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화가 너의 폭력이라면

2018.02.06 21:06 입력 2018.02.07 09:40 수정
이대근 논설주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지난 4일 스웨덴과의 연습경기 때 합심 협력해서 잘 싸웠다. 남북이 함께해야 할 이유도 증명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단일팀 구성을 두고 서로 다른 세계관과 정의관으로 무장한 세대들이 맞부딪치는 듯한 전례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문명의 충돌 같았다. 많은 성찰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토론하지 못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이대근 칼럼]나의 평화가 너의 폭력이라면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천신만고 끝에 평화올림픽을 개최하게 됐을 때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정의만 있다고 믿었다. 바로 남북이 하나 되어 경기를 치름으로써 화해하고 전쟁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앞에 던져진 질문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 국가의 단일팀 요구는 선수들이 오랜 시간 땀으로 일구어 낸 기회를 가로채는 부당한 권력 행사인가? 단일팀 구성이 무산되고, 이 냉기류가 평창 올림픽 북한 참여 열기를 식혀 평화회복에 난관을 조성한다고 해보자. 평창 이후 북·미가 군사적 대결을 할지 모른다. 공동체가 파괴되면 평창 올림픽이 다 무슨 소용인가?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서는 개인의 성취와 행복을 유보하는 게 타당한 것 같다.

그렇지만 가능성 낮아 보이는 전쟁이 설득과 동의 없는 단일팀을 강제할 정당한 근거가 되는가라는 질문에도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 평화도 정의지만,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의 출전도 정의다. 두 개의 정의 가운데 무엇이 우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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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지질학적 시간이 다른 단층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2030과 기성세대라는 두 지각이 단층면에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기성세대의 눈에 2030은 작은 일에만 분노할 뿐, 공동체의 운명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이기주의자로 비친다. 2030의 눈에 기성세대는 평화 위협, 통일 문제의 책임을 2030에게 전가하는 무능한 집단이자 절차적 정의의 섬세함을 모르는 무감각한 존재로 보인다. 정말 두 세대는 다른 세계관과 정의관을 갖고 있을까?

‘2017 남북 통합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를 분석한 통일연구원 박주화 박사는 2030이 기성세대에 비해 통일 필요성을 덜 느끼는 배경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통일을 무조건 긍정해야 하는 의무감을 학습한 기성세대와 달리 2030은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위해 희생할 의사가 있느냐는, 비교적 속마음을 드러내야 하는 질문에는 세대 차이가 없었다. 실현 불가능한 통일을 원하는 기성세대의 위선이 세대 차이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민족 동질성 인식에서도 세대 차이가 없었다. 2030이 단일팀에는 비판적이었지만 그걸 두고 2030만을 나무라는 것도 일방적인 측면이 있다.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10년간 남북 단절만 경험한 2030에게는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단일팀에 대한 긍정적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 연례 조사에서도 통일 필요성 의견이 지난 10년간 10% 줄었다. 특정 시기 세대별 비교를 하면 2030이 다른 세대에 비해 감소폭이 다소 크기는 하지만 연도별 비교를 하면 모든 세대에서 하락한다. 통일에 대해 ‘항상 적극적인 기성세대’와 ‘언제나 소극적인 2030’의 극적인 대립은 허구다. 기성세대는 평화의 대의를, 2030은 절차적 정의를 우선시하는 가치의 평행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와 공정성에 관한 다른 관점들은 세대별로 나뉘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가슴에 공존한다. 사람들은 평화 때문에 개인이 불이익을 당하는 걸 원하지도 않고, 개인의 이익 때문에 평화가 깨지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통일에 대한 열정과 냉정은 특정 세대의 고유한 정서가 아니다. 세대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밀고 당기는 자리 잡기 경쟁을 하며 공생하는 하나의 마음 상태, 우리 내면의 풍경이다.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의와 정의는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전체로 수렴되어야 한다. 평화와 나의 삶도 빈틈없이 연결되고 선순환해야 한다. 청년실업 문제를 안고 있는 2030이 단일팀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평화의 진전이 나의 삶을 개선시키는 정도와 발을 맞추지 못할 경우 2030이 하나의 사회 집단으로 결집해 세대 갈등, 나아가 계층 갈등까지 촉발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나라에는 평화가 찾아오는데 나에게는 평화가 오지 않는 지체 현상이 심화되면 나의 정의가 너의 불의가 되고, 나의 평화가 너의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때 우리 안의 잠재된 양면성은 사회 밖으로 집단 표출될 것이다. 이것이 단일팀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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