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언론이 필요한 이유

2018.03.11 20:55 입력 2018.03.11 20:57 수정

거짓이 참을 이긴다. 세계 최고의 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린 한 논문이 내린 결론이다. MIT 연구진에 따르면, 거짓 정보가 참된 정보보다 인터넷에서 더 빠르고, 깊고, 넓게 확산한단다. 글쎄, 누가 이걸 몰랐을까.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가 의심스럽다는 걸 누가 모르나. 최고의 과학논문은 결국 우리가 매일 네이버나 카카오톡에서 확인하는 허위 정보의 특성을 재확인해 준다.

[미디어 세상]진짜 언론이 필요한 이유

사이언스는 그러나 자명해 보이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사이언스 같은 호에는 ‘가짜뉴스의 과학’이란 글이 실려 있다. 무려 16명이나 되는 법학자, 언론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정치학자가 공동집필한 글이다. 이 글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인터넷 플랫폼에 대한 규제 방안을 폭넓게 검토한다. 그런데 저자가 많아서 그런지, 이 글은 혼란스럽다. 직접적인 내용규제나 플랫폼에 대한 법적인 개입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경고한다. 그러고는 21세기 정보환경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애매한 제언으로 마무리한다.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린 두 논문은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하나는 거짓 루머의 전파력을 검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짜뉴스 규제를 검토한 것이다. 전자는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지만, 후자는 문헌 검토를 통해 정책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전자는 허위 정보에 취약한 인간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지만, 후자는 모호한 미래를 겨냥한 다양한 제언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 뚜렷한 관련성은 없다.

일단 거짓 루머에 대한 논문은 아무리 봐도 가짜뉴스(fake news)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위 뉴스(false news)’란 용어를 사용한다. 논문 저자들은 뉴스란 개념을 확장해서 사용할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모든 정보를 뉴스라 할 때 혼란이 발생하지 않던가. 특히 트위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정보를 뉴스라 부르면 더욱 그렇다.

가짜뉴스란 ‘뉴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 뉴스로 제작한 것은 아닌 내용물’이다. 가짜뉴스가 위험한 이유는 형식에 있다는 것이다. 뉴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뉴스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뉴스로 받아들이는 데 위험성이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든 정보가 뉴스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인의 확인을 거쳐서 언론사에서 가공한 정보라야 뉴스가 된다. (모든 뉴스가 믿을 만하다거나 참이 아니라는 건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금 이게 요점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이번에 사이언스 논문에서 MIT 연구자들이 탐구한 대상은 트위터에 떠도는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되지 않은 루머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담고 있다. 거짓 루머는 참된 정보보다 더 빠르고, 깊고, 광범위하게 전파한다. 특히 정치 관련한 루머가 그렇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시기에 영어로 작성한 거짓 루머의 확산이 극에 달했다.

그렇다면 왜 거짓 루머가 인터넷에서 더 빨리 그리고 광범위하게 전파될까? 거짓 루머에 취약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많은 사람으로부터 허위 정보를 전달받고, 이를 다시 더 많은 사람에게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을 법하다. 하루 종일 인터넷에 접속해서 트위터건 어디에서건 간에 허위 정보를 퍼나르는 음험한 종류의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트위터에서 허위 정보를 유통하는 사람들은 팔로어하는 사람도 적고, 팔로어 받는 사람도 적고, 트위터 활동도 덜 활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위 정보에 취약한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허위 정보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이유는 내용적 특성 때문이었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많이 유포한 거짓 정보를 수집해서 그 내용적인 특성을 검토해 보았다. 주제가 다른 정보에 비해 특별할수록 트위터에서 확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허위 정보는 주제적으로 특이하기 때문에 더 빨리 그리고 더 넓게 전파된다는 것이다.

혹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로봇들이 거짓 루머를 퍼뜨리는 것은 아닐까? 이를 검토하기 위해 연구진은 로봇이 퍼뜨린 정보를 제거한 후 모든 분석을 다시 해봤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용자들끼리 전파한 내용만 보더라도 허위 정보가 참된 정보보다 더 빨리, 더 깊게, 더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로봇을 활용한 교활한 작전 세력 때문에 거짓 정보가 확산된다는 식의 가설을 주장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사이언스 논문이 뜻하는 바는 자명하다. 정책적인 함의를 찾아보더라도 그렇다. 로봇보다는 사람, 플랫폼보다는 내용 제공자, 그리고 사업자보다 이용자에게 집중해야 한다. 특히 시민들이 인터넷에서 특이하고 놀라운 정보를 접하면 그 내용이 허위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검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임무는 다름 아닌 사실 확인을 업으로 삼은 자, 즉 언론이 담당해야 한다. 거짓이 참을 이기는 시대에 가짜뉴스에 염려하기보다 진짜 언론을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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