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

(4) ‘응급의료 자립’ 꿈꾸는 진천군 동주원마을

2018.03.16 06:26 입력 2018.03.16 08:24 수정

충북 진천군은 예로부터 ‘생거진천’(生居鎭川, 살아서는 진천이 최고라는 의미)의 고장으로 불려 왔다. 천재지변이 거의 없고 천혜의 자연환경과 비옥한 농토, 후덕한 인심에서 붙여진 것이다. 지난 2월 4일 입춘을 맞아 광혜원면 ‘동주원마을 경로당’ 취재(경향신문 2018년 3월 16일자 7면 참조)를 마치고 자동차로 인근의 외진 다른 마을들과 면 일대를 둘러보았다. 광혜원면은 최근 국가대표선수촌, 국가기상위성센터, 근로복지공단 연수원 등 국책기관이 들어섰다.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중앙입양원 홍석원 홍보팀장이 고향마을 길안내를 했다.

동주원마을처럼 4차선 도로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4~5㎞ 떨어진 면소재지에 위치한 진천소방서 광혜원119소방대(119안전센터)에서 악천후 등 특별한 일이 없다면 10분 내외에 119구급차가 도착할 수 있다. 광혜원 119안전센터는 연중 24시간 구급차 1대를 운영한다. 인근 음성군이나 다른 지역으로 나갈 때도 있다. 권역별, 지역별 응급의료시스템이 119센터에서 환자가 발생한 가장 가까운 곳의 구급차를 보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으로 나간 경우 다시 돌아와야 하므로 10분이 훌쩍 넘기도 한다. 게다가 작은실원리, 큰실원리, 실원리 인근의 무수마을(구암리) 등 외진 곳은 119안전센터에서 거리가 7~10㎞는 되고 자동차가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있다. 심뇌혈관 응급질환 대처가 어느 정도 가능한 진천읍내 큰 병원의 응급실까지는 20㎞정도, 더 큰 충북대병원이 있는 청주시까지는 60㎞ 이상 떨어져 있다.

지난 2월 4일 입춘을 맞아 동주원마을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박효순 기자

지난 2월 4일 입춘을 맞아 동주원마을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박효순 기자

마을 노인회 홍준기 회장(81)에 따르면, 경로당까지 올 수 있는 어르신들은 특별히 중한 병은 없다. 웬만한 일은 따로 사는 자식들에게 알리기 보다는 마을 이장이나 부녀회장, 혹은 이웃 사람과 의논해서 해결한다.

이곳 노인들의 건강비결 중 하나는 욕심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실제 홍 회장은 작은 복숭아 과수원을 경작하고 사슴 10여마리를 키우며, 간단하게 텃밭 농사를 짓는다. 시간이 날 때는 친구들과 게이트볼을 즐기며 평소 건강관리를 한다. 그의 아내인 유영재씨(78)는 마을 인근 농공단지에서 틈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 유씨는 “움직일 수 있는 한 계속 일을 하는 것이 건강에 최고”라며 “평소 마을 회관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혼자 사시거나 외진 곳에 거주하는 회원들이 큰 걱정입니다. 개량주택 구조가 외부와 폐쇄되어 있고, 집들이 많이 떨어져 있어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잘 모를 때가 많아요. 바쁜 철에 다들 일하러 갈 때면 가면 그나마 노인정에도 신경을 쓰기 힘들지요.”(홍준기 회장)

동주원마을의 전강우 이장(62)은 어문선 전 이장(61)에 이어 2017년부터 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인 어 이장과 전 이장은 서로 ‘간담상조’하며 7~8년 마을 일을 같이 의논해왔다. 동네 어르신들의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건강문제에 대한 대비책에 신경을 쓰고 있다. 마을에 응급연락망을 갖추는 한편으로 외진 곳에 홀러 거주하는 어르신을 위한 폐쇄회로(CCTV)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소를 키우면서 얻은 아이디어라고 한다. 외부에서 스마트폰으로 축사와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마을 응급의료 대비책에 적용하는 것이다. 가급적 사생활 침해가 안되게 신발장(신발 놓는 곳)이나 대문이나 현관 같은 곳만 비춰도 뜻하지 않은 사고 예방과 빠른 대처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이장은 장담했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 이미 설치된 장비로 CCTV화면을 확인해서 신발의 변화가 오랫동안 없거나 현관이나 대문이 항상 그대로 있으면 전화를 걸어보고, 전화를 안받으면 무슨 일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급히 방문해 볼 수 있겠지요. 우리 마을 청년들이나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들과 스마트폰으로 연결도 가능하고요. 집안에 급할 때 이웃과 연결하는 비상벨을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앞으로 이런 것들을 빨리 확충해야 할 거 같습니다.”(전강우 이장)

