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이 끝이 아니다

2018.03.19 21:20 입력 2018.03.19 21:21 수정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패럴림픽이 끝이 아니다

성화가 꺼지고, 열창의 공연이 평창의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가 싶더니 이윽고 축포가 터지면서 패럴림픽이 끝났다. 관객들은, 그러나 간결하게 편곡된 ‘아리랑’을 들으면서 사진을 찍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좀 더 머물렀다.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방한 6종 세트’는 봄비 탓에 쌀쌀해진 평창의 밤을 충분히 견딜 수 있게 해줬다. 지난 2월9일 개막한 동계올림픽까지 다 합하여 한 달 넘게 진행된 평창의 겨울 동화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패럴림픽이 끝이 아니다

동계올림픽 때도 그랬지만 이번의 패럴림픽! 와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아이스하키 동메달 결정의 순간, 텔레비전 중계로 보면서 나는 감격적인, 아니 가슴이 미어질 듯한 ‘애국가’를 모처럼 격정적으로 들었다. 감독과 선수들과 관중들의 ‘애국가’는 화면 밖으로 넘쳐흘렀다.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인 일로 인하여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때로는 불편하기까지 한 근래의 상황을 일거에 씻어버리는 장면이었다. 그야말로 목 놓아 부르는 ‘애국가’였으므로 내 마음은 금세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뒤흔들렸다. 그래서 폐막식을 보러 갔고, 와서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신의현 선수가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 금메달(7.5㎞ 좌식)과 동메달(15㎞ 좌식)을 땄고 남자 아이스하키팀은 동메달을 땄다. 순위를 정하고 메달을 수여하는 경기대회이니만큼 이렇게 명백한 기준으로 뚜렷한 성취를 남긴 사람들은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패럴림픽의 취지는 물론이고, 스포츠에 내재된 일반적 의미에서 볼 때, 메달과 상관없이 이번 대회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삶의 메달리스트들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힘겨운 삶의 조건에서 벗어나 평창으로, 강릉으로, 정선으로 위엄 있게 이동하여 각자의 경기장에 들어섰다.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00년 8월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룩한 최고의 업적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8년을 더 살았다. 그것만으로도 호킹 박사는 뜨거운 메시지를 전한 셈이니, 겨울과 봄 사이, 찬바람도 불고 간간이 비도 내리는 패럴림픽의 현장으로 들어선 모든 선수들은 그 자체로 이미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잔치는, 그러나 숙제도 남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자료는 패럴림픽이 일시적인 축제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문체부와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전국의 등록 재가 장애인 5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이 20.1%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에 이 조사를 처음 실시했는데 그때 조사에서는, 1주일에 2~3회 이상, 1회 30분 이상 꾸준히 운동하는 장애인 생활체육 인구는 4.4%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2년 만에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히 ‘건강증진 및 관리’를 위한 체육 활동이 ‘재활 운동’을 상회하는 등의 생활 저변화가 이뤄진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향상되었지만, 압축하여 말하건대 여전히 5명 중 4명은 생활 체육 자체를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다. 체육시설과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그마저도 대도시에 몰려 있다. 장애인의 신체와 생활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생활체육 지도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문체부에 따르면 현재 장애인 생활 체육인이 30만명 정도인데 이들과 함께할 지도자는 최대한으로 잡아도 1000명 정도다. 문체부는 일단 현재 450명 정도에서 올해 안에 577명 선으로 확대 배치할 계획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생활 체육 이전의 상태, 즉 최소한의 이동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2001년 1월, 오이도역 수직형 리프트 추락 사고를 계기로 장애인의 이동권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이 사건 이후 지하철 선로를 가로막거나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버스를 점거하는 등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 2003년, 국립국어원은 ‘이동권’이라는 이 절박한 용어를 하나의 의미 있는 사회적 신어로 수록하였고 2005년에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보행환경 개선 등이 일정하게 마련되었으나 이 법의 3조가 규정한 대로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지난 3월14일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휠체어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고속·시외버스 승강설비 설치 등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한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과도한 비용이 소요된다”며 ‘불수용’ 입장을 밝힌 상태다.

영국에서는 22석 이상의 대중교통 수단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로 운행해야 하며 미국은 장애를 가진 승객에 대한 수송을 거절하거나 이행하지 못할 경우 차별로 간주하여 처벌한다. 독일은 장애인의 보행과 교통수단 이용을 위한 편의시설 확보 등을 사법적으로 지원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다.

당장 이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교통업계의 사정이 다르고 재정 형편이 다르다. 그러나 마음마저 달라서는 안 될 일이다. 오이도역 사고 이후 무려 17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제 몸을 쇠사슬로 묶고 눈물의 저항을 해야 한다면, 그것도 명절에 귀성 버스 타겠다고 울부짖는 상황이라면 이젠 달라져야 할 때가 아닌가.

패럴림픽 선수들을 위해 보낸 감격의 환호와 박수를 이제는 사회 전반의 상황으로 돌려야 한다. 방금 꺼진 성화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보편적 이동권과 보다 많은 생활 체육 활동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그것을 갈망하며 신의현 선수는 이를 악물고 설원을 달렸고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울부짖듯이 ‘애국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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