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주인은 ‘열심히 일한 죄’로 고발돼, 3000유로의 벌금을 냈다

2018.03.23 17:17 입력 2018.03.26 09:58 수정
곽원철

프랑스의 자영업자들

한국에 살고 있는 고교 동창이 집 근처 통닭집이 폐업한 것을 보고 안타까웠던 마음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하는 것을 보았다. 부부가 교대로 아침부터 밤까지 일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한 모양이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더라는 것. 나로서야 자세한 사정은 알 길이 없으나, 과연 그들은 친구의 생각대로 쉬지 않고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었던 것일까. 오히려 그들은 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포기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는지? 사람이 기계가 아닌 다음에야 쉬지 않고 일하다 보면 곧 지치게 마련이고, 지쳐 있다 보면 현재 하고 있는 방식을 답습하는 것 외에는 새로운 시도를 할 염두가 안 난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어지간한 의지가 있지 않고서는 포기하고 싶어진다. 이따금씩 들려 오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횡포 등을 비롯해 우리나라 자영업의 열악한 사정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나, 딱히 이렇다 할 경쟁력이나 차별점 없이 그저 무턱대고 부지런히 일하고 항시 가게 문을 여는 것만으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게 지속가능한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200㎞가량 떨어진 한적한 시골마을 뤼지니-쉬르-바스 전경. 이곳의 한 빵집 주인은 주 7일 일한 ‘죄’를 지었다.  |뤼지니-쉬르-바스 시청 홈페이지

프랑스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200㎞가량 떨어진 한적한 시골마을 뤼지니-쉬르-바스 전경. 이곳의 한 빵집 주인은 주 7일 일한 ‘죄’를 지었다. |뤼지니-쉬르-바스 시청 홈페이지

자영업의 영업시간 및 강도와 관련해 프랑스에서는 최근 의미 있는 사건(?)이 있었다.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200㎞가량 떨어진, 호숫가 근처의 작은 마을인 뤼지니-쉬르-바스(Lusigny-sur-Barse)의 빵집 주인이 여름 내내 쉬지 않고 일했다는 이유로 당국에 고발되어 3000유로(약 400만원)의 벌금을 내게 되었다는 것. 지역에 따라 세부 시행령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프랑스 대부분의 지역에서, 특히 빵집이나 식당을 비롯해 식음료와 관련된 자영업자들은 일주일에 최소 하루 이상 영업을 쉬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무 부지런한 것이 문제였던 이 빵집 주인은 심지어 일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한 것도 아니다. 빵집 주인은 다만 휴양지 특성상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 휴가 기간 두달 동안에만 주 7일 영업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야 딱히 특별한 뉴스랄 것도 없던 이 건은 오히려 영어권 언론들에 의해 “프랑스의 빵집 주인이 너무 열심히 일한 죄(?)로 2500파운드의 벌금을 내게 되었다”는 등의 자극적인 제목 등으로 앞다퉈 소개되었다. (프랑스 언론과 영국 언론들은 서로 상대방 나라에 대해 조롱 섞인 비난을 주고받는 일이 일상적이다.) 이에 대해 다른 빵집 주인들을 비롯하여 프랑스 내 소매상들의 반응이 이채롭다. 빵을 만드는 일은 장인의(artisanal) 직업으로서 섬세한 감각과 더불어 집중을 요하는 노동이 수반되며, 자칫 쉬지 않고 일하는 유혹(?)에 빠져 직업 자체의 존엄성을 잃기가 쉬우니, 일주일에 최소 하루 이상 쉬도록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프랑스도 예전 같지 않아서, 파리를 비롯한 관광지의 대형 상점이나 마트들 중에는 부분적으로 일요일 영업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는 마크롱 대통령의 규제 혁파 정책으로 인해 가속화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휴일 및 야간 영업에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는다. 반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휴일을 존중하기를 고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업시간 제한이 있는 대형 매장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소규모 상점들이 늦게까지 혹은 휴일 없이 일하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프랑스의 자영업자들은 휴일뿐 아니라 영업시간을 지키는 데도 철저하다. 내가 한국에서 지인이 올 때마다 데려가곤 하는 우리 동네의 단골 식당은, 월요일에는 점심시간에만 열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점심과 저녁, 토요일에는 점심을 건너뛰고 저녁 시간에만 영업한다. 일요일에는 쉰다. 점심 영업이 끝나는 2시부터 저녁 영업을 시작하는 7시 사이에 손님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영업 패턴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어서, 업소에 따라 화요일에 쉬는 집도 있고 수요일에 쉬는 집도 있다. 토요일 종일, 일요일 오전까지 영업하고(일요일 오후에 영업하는 업소는 정말 드물다), 주중에 이틀을 쉬기도 한다. 이렇듯 들쑥날쑥하다 보니 어지간한 단골 식당이 아니고서야 영업시간을 외우기가 쉽지 않다. 고로 동네 식당을 갈 때도 미리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것이 필수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예약 문화로 이어진다.

구글에서 검색한 곽원철씨의 단골 식당 정보. 중요 정보인 영업 시간(horaires)은 항상 상단에 위치한다. 이 식당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점심, 저녁 영업을 하고 토요일에는 저녁에만 연다. 일요일, 월요일은 쉰다.

구글에서 검색한 곽원철씨의 단골 식당 정보. 중요 정보인 영업 시간(horaires)은 항상 상단에 위치한다. 이 식당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점심, 저녁 영업을 하고 토요일에는 저녁에만 연다. 일요일, 월요일은 쉰다.

