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담아야 할 녹색가치

2018.03.11 20:55 입력 2018.03.11 20:58 수정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가 횡행한 시대를 겪었다. 인종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집단을 절멸시킨 역사가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시리아의 내전과 난민, 그리고 올해로 70년을 맞이하는 제주 4·3도 그랬다. 제노사이드는 범죄다. 그 시기, ‘보편적이고 궁극적 가치로서의 인간 존엄’을 지키는 일은 시대정신이었다. 제노사이드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인간에 의한 바이오사이드(biocide·생명학살)도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단 며칠을 위한 가리왕산 10만 그루 벌목, 생명의 이동을 막는 4대강 16개의 댐, 골프장과 리조트를 위해 파헤친 제주 곶자왈, 웅담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철창 안 반달가슴곰, 정상 정복의 욕망에 희생되는 국립공원 핵심지역의 경우가 그렇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은 바이오사이드를 거부하며 인권을 넘어 생명과의 공존을 요청한다.

[NGO 발언대]헌법에 담아야 할 녹색가치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헌법은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뜻을 오롯이 투영하지 못했다. 국민주권 실현을 위한 직접민주제 도입, 평등권 강화, 기본권 신설, 사회권 확대, 사법 절차적 권리 강화 등 주요 과제가 쌓였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녹색 개헌’이다. 자연의 권리, 환경과 생명존중의 가치를 국가의 최상위법이자 기본법의 질서로 명명하고, 지구 공존을 위한 녹색 사회를 세우는 일이다.

헌법 제35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는 인간중심적인 협소한 개념이다. 현행 환경권은 1980년 개헌에 언급된 이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보다 포괄적으로 시대정신에 부합하도록 환경권을 확장해야 한다. 헌법 전문에 국가의 이념과 지향으로서 ‘환경과 생명존중의 가치’를 선언하는 건 어떨까. 헌법의 원리로서 환경국가를, 그리고 국가 운영원리로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승인하자는 제안이다. 이를 실행할 국가기구로 기존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설치를 헌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

에콰도르 헌법, 멕시코시티 주 헌법은 ‘자연의 권리’를 담고 있다.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강의 지위를 인간의 위상과 동등하게 법률로 인정했다. 2009년 유엔총회는 4월22일을 ‘지구의날’로 선포하고 ‘지구의 권리에 관한 선언’을 촉구했다.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과 지속가능성도 국제사회가 지구 공존을 위해 약속한 일이다. 1987년 유엔이 발간한 ‘우리 공동의 미래’는 ‘지속가능발전’ 개념을 사회 발전의 원리로 제안한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는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협약 등을 채택하고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을 통해 지속가능발전과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명시했다. 2015년 유엔총회는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로 구성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발표했다.

내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개헌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자연의 권리,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지속가능성은 공존과 공생을 위한 시대적 요청이다. 개정 헌법은 녹색 가치를 반영한 ‘녹색 헌법’이어야 한다. 자연 생태계를 성장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자연자원 고갈을 멈추자. 생명을 위협하는 방사능과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인간과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자. 인간 존엄은 자연의 권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지켜지고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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