒤에 집에 오겠다고 했다”며 애통해 했다. 글로벌 기업 삼성에서 발생한 젊은 여성노동자의 사망 소식으로 한동안 베트남 사회는 시끄러웠다. 하지만 몇 주 뒤 그의 죽음은 잊혀져갔고, 그렇게 문제는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탐의 죽음을 눈여겨본 사람들이 있었다. 베트남의 시민단체인 ‘CGFED(개발과 젠더, 가족, 환경연구센터)’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같은 해 11월부터 삼성공장 내 여성근로자의 노동환경과 처우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6일. 국제환경보건단체인 ‘IPEN’(International Pops Elimination Network. 아이펜)’의 홈페이지에는 영문으로 된 한 건의 보고서가 올라왔다. 삼성공장 여성근로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베트남 전자산업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라는 제목이다.

보고서에는 여성노동자들이 △근로계약서 사본을 받지 못했고 △주 4일간의 주야 교대로 근무하고 있으며 △9~12시간 서서 일해야 하며 △근무 중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쓰러진 적이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전자산업 노동자들과 주변 환경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예방하는 정책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삼성전자 사옥 앞에 깃발이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전자 사옥 앞에 깃발이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 발표 전 “법적 대응” 표명

보고서를 받아본 삼성전자는 극구 사실을 부인했다. 삼성전자는 “보고서에 등장하는 인터뷰 대상 여성노동자가 삼성공장 근로자인지 불분명하고 각종 질병과 업무 간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데이터도 전혀 없다”며 “보고서가 주장하는 초과근로나 근로계약서 문제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삼성은 보고서가 홈페이지에 게재되기 이틀 전인 11월 4일 미리 보고서를 입수했다. 해외 언론사에서 보고서를 입수해 삼성으로 취재요청이 들어왔고, 사실 확인 과정에서 보고서를 미리 입수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해당 보고서가 발표되기 전부터 CGFED와 아이펜에 공문을 보내 “보고서에 정확한 내용이 다뤄지지 않았다”며 “보고서가 우리 명예를 훼손하고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2017년 12월 5일 국제 비정부기구인 ‘기업과 인권센터’를 통해서도 다뤄졌다. 기업과 인권센터는 전세계 6000개 기업의 노동·인권문제를 감시하는 단체다. 삼성전자는 이 단체 측에도 “해당 보고서는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우리는 지역에서의 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항변했다.

해당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자 삼성전자는 언론에도 똑같은 입장을 밝혔다. 한국 언론이 관심을 갖자 삼성전자는 11월 24일 “이들 시민단체 보고서는 현장조사와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모두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이라며 “최근 베트남 정부의 근로환경 점검 때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보고서가 날조라는 삼성의 주장은 사실일까. 베트남 정부의 조사 결과는 삼성전자 해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베트남 현지 언론인 ‘DTI 뉴스’ 등의 11월 27일 보도를 보면 한국의 노동부 격인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는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근로계약, 작업환경, 건강검진, 임금 등에서 기본적으로는 규제를 잘 지키고 있다”면서도 “두 개 공장 모두에서 ‘초과근로’ 문제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동보훈사회부가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노동자들은 주당 평균 70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베트남 노동법은 하루 8시간, 일주일 48시간 노동을 최대치로 규정하고 있고, 월 30시간·연간 200시간 이상의 초과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당시 노동보훈사회부 조사관은 삼성전자에 “노동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노동보훈사회부는 근로계약서 작성과정에서도 적법하지 않은 부분들을 발견했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처벌까지 내리지는 않았지만 삼성전자에 “60일 이내에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초과근로와 근로계약서 문제는 모두 여성노동자들의 증언을 통해 지적된 문제이기도 했다. 조세프 디간지 아이펜 과학기술고문은 “삼성전자는 보고서를 허위라고 했지만 베트남 정부의 조사 결과는 우리의 연구 결과가 사실임을 확인한 셈”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보고서 발표를 막으려 했나

CGFED 측은 삼성 측이 보고서를 발표하지 못하게 하려고 다각도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CGFED는 지난해 10월, 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면담에 참가했던 45명의 노동자들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대부분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나마 연락이 닿은 이들은 “회사에서 알면 큰일난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답했다.

