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자격증보다 자격

2018.02.26 20:49 입력 2018.02.26 20:50 수정

한국교총은 이른바 보수성향 교원단체다. 그동안 전교조의 정치성, 과격함에 대해 순수하지 못하다며 비판해왔다. 그런 교총이 달라졌다. 그토록 미워하던 좌파단체처럼 돌변했다. 머리띠를 두르고 대규모 집회·시위까지 했다. 까딱하면 삭발과 단식도 하고, 나아가 해직불사 결사투쟁이라도 할 기세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공언한 내부형 공모교장 확대 정책 때문이다. 이는 승진점수 경쟁에 따라 주어지는 기존의 교장 자격증 소지 여부와 관계 없이 경력 15년 이상인 교사가 공모를 통해 교장으로 임용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씌운 ‘자율학교의 15% 이내에서 실시’라는 독소조항 탓에 사실상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그러니 이번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은 멀쩡한 법을 고쳐 내부형 공모교장제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꼼수를 제거하여 내부형 공모교장제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학교의 안과 밖]교장, 자격증보다 자격

물론 교장 자격증 하나 따자고 20년을 고생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니 속이 쓰라릴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내거는 ‘무자격 교장 철폐’라는 구호다. 누가 들으면 교육부가 턱없이 함량 미달인 사람을 학교에 끌어들이려는 줄 알겠다. 내부형 공모교장의 목표는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 중에서 충분히 교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임용하겠다는 것이지, ‘교장 자격’이 없는 사람을 임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교장 자격증’과 ‘교장 자격’은 다르다. ‘교장 자격증’은 소정의 절차와 정량지표를 충족시키면 발급되는 증서이고, ‘교장 자격’은 교육에 대한 비전이 있고, 교원들이 역량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할 리더십과 덕망이 있다는 뜻이다.

관건은 ‘교장 자격증’의 이런 저런 지표가 ‘교장 자격’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인지, 다만 경쟁과 줄세우기를 위해 만들어진 숫자에 불과한지다. 답은 뻔하다. ‘교장 자격증’의 지표와 ‘교장 자격’이 잘 맞아떨어졌다면 내부형 공모교장 같은 게 애초에 논의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 자격증과 ‘원장’ 자격증이 따로 없듯, ‘교사’ 자격증과 ‘교장’ 자격증이 따로 없는 게 맞다. 그런데 교총은 15년 이상 한눈팔지 않고 교육에만 매진해온 동료 교사들을 엉뚱하게 ‘교장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모욕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에게 되물어본다. ‘교장 자격증’ 소지를 근거로 ‘유자격 교장’을 자처하는 이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20년간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교육부나 교육청의 지시라면 심지어 ‘반교육적’ 행위라도 감수해야 함을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사들의 존경을 받는 교장이 드문 까닭이다.

사실 ‘자격증’ 하나 내걸고 자기들만이 교장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교총의 저 투쟁이야말로 알량한 자격증과 진짜 교장의 자격이 무관하고, ‘교장 자격증’ 외에 스스로 교장의 ‘자격’을 입증할 자신감 없음을 자백하는 행위다. 만약 ‘교장 자격증’이 ‘교장 자격’을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라면, 자격증 소지자는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 그리고 그들 주장대로 전교조 소속 교사를 공모과정에서 너끈히 물리치고 선발될 자신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교육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한 노력과 교사로서의 헌신 중 어느 것이 교장 자격에 더 마땅한 것인지에 입각하여 내부형 공모교장 시행령을 원안대로 속히 시행하기 바란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