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질빵

2018.03.12 21:36 입력 2018.03.12 21:37 수정

[이굴기의 꽃산 꽃글]사위질빵

무릇 모든 문장에는 꼬리가 있다. 행간의 의미를 읽으라는 말은 마침표 너머에 똬리 틀고 있는 그 꼬리를 놓치지 말라는 뜻일 게다. 엊그제 경향신문 이범준 기자의 ‘삼성과 법관’이라는 칼럼을 읽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법리 따위는 애당초 글러먹은 법이라서 칼럼에 거론된 판결문의 원문을 구해서 읽어보아도 당최 무슨 뜻인지 끝까지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판결문에 동원된 문장의 꼬리들의 행방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법의 문외한이긴 해도 상식의 전문가들이 아닌가.

해남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 가는 길이다. 우리 국토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산이고 절이다. 둘레길을 천천히 걷는 동안 “판결문을 거듭해서 읽어보아도 어떤 법리를 말하는지 가늠이 안 된다”는 탄식으로 시작해서 “현실은 언제나 법리보다 치밀하고 또 가혹하다”는 날카로운 진단으로 마무리되는 그 칼럼이 계속 떠올랐다. 갑자기 멀리서 눈을 의심케 하는 눈 무더기가 나타났다. 봄빛이 완연하고 자세히 관찰하면 가지마다 파릇한 새순이 움터오는 이 달뜬 시기에 웬 설경인가. 더구나 이곳은 따뜻한 이 기운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는 땅끝 부근이 아닌가.

햇빛을 받아 눈송이처럼 찰랑거리는 건 눈이 아니라 사위질빵의 열매들이었다. 멀리 씨앗을 퍼뜨리려고 부풀거리는 솜털에 눈이 그만 깜빡 속은 것이다. 이 덩굴식물은 조금 고약한 습성이 있다. 지면을 기다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면 그냥 휘감아 오른다. 오르는 것도 그냥 줄기에 매달리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만만한 관목들의 꼭대기를 누르고 앉는다. 그리고 올라탄 높이가 저의 키인 양 허세를 작렬시킨다. 여름철 잎이 무성한 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낙엽이 지고 숲의 아랫도리가 드러나는 순간이면 사위질빵의 꼬리도 들통이 나고 만다.

글이 생각의 최소한이라면 법은 상식의 최소한일 것이다. 제 한몸 가누지 못하고 남의 등에 업혀 사는 사위질빵. 원줄기에 이만큼 떨어져서 가냘프게 꽂혀 있는 사위질빵의 꼬리를 힐끗 보고 암벽투성이의 달마산으로 헥헥거리며 올라갔다. 사위질빵,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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