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지랄’

2018.02.19 20:45 입력 2018.02.19 20:46 수정
박민규 | 소설가

[박민규 칼럼]‘백년 동안의 지랄’

정확한 통계는 남아 있지 않지만 흥선대원군은 700여개의 서원을 철폐했다고 한다. 고종 2년인 1865년에 시작해 6년에 걸쳐 행해진 일이다. 하지만 향촌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서원 구실을 한 사우, 명당, 향현사, 생사당, 정사, 이사, 효사, 세덕사 등을 합치면 조선 후기 서원의 숫자가 무려 1700여개에 달했다는 주장도 있다. 뭐가 이리 복잡해! 생각도 들겠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해석은 간단하다. 그러니까 전국 곳곳에 저 정도의 사립대학이 있었던 나라가 조선이다, 이 얘기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우리 조상님들은 명실상부 ‘공부의 신’이셨다. 저런 나라가 망했다는 건 어쩌면 새빨간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이란 거 아시죠?

[박민규 칼럼]‘백년 동안의 지랄’

2016년 기준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학의 수는 모두 408개다. 한때 84%까지 치솟았던 대학진학률을 생각하면 모름지기 그 조상에 그 후손이란 생각이 절로 들기 마련이다. 25~34세 기준 인구당 대졸자 비율 역시 OECD 국가 중 단연 으뜸이 아닐 수 없다. 지구에서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며, 그러니까… 통계를 더 끌어다 붙이는 무의미한 과정은 생략하고 그냥 우리 민족은 ‘공부의 신’이다. 내가 볼 때 그렇다. 지구에 이런 나라가 없었고 세계사를 통틀어 이런 민족도 없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이런 우수한 국민에게 고용불안, 일자리 부족, 비정규직 문제, 취업대란 같은 위기가 닥쳤다는 것도 어쩌면 새빨간 거짓말일지 모르겠다. 여러분, 이것도 다 거짓말이면 좋겠죠?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성(姓)씨의 종류는 33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본관의 구분을 차치하고). 이 중 자타가 공인하는 상위 20대 양반 성씨가 전체 인구의 78.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중 김씨의 비율이 21.5%, 이씨와 박씨가 각각 14.7%, 8.4%로 뒤를 이었다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해보자. 미처 알려진 성은 아니지만(알고보면 우리 집안도 족보와 뼈대가 있다고 주장하는) 상위 100대 양반 성씨를 포함하면 전체 인구의 99.1%가 양반이라는, 다소 어색하면서도 놀라운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다. 그래서 이번 설에도 집집마다 모여 제사를 지낸 것이며 또 모여, 작년에 재수한다더니 이번에 어디 붙었냐? 혼기가 지났는데 너 그러다 시집 못 간다 온갖 오지랖에 며느리 하나 잘못 들여와 제사상이 시원찮아졌다 ‘행세’를 일삼는 사상적 토대가 구축된 것이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조선이란 나라를, 또 현재의 한국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아아, 코리아 판타지. 이 수치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8할이 귀족이고, 또 8할이 대학에 진학하는 세계의 유일무이한 민족이다.

과연 우수하면서도 왠지 등신 같아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근대를 스스로 마련하지 못한, 근대를 그냥 패스한 민족이 행해 온 ‘백년 동안의 지랄’이 아닐까 자꾸만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백년 전의 조상님들은 꿈꿨을 것이다. 양반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들의 후손도 꿈꿨을 것이다. 대졸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러나 우리가 실지로 행한 일은 모두가 양반이 되고 모두가 대졸자가 되는 길이었다. 정부의 보조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똑같은 성격의 일을 스스로, 백년 넘게 대를 이어, 자신의 피땀과 사비를 들여 이룩해 왔다는 사실이다. 정말 미안한 얘기긴 하지만, 나는 이것을 ‘지랄’이란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못 찾겠다. 그리고 두려운 것은 여기서 또 백년, 이 같은 노력을 이어갈 전망이란 사실이다.

최근 영화 <1987>을 관람하면서 나도 잠시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되었다. 스크럼을 짜고 거리로 나간 청년들에게 그들의 부모, 친·인척들이 가장 많이 퍼부은 말은 이것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 하라는 공부가 어떤 공부였는지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은 채 이제 우리가 그 말을 퍼붓는 부모가 되어버렸다. 어떤 의문도 없이 할아버지는 족보를 샀고, 시치미 뚝 떼고 할머니는 제사를 올렸다. 아직 족보를 못 구한 이들을 더 괄시하고 무시한 이가 바로 나의 조상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의문도 없이 대학을 나와, 미처 대학에 가지 못한 이들을 더 따돌리고 차별한 것이 나 자신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양반이고 대졸자인 우리가, 양반인 데다 대학을 나왔는데도 그 어떤 대접도 못 받는 후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모두가 양반이 되어 아무도 양반이 아닌 세상에서, 다 같이 대졸자가 되어 누구도 대졸자 대접을 못 받게 된 세상에서 말이다. 물론 양반이고 대학을 나왔으니 해줄 말이야 많겠지만 부디, 제발 부디 ‘노력’하라는 말만큼은 삼가도록 하자. 이는 우리의 후손에게 지난 백년의 지랄에 추가로 또, 새로운 지랄을 찾아서 하란 얘기에 다름 아니니.

지난 세월, 그런데 정말이지 우리가 한 공부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이 신분은 무엇이며 우리의 모교는 어떤 곳이었을까? 혹시나 나의 모교가 조선 후기에 난립했다는, 대원군이 철폐한 700여개의 서원과 같은 곳이었다면… 우리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런 나라가 망했다는 게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면, 정말 사실이라면…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이란 거 아시죠? 하며 ‘하라는 공부’에 여전히 전념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이지 묻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그래서 우리 스스로에게. ‘공부의 신’이셨던 조상님들이야 이제 달리 물어볼 방도도 없고 하니, 또 그래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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