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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날 개밥 퍼주듯

2018.02.12 20:32 입력 2018.02.12 20:34 수정

오는 16일이 설날입니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섣달이고 달의 마지막 날이 그믐이니 15일은 섣달그믐입니다. 지금이야 양력으로 살아서 의미 없지만, 음력으로 살던 사람들은 섣달그믐밤이 되면 참 싱숭생숭했을 겁니다. 한 해가 또 가거든요.

만혼이 흔한 요즘에야 실감이 안 나겠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여자 나이 서른 되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고 20대 후반이면 몰아쳐 결혼하느라 그 나이 대끼리는 그 무렵 무척 분주했습니다.

더 옛날에도 그랬습니다. ‘혼기가 꽉 찼다’거나 ‘과년한…’이란 말들을 흔히 썼으니까요.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옛 여성의 혼인 적령기는 아마 스무 살 안팎이었을 겁니다. 혼기 지난 여성이 혼처가 나오지 않거나 집안이 혼사를 치를 여력이 없다면 애써 참아도 무진 애가 탔겠지요. 남들 다 할 때 하는 걸 못해서 어쩐지 뒤처지고 못난 것 같은 초조함과 자괴감으로 말입니다.

섣달그믐 저녁, 개밥 주러 나온 나이 찬 처녀는 개밥그릇에 잔반 퍼주며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나이나 먹는 심란함에 울컥하겠지요. “그래 나 한 살 더 먹는다. 너도 밥 처먹어라!” 이렇게 대충 마구 콱콱 퍼주던 모습에서 만들어진 속담이 ‘섣달그믐날 개밥 퍼주듯’입니다. 늘 그렇듯 격렬한 행동은 격심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아주 오래된 노래들이 있습니다.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히스테리가 이만저만~’ ‘개구리 노총각이 살았는데, 아하! 사십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 가~’ 요새 노총각, 노처녀라는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무례한 표현이기도 하고 예전 기준으로 치면 지금 미혼자들 상당수가 거기에 해당되니까요.

오랜만의 인사치레마냥 무심히 던지던 ‘왜’ ‘아직’이란 말. 이번 설, 아랫사람들이 정말 듣고 싶던 말은 시쳇말 같은 빈 관심이 아니라 어쩌면, 윗사람다운 말없이 든든한 나잇값, 그 모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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