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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핀 작은 풀꽃조차 반짝이는 이곳에서 나는 왜 ‘3월의 햇볕’이 그리운 걸까

입력 : 2018.03.16 16:46:00 수정 : 2018.03.16 17:03:15

길에 핀 작은 풀꽃조차 반짝이는 이곳에서 나는 왜 ‘3월의 햇볕’이 그리운 걸까

선현경의 ‘잠시멈춤’

한적한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2년 남짓 생활하다 북적대는 관광지 하와이로 이사를 오니, 가장 다른 게 소음이다. 포틀랜드의 주말 아침 거리는 간밤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우리만 남고 모두 전멸한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조용했다. 사람도 차도 없는 그 넓은 거리에서 다가오는 트램 경적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디선가 좀비가 튀어나와도 아무런 충격 없이 도망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에 비하면 호놀룰루는 동네 근처에서 나만 모르는 축제가 열린 게 아닐까 궁금할 정도로 소란스럽다. 우리가 구한 아파트는 크고 작은 아파트와 저렴한 호텔들이 몰려있는 거주지역이다. 와이키키 시내에 있긴 하지만 번잡한 곳에서는 몇 블록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주거 생활을 하는 동네다. 하지만 소음 없이 지낸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하와이는 법으로 모든 119 출동이 불자동차와 함께하도록 되어있다. 그 때문에 불자동차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동시에 들려온다. 불이 나도 울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울리고, 사다리차가 필요해도 울린다. 매일매일 이 섬 어딘가에서 벌어졌을 사건·사고를 상상하며 듣는 그 사이렌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시끄러운데, 그것만이 아니다. 가까운 진주만 군부대의 전투용 헬리콥터 소리와 낡은 건물들의 보수공사 소음. 휴양지에서 기분이 ‘업’되어버린 관광객의 함성과 살짝 맛이 간 노숙인의 고함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날이면 조용히 도시락을 싼다. 다행히 여기는 바다든 공원이든 집을 나서기만 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풍광을 지닌 곳이다. ‘바다와 산과 공원.’ 이 좁은 아파트에서 그토록 시끄러운 소음을 견디며 지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식물과 동물들도 인상이 있는 걸까? 이곳의 자연들은 순한 하와이 사람들 같다. 야자수야 워낙 호리호리해 위협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무지 큰 나무들마저 거대 브로콜리나 거대 아스파라거스를 닮았다. 덩치만 클 뿐 툭 치면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순한 아기 인상을 가졌다. 새들도 여태 도시에서 봐왔던 것들과는 다르다. 곱게 자란 소녀처럼 선이 여리고 색이 선명하다. 그런 예쁜 새들과 순한 나무들 사이에 꼭 함께 껴서 분위기를 흐리는 애들이 있는데 바로 닭들이다. 도심공원 한복판을 뛰어다니는 닭들이라니. 포틀랜드처럼 호젓한 곳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처음 공원을 거니는 닭들을 봤을 땐 누군가 고기와 알을 얻기 위해 사육하는 가축이라 생각했다. 헐렁한 곳답게 자유롭게 키운다고 지레짐작했다. 닭들은 머리가 좋아서 자기들끼리 산책도 다니고 집도 찾아다니나 싶었다. 하지만 치킨 바비큐를 팔고 있는 푸드트럭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닭들은 식욕을 감퇴시켰다.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먹고 있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본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어쩔 수 없다며 웃는다. 먹이를 주는 것도, 함부로 잡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있는 야생 닭들이다. 황당해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이없게도 예뻐 보인다. 유난히 털색이 화려하고 깃털은 반짝반짝 윤이 흐른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모든 동식물들은 다 반짝인다. 길에 핀 작은 풀들도 반짝이는 초록 잎을 가졌고, 우리 집 베란다에 놀러오는 빨강머리 딱따구리도 반짝이더니, 야생 닭까지 반짝인다. 니들은 좋겠구나, 아름다워서.

공기 좋고 날씨 좋은 곳에서 겨울의 존재도 모르고 사는 생명체들. 얼마 전 서울에서 잠깐 놀러 온 친구가 와이키키 해변 관광객들 사이에 쓰러지듯 누워 낮잠을 자던 노숙인을 보며 내뱉은 말이 귓가에 맴돈다.

“언니, 여기 노숙인이 나보다 팔자가 좋아 보인다.”

그런 곳이다. 노숙인마저 그리 불쌍해 보이지 않는 곳.

축복받은 땅이다. 늘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나는, 삼월이 오니 이 섬의 온화한 기후가 낯설어졌다. 낯설고 서먹서먹한 삼월이다.

