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80주년, 기로에 선 삼성

2018.03.21 21:03 입력 2018.03.21 21:11 수정

[기자칼럼]창립 80주년, 기로에 선 삼성

4년 전 가을, 단풍이 서울 장충동 남산 기슭까지 타고 넘던 시절. 약 1시간을 기다린 끝에 이윽고 신라호텔 현관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 노신사가 힘겹게 걸음걸이를 뗀다. 부축을 받을 만큼 건강은 좋지 않지만 표정엔 성취감에서 피어나온 미소로 가득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만찬자리에 참석하고자 힘겨운 발걸음을 한 땀 한 땀 떼고 있었다. 그의 건강 외 거칠 게 없어 보이던 삼성이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

조금만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던진 그의 ‘신경영 선언’이다. 적어도 삼성인에겐 금(金)과 옥(玉)에 새겨 변치 말아야 할 신조였다. 1995년 3월 삼성 애니콜 휴대폰 화형식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기자가 삼성을 처음 담당할 때다. 당시 다른 업계로 옮긴 삼성 출신 한 여성의 말은 아직도 충격으로 뇌리에 새겨져 있다. 앞서 삼성이 정치권과 검찰에 떡값 명목으로 금품을 줬다는 의혹의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이 회장이 2008년 4월 퇴진한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읽는 때였다. 그는 “나도 모르게 순간 눈물이 흘러 스스로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더구나 삼성에서 떠나온 지도 수년이나 지난 때다. 이후 삼성그룹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중 카드섹션 같은 매스게임 동영상이 떠돌아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 전직 여직원의 눈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22일은 삼성 창립 80주년이다. 삼성 직원들은 주말도 없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달려왔다고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삼성 직원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기적을 일궈냈다. 삼성전자만 지난해 영업이익 53조6500억원을 이뤄냈다. 그러나 삼성은 창립기념 행사를 열지 않는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에 마침표를 찍기도 전 ‘다스 지원’ 의혹까지 덧났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제품에 혁신은 추구했다지만 정작 바뀌지 않은 곳이 삼성 조직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최순실씨가 권력의 심장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은 건 역시 삼성뿐이었다”며 정보력에 혀를 내두른 다른 그룹의 홍보임원 말엔 뼈가 있다.

2013년 신경영 20주년 기념으로 이 회장이 내놓은 새 메시지엔 울림이 있었다. 이 회장은 “이제부터는 질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 사업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이라고 불렀다.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고도 했다. 삼성은 스스로 몇 점을 매길까. 사회적 책임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자율’ 또한 특히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출퇴근 시간이나 복장 자율화는 그저 단편일 뿐이다. 젊은 직원들이 상명하복이 아닌 식으로 움직일 때 부당한 지시를 넘어설 토대가 생긴다. 혁신과 창의도 꿈틀대며 낭중지추처럼 튀어나올 것이다. 삼성 같은 조직이야말로 직책을 빼고 ‘이재용님’처럼 호칭부터 수평화해보는 건 어떨까.

문제는 경영능력과 도덕성이지, 카리스마가 아니다. 알아서 눈물이 주르르 흐를 만큼 종교적 아우라를 가진 총수는 더 이상 21세기 한국 경제엔 필요 없다. 오히려 그런 모습은 짐이 되거나, 자칫 ‘키치’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총수 일가는 경영이나 소유에 더 확고한 책임을 지길 요구하는 게 시대정신이다. 한때 초야에서 칼을 갈던 당시 김상조 한신대 교수(현 공정거래위원장)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재용이 승계하는 건 이제 현실적으로 돌리기 힘든 거 아닙니까. 그럼 제대로 경영하는지 견제하는 게 중요해요.”

훗날 역사는 어떻게 삼성을 기록할까. 자랑스러운 대표 기업으로 남을지, ‘정경유착의 상징’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릴지 80주년에 삼성이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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