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 실질적 성평등 추진체계부터 만들어야

2018.03.04 21:19 입력 2018.03.04 21:20 수정

진즉에 바꿨어야 했던 악폐가 악폐로조차 인식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여성들이 #MeToo를 통해 ‘변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개인의 피해를 말하는 방식이지만 여성들은 ‘몇몇 괴물이 아닌 구조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NGO 발언대]#MeToo, 실질적 성평등 추진체계부터 만들어야

지난 2월22일(현지시간), UN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8차 한국정부보고서 심의가 있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8개 부처(여성가족부, 법무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외교부, 보건복지부, 인사혁신처, 경찰청) 대표단이 참여했다. 나는 한국정부 심의 대응을 위해 꾸려진 NGO 참가단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다.

여러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많은 CEDAW 위원들이 한국의 여성인권 상황을 우려하며 한국정부의 해결 의지에 대해 질타했다. 현장에서 느낀 CEDAW 위원들의 분노 포인트는 한국정부의 태도였다. 8개 부처 대표단이라지만 여성가족부를 제외한 부처는 대체로 사무관급으로 구성되었다. 책임 있는 답변을 할 수 없었던 이들은 준비한 답변을 앵무새처럼 읽기만 했다.

한국의 강간 기준이 국제사회 기준인 ‘동의 부족’보다 엄격한 항거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을 요구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적절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에 법무부 하급 사무관이 무슨 답을 할 수 있는가?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는 무고나 명예훼손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한국정부가 무엇을 하겠다는 답을 이들이 감히 할 수 있는가? 나는 한국정부의 이런 모습이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자는 여성들의 외침에 대한 응답의 현실이라고 느껴져 실망스러웠다.

#MeToo는 제대로 된 처벌구조가 없고 성차별이 만연한 한국사회가 만든 현상이다. 여성들이 피해를 말했을 때 분명한 처벌이 약속된 사회라면, 여성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동료로서 존중받는 사회라면 #MeToo가 생겼을 리 없다. 법을 다루는 검사가 범죄인지 몰라서 공개된 장소에서 성추행을 했겠는가? 지켜본 검사들도 범죄인지 몰라서 현행범을 그대로 방치했겠는가?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게 하는 구조와 권력이 문제라는 여성들의 외침에 정부는 당장의 불 끄기에 여념이 없고 보수야당은 #MeToo를 불쏘시개 삼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음모론자들과 선정적 보도를 통해 #MeToo를 상품화하는 일부 언론들은 #MeToo의 의미를 왜곡·훼손하고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원천적으로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형법개정 권한을 가진 법무부나 국회가 역할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여가부의 피해자보호 대책은 사후약방문일 수밖에 없다. ‘괴물’이나 하급 직원, 여가부 등 작은 권력에 책임을 떠넘기거나 변죽만 울리는 방식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이제 청와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성차별적인 고용, 노동, 교육,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없이 구조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 악폐인 성차별적 구조를 바꾸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모든 부처의 역량을 총망라하는 추진체계를 짜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이미 알고 있고 약속한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마련하고 인적·물적 자원의 충분한 배치와 명확한 책임과 권한의 분배 등을 통해 확실하게 집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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