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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

2018.03.19 21:19 입력 2018.03.21 13:54 수정

뒤늦게 시작한 사람이나 아랫사람이 일취월장하여 앞서 시작한 사람이나 윗사람보다 잘하게 되었을 때 흔히 쓰는 말이 청출어람입니다. 이 말은 <순자> ‘권학편’에 나오는 ‘學不可以已 靑出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배움에 이만하면 됐다란 없다. 청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로 이루어졌지만 물보다 차갑다)’에서 유래합니다. 연두색 쪽 풀을 조개껍질 가루 등 생석회 섞인 물에 담가두면 풀색이 아닌 청바지 같은 청색이 나옵니다. 거듭 물들일수록 학문도 쪽물처럼 점점 깊고 짙어진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후생가외라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말합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뒤따라올 이를 두려워할 만하다). 나중에 오는 이가 지금 사람만 못하리란 법 있겠는가.” 언제고 후배가 선배를 넘어설 수 있으니 마땅히 이를 두려워하며 힘써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청출어람은 스승이 제자를 바라보는 흐뭇함이고, 후생가외는 후배에게 따라잡힐지 모른다는 선배 자신의 채찍질입니다.

우리 속담에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 ‘먼저 난 머리보다 나중 난 뿔이 무섭다’가 있습니다. 머리뼈가 거의 다 여문 후에야 겨우 뿔이 납니다. 하지만 나중 난 이 뿔이 먼저 난 머리뼈보다 훨씬 단단하게 돋습니다. 학계, 직장 등 사회 모두에서 많은 이들이 추격해오는 후배들을 두려워합니다. 늙고 굳었다고 어느샌가 그쯤에서 그만두었기에 더욱 불안합니다. 이 자리를 넘볼까 밀려나지 않을까, 그래서 아랫사람을 시기하고 억누르며 뿔만 내는 졸렬한 윗사람까지 생깁니다. 마라톤에서 현재 그룹의 선두로 만족하면 그의 발은 더 이상 진일보 못합니다. 따라잡는 이가 있어야 선두(先頭) 그룹으로 뛰어갈 수 있습니다. 후생가외는 불안이 아니라 분발입니다. 참답게 노력하여 나중 난 자기 두각(頭角)을 나타내지 못하면 진정 뒤쫓고픈 인생 선배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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