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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EBS 연계’ 헌재 결정 유감

2018.03.12 21:41 입력 2018.03.12 21:43 수정

지난 2월22일 헌법재판소는 ‘수능시험의 EBS 교재 연계 출제에 관한 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각하를 선고했다. 문항 수의 70%를 EBS 교재 및 강의와 연계한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의 출제원칙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선고다.

[학교의 안과 밖]‘수능·EBS 연계’ 헌재 결정 유감

헌재의 기각 결정 자체는 얼마든지 존중할 수 있다. 타당한 결정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헌재의 선고문까지 존중하기는 어렵다. 헌재가 제시한 기각 결정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수능시험과 EBS 교재 연계가 ‘학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특히 학교교육을 정상화한다는 것은 완전한 거짓이다. 수능·EBS 연계는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정상화했다. 이전의 학교교육이 정상이라는 게 아니라 비정상이었던 것을 한층 더 비정상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사교육 경감 효과가 대단했다면 눈감아 줄 수도 있겠지만 수능·EBS 연계로 인한 사교육 감소 효과는 거의 없거나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헌재의 논거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했다.

헌재의 기각 결정에 EBS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헌재의 결정을 반기며 좋아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방송인으로서의 자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돈)의 측면에서 볼 때 EBS는 수능·EBS 연계의 가장 큰 수혜자다. 하지만 공영방송사로서의 자격이란 면에서 볼 때 EBS는 가장 큰 피해자다. 수능·EBS 연계로 인해 EBS방송사는 시청자의 신뢰를 적지 않게 잃게 됐다.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 EBS 다큐 <대학입시의 진실>에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을 생각해보자. 호응하는 반응이 더 컸지만 분노의 반응도 상당했다. 왜 분노했을까. 수능교재를 팔아 얻는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학생부종합전형을 악의적으로 비난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수능·EBS 연계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의심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수능시험을 출제하는 평가원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특히 수능 출제진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평가원이 출제하는 수능시험 문제는 오랫동안 EBS와 출판사들이 만드는 수많은 수능문제집들이 모방하고 추종하던 문제였다.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그러나 수능·EBS 연계 이후엔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 평가원의 출제진이 EBS 수능문제집을 모방하고 추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시중의 문제집 따위를 모방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의 영혼에 최고 수준의 문제를 출제하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수능·EBS 연계 이후 수능시험의 질이 떨어졌다고 느끼고 있다.

객관식 문제풀이 위주의 수능 공부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악으로 볼 건 아니다. 문제풀이 공부를 통해서도 학생들은 지식을 쌓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심지어는 창의력과 사고력을 발전시킬 수도 있다. 다만 그 정도가 우리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칠 뿐이다. 대학 학점에 비유해 말하자면 A나 B에는 못 미치지만 C는 될 수 있는 공부다. 그런데 수능·EBS 연계는 C는 될 수 있는 공부를 D에 불과한 공부로 전락시켰다. 수능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수능 전 과목에 절대평가를 도입하느냐 마느냐가 사회적 화두가 된 상황에서 수능·EBS 연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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