전강우 이장은 “마을 회관이나 경로당, 외진 마을에서 활용할 수 있게 심장자동충격기(AED)를 비치해도 심폐소생술이나 심장충격기 사용법 같은 것을 모르면 그게 무용지물이 될 것 아니냐”면서 “보건소나 군청에서 지금까지 여러가지로 지원을 해주셨듯이 교육을 더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천군의 심폐소생술 교육은 관내 기업체나 자동심장충격기가 비치된 곳의 관계자 등 특정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수준이다. 보통 4월에 예산이 나오면 계획을 짜서 연간 3~4회 5~6월부터 9~10월 사이에 실시한다고 군보건소 관계자는 밝혔다. 응급구조학과 교수 등 전문가를 초정해 한 번에 많아야 40~50명 내외, 1년에 140~150명 정도밖에는 교육을 더 시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일반 사무실이나 경로당, 가정 등 생활터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동심장충격기. 한국필립스 제공

일반 사무실이나 경로당, 가정 등 생활터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동심장충격기. 한국필립스 제공

대한부정맥학회 김영훈 회장(60·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은 “심장충격기 확대 설치와 작동여부 정기점검은 심장재난 사고를 막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중보건의 복무 시절 진천군 군립병원 초대병원장을 역임해 취약지 의료실태를 잘 아는 김 회장은 “50~60대 이후에 심전도 선별검사를 통해 부정맥을 조기 발견해 치료하고 관리하면 심장돌연사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다시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심재민 교수(순환기내과)는 “가까운 곳에 비치된 심장자동충격기(AED)가 있다면 즉시 사용하라”고 강조했다. 심장 회복뿐 아니라 음성으로 심장압박과 AED사용, 그리고 인공호흡까지 자동으로 안내해주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한국소비자원 최근 조사 내용을 보면, 성인 3명 중 2명이 거주지 주변 자동심장충격기 설치여부나 위치를 모른다. 설치 현황 파악은 물론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매년 2만명이 넘는 사람이 급성심근경색이나 중증부정맥 등으로 돌연사를 당하거나 치명적인 후유장애를 입는다. 대한응급의학회에 따르면, 현장에서 일반인 목격자에 의한 심폐소생술이 이뤄지는 경우는 10%를 넘지 못하고, 이런 탓에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4~5%에 불과하다. (경향신문 2018년 3월 16일자 1면, 6면 참조)

이번 취재 결과 전반적으로 강남구처럼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은 경로당이 AED가 설치된 지역 안에 있어 사정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시의 외곽지역이나 고지대, 농어촌, 산간 지역 등은 사정이 다르다. 진천군 실원리의 경우 7~8㎞떨어진 광혜원면 소재 보건지소에 단 1대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전국 경로당 여러 곳을 확인한 결과 간단하게 혈압과 맥박을 잴 수 있는 자동혈압기조차 없는 곳이 많았다.

서울 강북구의 한 경로당은 노인회장이 집에서 사용하는 자동혈압기를 가져다 놓았다. 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이와 비슷한 실정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섬이 가장 많아 ‘1004의 섬’이라 불리는 신안군(전남)의 경우 ‘군계일학’이다. 경로당 395곳 중 152곳에 AED가 설치되어 있다. 신안군 보건소 관계자는 “회원 50인 이상 경로당에 모두 AED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16년 13.5%에서 지난해 14.2%로 유엔(UN)이 정한 고령사회(14% 이상)에 진입했다. 오는 2026년이면 고령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화 사회가 될 전망이다. 노년기 발생 위험이 높은 심근경색·부정맥·뇌졸중 등은 돌연사의 주요 원인으로, 촌각을 다투는 응급질환이다. 정부가 현재 마련 중인 ‘응급의료 5개년 계획’(2018~2022)이 심·뇌혈관질환에 상당한 초점을 맞춘 이유이기도 하다.

■전국 시·도별 경로당 숫자(대한노인회 제공)

서울 3352, 부산 2250, 대구 1489, 인천 1458, 광주 1280, 대전 709, 울산 784, 세종 455, 경기 9434, 강원 3111, 충북 4100, 충남 5687, 전북 6525, 전남 8897, 경북 7883, 경남 7314, 제주 431. (*충북 진천군 경로당 현황=경로당 숫자 283곳, 회원수 1만1889명).

■경로당 AED 설치 현황(전국 시·군·구 10곳 표본조사)

충북 진천군 283곳 중 0곳, 경북 경주시 610곳 중 2곳, 서울 강남구 167곳 중 0곳, 강원 철원군 114곳 중 4곳, 경기 연천군 104곳 중 0곳, 경기 김포시 319곳 중 0곳, 경남 남해군 251곳 중 1곳, 전남 함평군 367곳 중 0곳, 전남 신안군 395곳 중 152곳, 전북 정읍시 693곳 중 4곳.

■국내 심정지 사고 장소(대한응급의학회 추정)

가정·경로당 등 비공공장소 65~70%, 역·학교·공항 등 공공장소 20~25%, 기타 장소미상 등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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