혹독한 추위를 보내고 난 뒤에 느껴지는 찬란한 삼월의 햇볕이 그립다. 앙상한 가지에서 돋아나는 연두색의 파릇파릇한 새잎이 보고 싶다. 계절의 변화가 확실하다는 건 참 드라마틱한 일이다. 오랜 시간 봄을 앓고 지낸 몸이라 그런 걸까? 삼월이 되니 그 햇볕 때문에 흔들렸던 마음과 그 새싹으로 설렜던 감각이 기어 나온다.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해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무료로 아무렇지도 않게 국제전화를 할 수 있다니 달라진 세상에 새삼 고맙다. 예전엔 국제전화를 하려면 그날 저녁메뉴가 바뀌어야 할 정도로 가격이 비쌌다. 만나 한 턱 크게 쏘는 마음으로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곤 했었다. 내가 걸었으니 술은 내가 산 거라고 생색을 내며 통화를 했다. 30분쯤 통화를 하고 있으면 그달 청구될 전화요금 고지서가 걱정됐다. 목소리의 생기가 구멍 난 튜브에서 바람 빠지듯 살살 새어나갔다.

이제는 와이키키 해변의 모래사장에 누워있다가도 서울에 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멸치국수 다대기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야자수 잎을 세며 멍하니 듣기도 한다. 엄마가 쉽고 맛있다며 말해주는 비법은 도무지 간단한 게 없다. 재료는 서너 가지가 기본이고 잘게 다지고 바글바글 끓여야만 한다. 그냥 엄마 집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이미 조리된 다대기를 들고 오고 싶은데, 거리가 멀다.

얼마 전 딸과 화상통화를 하다 문득,

“아… 만지고 싶어”란 말이 튀어나왔다.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었다.

보고 있으니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없어 그저 튀어나온 문장이었다. 손을 잡고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청소년 연애소설에나 나올법한 문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무리 자주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화상통화로 얼굴을 봐도, 대화하는 그 순간 같은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은 사람마음을 참 헛헛하게 만든다.

같은 곳에 산다고 통화를 하다 당장 만나러 달려갈 것도 아니면서. 통화를 하다 문득문득 닿을 수 없는 멀고 먼 그 물리적인 거리가 느껴진다.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와 대화하는 기분이다. 저 너머 어딘가에서 대답이 들리는데 혹시 메아리는 아닌지 문득 헷갈리기도 하는 그런 통화를 한다.

보고 싶기는 하지만 통화보다는 글이 더 편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메시지를 하거나 SNS를 훑어본다. 그들이 게시한 사진을 보고 생각을 읽고 나면 그들을 잠깐 만나고 온 기분이다. 한참이나 떨어져 사는 이곳 하와이에서도 친지의 근황을 알고 고민을 함께할 수 있다니 역시나 고마운 세상이다.

거리를 두고 그들과 문자 연락만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동안 달라진 친구들의 관계가 보이기도 한다. 모두 같이 친했던 사이지만 틀어져서 소원해지거나 아예 끊어진 관계도 있다. 늘 있어왔던 일이다. 함께 부딪치며 지내다보면 서로 싸우기도 섭섭해지기도 괘씸해하기도 하며, 틀어지는 관계가 생겼다. 언제나 그렇듯이 각각의 사연이 있고 꼭 그래야만 할 정당하고 합당한 이유도 있다.

그때마다 난처했다. 난 항상 이도저도 아니었다.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에 수긍하다가도, 저 말을 들으면 저 말도 납득이 되었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기에 양쪽 다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아무런 입장이 없는 나는 괜찮은 걸까?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나의 애매모호함이 아무 색깔도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두려웠다. 어느 누구도 내 입장을 따지고 묻지 않는데 사십년을 넘게 기억해왔던 봄기운이 자꾸 내게 질문을 했다.

혼자 고민에 빠졌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려고 ‘노자’를 찾다가 최진석의 인문학 강의를 듣게 되었다. 듣다 보니 내 고민을 알고 조언해 주는 듯한 그 강의에 놀라 받아 적었다.

“경계에 있을 때는 두렵다. 모호하고 불안하다. 이 불안과 모호함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받아들여라. 너를 가두고 있는 ‘우리’에서 탈출해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 우리는 널 가두는 우리다.”

새벽 두시가 넘었는데도 불자동차 사이렌이 울리는 시끄러운 호놀룰루의 밤이다. 우리에서 떨어져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여기까지 왔다. 그럼 이제는 경계의 불안함을 받아들이는 일이 남았다. 그 애매함을 견디는 일이 내 몫이다. 인생은 늘 선택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견디라’니 처음 들어보는 지침이다. 그럼, 한번 인문학적 사유를 하며 견뎌보아야겠다.

섬 생활 때문인지, 봄기운 때문인지 정현종의 ‘섬’이란 시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우일·선현경 부부는

길에 핀 작은 풀꽃조차 반짝이는 이곳에서 나는 왜 ‘3월의 햇볕’이 그리운 걸까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다. 이우일은 <콜렉터> <좋은 여행> <굿바이 알라딘> 등을 쓰고 그렸으며 <노빈손 시리즈>와 <용선생 한국사>의 그림 작가다. 선현경은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가족 관찰기>를 쓰고 그렸으며 <이모의 결혼식> <엄마의 여행가방> 등 동화를 냈다. 지난 2년 동안 미국 포틀랜드에서 딸, 고양이와 함께 쓰고 그리며 살다가 최근 하와이 오아후섬으로 터전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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