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니면 될까

2018.02.19 20:44 입력 2018.02.19 20:45 수정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나만 아니면 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유행어다. 한 선배교사는 이 유행어를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에 쓰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 말에 ‘혼자 잘살면 된다’ ‘나만 피해보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학교의 안과 밖]나만 아니면 될까

최근 미투운동에 동참하는 글 중에 저명한 남성이 여성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시도하려 했으나 당시 동석한 사람 중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고, 나중에도 모르쇠했다는 사례가 있었다. 검찰, 문단, 극단, 기업 등 우리 사회 여러 조직에서 일어난 권력관계에 기반한 폭력과 집단의 대응에서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피해자는 철저히 혼자다. 주변 사람들은 방관자나 동조자가 된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될까.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선한 사람들이 침묵하는 방관자적 문화다.

현 사회의 모습은 학교의 다양한 학교폭력 고리와 유사하다. 공동체 형성의 가장 중요한 때인 새 학기를 앞두고 걱정과 설렘 속에 학교 안을 본다. 어떤 학급에서 학생 간 따돌림 같은 괴롭힘이 일어나거나 학생들이 혐오표현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면 학급 공동체가 깨져 있거나 학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영화 <우리들>에서처럼 학급에서 소위 잘나가는 학생이 여러 이유를 붙여서 상대적으로 약한 학생을 괴롭힐 때 다른 학생들의 반응이 어떠한가를 보면 괴롭힘의 고리가 보인다. 가해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피해자를 방어해주는가.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다음은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가 동조자나 방관자가 된다. 나만 아니면 되는 분위기로 흐른다. 피해자는 가해자만큼 동조자나 방관자 때문에 외롭고 힘들다.

학급 공동체가 서로를 존중하고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는 데 안전함을 느끼는 곳이라면 어떨까. 한 학생이 부당하게 다른 학생에게 상처를 주려 해도 다수가 그만하라고 한다면 괴롭힘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아니다. 피해자가 멈추라는 표현을 하고 다른 학생 한 명이 멈추라고 한다면 가해자는 움찔한다. 그리고 다른 한 명, 또 한 명이 나서면 힘을 발휘한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으면서 쉽다. 우리의 문제로 함께해야 하므로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 함께하기에 힘을 발휘한다.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3월부터 평화롭고 안전한 학급 공동체를 학생들과 만들어가야 한다. 강함과 약함의 관계권력이 학급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다름과 자신다움이 비난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믿고 말할 수 있도록. 뻔한 말이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말이 학급의 유행어가 된다면 가능하다. 가령, 우리 모두는 있는 그대로 존귀하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용기를 내자. 그 친구의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나만 아니면 되는 일은 세상에 없다. 학생들이 자꾸 말하게 하고 보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학급 공동체 생활규칙을 만들고 일관성 있게 지키는 경험을 모두 가져야 한다. 교사가 공동체 생활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을 존중하고 교육적 권위를 인정하는 학교문화와 학부모의 지지도 밑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악한 행동이 계속되는 데 필요한 것은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다. 내가 아니라서 침묵하면 앞으로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지 않는다. 다행히 학교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지만 학생들은 못된 어른들처럼 염치가 없지는 않기에.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