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배우자 돌보다 병 얻는 노인들…심각한 ‘노 - 노 케어’

2018.03.06 06:00 입력 2018.03.06 09:38 수정

긴급 상황 대처에 취약…‘질병 치료’ 요양병원과 ‘돌봄 위주’ 요양원, 제대로 분화 안된 것도 문제

78세 나지환씨(가명)는 2년 전 체중이 20㎏ 가까이 줄었다. 복부와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지며 건강 이상이 감지됐지만 치매인 아내를 간병하느라 병원에 가지 못했다. 결국 심한 변비와 복부 통증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그는 폐암 판정을 받았다. 2남1녀 자녀들은 연락이 끊겼고, 일흔이 넘은 나씨가 치매 아내를 홀로 돌보던 상황이었다. 나씨는 항암치료 중에는 아내를 보살필 사람이 없어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수입이 없어 자신의 치료비와 아내 간병비 마련을 위해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나씨를 담당한 분당서울대병원 유현정 간호사는 “노인이 배우자인 노인을 간병하는 경우 본인 몸에 이상이 생겨도 차일피일 검진을 미루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배우자가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치매노인일 경우 고령의 간병인 역시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쉽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65세 노인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후 17년 만이다. 이는 일본(24년), 미국(73년), 프랑스(115년)보다 빠른 속도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2058년에는 인구의 4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구성된 기형적 연령분포를 가진 나라가 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평균수명 자체가 길어지다 보니 배우자뿐만 아니라 노인을 돌보는 자녀와 며느리 모두 고령화되는 추세다. 여기에 핵가족화와 ‘부모 부양’이라는 전통적 개념이 희미해지며 노인 간병에서 노인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11년째 알츠하이머 치매환자인 남편을 돌보고 있는 남영순씨(84·가명)도 비슷한 경우다. 은퇴와 함께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꿈꾸던 부부의 노년은 남편이 치매 판정을 받으며 물거품이 됐다. 경제적 여유가 급격히 사라지고 남씨 역시 남편을 간병하다 얻은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남씨는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상도 나타나고 있다.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부딪힌 남씨는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노인이 서로를 돌보다 보니 의료적 상황 대처에 취약해질 뿐 아니라 질병 발생 시 제대로 된 치료와 회복이 어려워진다.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노인내과)는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노인들을 위해 의료 안전망과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에서 맡고 있는 ‘노-노 케어’를 지자체와 의료시설이 나누는 방향으로,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보다 전문화·세분화된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노인 질병 발생 시 치료·회복·재활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것들을 연결할 통합 시스템이 없다”며 “요양병원과 요양원 간 기능적 분화가 안되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요양병원은 말 그대로 질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곳이고, 요양원은 질병보다 돌봄이 문제인 환자들이 가는 곳인데, 두 기관 간 분화가 되지 않아 적절한 치료와 돌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인구 증가와 함께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늘어나며 노인들의 사회적 입원이 많아지고 있지만 환자 가운데 두 기관의 차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는 “치매환자 중 질병 치료가 필요함에도 장기요양보험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요양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요양원에서는 질병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상태가 악화돼 다시 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요양병원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 후 단기 회복, 재활, 치매환자 케어 등으로 세분화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다. 김 교수는 국립노인의료센터와 각 도의 중앙센터 관리하에 노인의료와 복지가 연계돼 있는 일본의 시스템을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했다. 김 교수는 “일본의 경우 노인환자의 질병 치료 후 회복을 위한 병원·재활·요양시설이 하나의 단지 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환자가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는 전문인력의 재가방문으로까지 이어진다”며 “노인환자를 위한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치료와 돌봄을 위해서는 의료기관과 복지, 지역사회의 관리 참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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