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굴기의 꽃산 꽃글]말오줌때

소설가 박태순 선생이 이끄는 ‘국토학교’에 참가한 적이 있다. 때에 맞게 제철 음식을 몸으로 들이듯 계절에 따른 우리 산하의 제철 풍경을 맞이하는 현장수업이었다. 그때의 주제는 ‘해남반도와 보길도의 별천지 꽃길, 하염없는 동백나무 숲속의 산책’. 새벽에 출발하여 자욱한 안개 속을 달리다가 해남으로 접어들자 박 교장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북에서 남으로 내리닫는 산들을 보면 소위 우리들의 인생 같아요. 설악산이 사춘기의 아이라면 지리산은 중년의 신사이고 이곳 땅끝에서는 잘 익은 영감탱이 같지 않나요?” 선생님의 문자향, 보길도의 동백향에 흠뻑 취하고 귀경하는 길에 미황사에 잠깐 들렀다. 병풍 같은 달마산을 우러러보면서 언젠가 저 산꼭대기에 꼭 오르겠다는 소망을 품었더랬다.

무술년의 봄꽃을 찾아 전라도 남녘으로 달려갔다. 개화를 기대했건만 아직도 겨울의 발톱이 날카로웠다. 몇 해 전의 그 소망을 실현했다는 후끈한 마음으로 달마산의 정상에 올랐다. 멀리 바다가 막아서는 해안선이 가물가물하더니 뒤로 돌아서면 미황사 마당을 서성거리는 사람들. 하늘과 잇닿은 날렵한 공간일 줄 알았는데 조릿대와 사스레피나무가 무성한 작은 평전이 있어 넉넉한 산이었다. 과연!

미황사로 하산하는 벼랑길이다. 이렇다 할 꽃이 없는 적막 속에서 꽃 대신 소위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박 교장님의 말씀마따나 사춘기 아이에서 중년의 신사 그리고 어느덧 영감으로 근접하는 게 보통의 차곡차곡 인생이다. 조릿대, 사스레피나무만으로는 허전했던 참인데 꽃동무가 앙상한 줄기를 가리켰다. 여기 말오줌때가 많군요. 시쳇말로 이름이 좀 거시기하고 가지를 꺾으면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나무이다. 봄의 잎, 여름의 꽃보다는 가을의 열매가 무척 인상적인 나무. 까만 씨앗을 톡톡 내뱉는 열매의 껍질이 꼭 어릴 적 축구공으로 가지고 놀았던 돼지오줌보를 연상케 하는 말오줌때. 올해의 잎, 꽃, 열매를 착착 준비하는 말오줌때 곁을 지날 때 아이, 중년, 영감으로 이어지는 누군가의 일생도 휙,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말오줌때, 고추나무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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