한 노동자는 당시 CGFED 연구진에게 “전화를 받지 못해 미안하다. 그런데 다시는 내게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회사가 알게 되면 나는 해고될 것이고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이펜 관계자는 “삼성 측이 노동자들에게 외부와 인터뷰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 결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은 보고서 발간에 앞서 CGFED와 아이펜 측에 “만나서 보고서 문제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삼성은 11월 4일 이들 단체에 공문을 보내 “가급적 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함께 둘러본 뒤 이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한다”며 구체적으로 방문 가능한 날짜를 적어서 보냈다.

하지만 CGFED와 아이펜은 삼성전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11월 6일 보고서를 아이펜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조세프 디간지 고문은 “삼성전자가 노동자들을 협박하는(threatened) 상황에서 공장을 방문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공장을 방문한다고 해도 우리가 인터뷰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근거가 불분명한 보고서가 발간될 경우 회사의 이미지와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발간 전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라며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공장 노동자를 압박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삼성전자는 “회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실제 공장 근로자가 인터뷰를 했는지, 했다면 누가 인터뷰를 했는지 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며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인터뷰를 하지 말라고 압박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CGFED와 아이펜은 삼성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도 동원했다고 주장 중이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베트남 정부 공문을 보면 타이응웬 지역 해외기업 공단을 관리하는 공단관리위원회는 11월 9일 CGFED에 “SEV(삼성전자 베트남)에서 보고서 문제를 같이 논의하자고 제안해 왔다”며 “11월 15일에 함께 만나 회의를 하자”며 출석을 요구했다. 회의 참가자로는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와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삼성전자 등도 포함돼 있었다. CGFED와 아이펜은 베트남 정부의 제안이 삼성전자의 요구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에 실린 베트남 삼성공장 공장 보고서 관련 보도. / 더 네이션 홈페이지 화면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에 실린 베트남 삼성공장 공장 보고서 관련 보도. / 더 네이션 홈페이지 화면

삼성 해명에도 논란은 확산 중

삼성전자는 “보고서 내용을 보니 지역공단 문제이기도 해서 관리처인 위원회에 보고서를 보내고 상황을 전달했던 것”이라며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 것이지 회의를 주선해달라고 민원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정부에까지 상황을 알리게 된 주된 원인으로 CGFED와 아이펜 측의 ‘무반응’ 문제를 꼽았다. 삼성전자는 “보고서를 최초 입수했을 당시부터 보고서에 대해 묻고 싶어서 해당 단체들과 연락을 취하려 했지만 잘 안됐다”며 “이 때문에 두 차례나 이메일로 만나자고 요청했지만 보고서 발표 전이나 이후나 아무런 답변이나 반응도 듣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CGFED와 아이펜의 주장은 삼성전자와 완전히 배치된다. CGFED에 따르면 이 단체 활동가 두 명과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 인사팀 관계자 두 명이 11월 8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카페에서 1시간가량 만났다. 보고서가 홈페이지에 공개된 뒤 이틀 만이었다. CGFED 관계자는 “삼성전자에서 한국인 1명, 베트남인 1명씩 2명이 나왔고 명함도 받았다”며 “만난 장소와 시간도 똑똑하게 기억한다”고 밝혔다.

CGFED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자리에서 삼성전자 관계자들은 “홈페이지에 올라간 보고서 내용이 사실과 많이 다르니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CGFED 관계자들은 “45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증언한 내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나”라며 요구를 거부했고, 만남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CGFED와 아이펜은 삼성전자를 만난 직후 삼성전자에 공문도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공문에서 “보고서가 정확하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않다고 삼성이 주장했는데, 어떤 부분이 틀렸다는 것인지 말해달라”며 “의견을 주면 효과적인 연구 결과를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삼성 측이 아무런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고서 발간 전후 상황을 놓고 양측의 견해와 진술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문제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에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청원 전문사이트 ‘Change.org’에 “삼성전자는 베트남 보고서를 발표한 시민단체에 대한 법적 대응 협박을 중단하라”는 청원이 등록됐다. 2월 2일 기준 이 청원에는 9만4000여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해외 언론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진보적 성향 주간지 <더 네이션>은 1월 2일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과 관련한 기사를 다뤘다. <더 네이션>은 ‘당신의 스마트폰은 노동을 착취하는 공장에서 만들어졌나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보고서와 관련해 삼성이 노동자들과 시민단체들을 위협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태 초기 당시 공문을 보내는 과정에서 법적 조치를 언급한 부분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회사의 명예 실추 등을 방지하고자 했던 차원”이라며 “실제로 법적 대응을 한 적이 없고, 이후에 CGFED 등에도 법적 조치 의향이 없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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