휴가는 또 어떻고. 내가 살고 있는 그르노블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들은 7~8월 여름 휴가 및 연말의 크리스마스 기간에 짧게는 최소 2주, 길게는 4~8주에 이르도록 영업을 중단하고 휴가를 떠난다. 도시민들이 휴가를 즐기는 휴양지나, 파리나 리옹 같은 국제적인 대도시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의 도시에서는, 이 기간에 문을 연 ‘제대로 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휴양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신에 비성수기인 9월이나 10월에 휴가를 즐기고는 한다.

프랑스 자영업자들의 이러한 직업윤리는 ‘근면’을 미덕으로 하는 다른 문화권의 시각으로는 게을러 보일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휴가 없이 쉬지 않고 일하는 식당은 ‘제대로 된’ 식당으로 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에게 음식 문화란 단지 배를 채우거나 미각을 자극하는 맛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각은 물론 시각과 촉각 심지어 청각까지, 오감을 즐기는 체험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휴가 없이 일만 하는 셰프가 과연 맛있는 음식을, 그 음식을 향유하는 즐거운 경험을 창조해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 이들의 사고방식이다. 기껏해야 맥도널드를 비롯한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이나 즉석에서 대충 만드는 샌드위치 혹은 냉동음식 따위를 데워서 파는, 말 그대로 ‘한끼 때우는’ 식당이 아니고서야, 적절한 휴식과 휴가는 자영업자 및 그 종사자들이 누려야 할 권리일 뿐 아니라, 스스로의 경쟁력 즉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근간한 새로운 서비스의 창조와 제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번에 프랑스인의 서비스 정신에 대해 얘기한 칼럼에서 소개했던, 우리 부부의 또 다른 단골 식당의 예를 들어볼 만하다. 휴가철이 끝난 뒤 오랜만에 찾은 이 식당의 메뉴에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해조류를 재료로 한 음식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문화권을 제외하고는 김과 미역을 비롯한 해조류를 식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에 반가워서 물어보니, 주인 겸 셰프가 직접 나와 신이 나서 설명해 주었다. 실은 여름 휴가로 한달 정도 일본에 다녀 왔는데, 거기서 해조류 요리를 맛보고는 감명받아 전문 음식점들을 골라 돌아다니며 체험해 보고, 내친김에 산지들을 다니며 재료도 연구해 보았다고 한다. 돌아와서는 프랑스 음식에 김과 미역을 활용할 방법을 고심해서 새로이 개발해 내놓은 메뉴라는 것. 셰프가 한국에 들르지 않은 것은 아쉬웠으나 (다음번에는 꼭 완도를 비롯한 한국의 남부 지방을 둘러 보라고 얘기해 줬다) 과연 요리는 훌륭했다. 해조류 특유의 질감과 아시아식 소스의 맛을 살리면서도 프랑스인들의 입맛에도 크게 거슬리지 않을 만한 (하지만 즐거운 미각적 놀라움을 주기에는 충분한) 맛이었다고 할까. 물론 프랑스에서도 다양한 퓨전 요리가 꾸준히 시도되고 있는바, 해조류를 이용한 요리는 음식 전문 잡지나 인터넷의 레시피로도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셰프라면 꽤나 그럴싸한 맛을 낼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우리 단골 식당의 셰프처럼 직접 해조류 요리의 본산이라 할 만한 동아시아에서 휴가를 즐긴 체험을 바탕으로 만든 요리의 ‘느낌’을 재현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이러한 ‘체험’이 들어가 있는 음식과 상품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한국에 있는 가까운 친지 중에, 휴양지에 인접한 시골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식당(소위 ‘가든’)을 운영하는 어른이 계시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숙식을 제공하지 않고서는 종업원을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고민 중인데, 요새 한국 사람들 중에는 일주일 내내 시골에 처박혀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선족 동포들을 고용한다고 푸념하신다. 그럴 것 같으면 영업시간 및 일수를 줄이고, 종업원도 가족 외에는 꼭 필요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써서 일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려봤지만 소용이 없다. 일단 어르신들의 사고방식은 ‘장사하는 사람이 가게 문을 닫아 손님이 발길을 돌리게 해서야 되겠는가’하는 것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우리 식당 손님들은 그냥 지나가다 들르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시내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인데, 영업시간을 놓쳐서 한두번 허탕치고 돌아가면 다시는 안 찾는다는 것이다. 결국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 항상 문을 열고 영업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사실 우리 윗세대의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장사해서 재산을 모으거나 최소한 가족들을 건사해 왔다.

이는 결국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에 대해 갖는 자부심, 이를 받아들이고 가치를 인정하는 고객들의 상호 문화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위에서 예로 든 프랑스의 식당들은, 내게 음식 맛뿐 아니라 식당의 분위기, 주인 및 셰프와의 친밀함 및 그동안의 경험과 같은 것들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다른 곳에서는 누릴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영업시간을 확인해 가며 내 스케줄을 맞춰서라도 찾게 되는 것이다. 반면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문을 닫아야 했던 통닭집이나 친지분의 ‘가든’은, 꼭 그곳에서 먹어야만 할 이유를 손님은 물론이거니와 주인도 찾지 못했던 것이 아닐는지.

그러다 보니 무턱대고 열심히 일하고 오래 영업해 경쟁을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문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고객을 대할 수 있는 프랑스의 자영업자들과, 별다른 기술력이나 철학도 갖추지 못한 채 프랜차이즈 업체의 봉이 되어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처지를 비교해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12회차를 맞는, 프랑스에서 전해 드리는 이 칼럼의 첫 회는 프랑스 직장인들의 근무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프랑스 직장인들이 휴가가 많고 칼퇴근을 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쉴 때 쉬고 집중할 때 집중함으로써 더 효율적인 업무 성과를 낸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자영업도 마찬가지다. 쉴 때는 쉬고 일할 때는 창의적인 열정을 갖고 일함으로써 남들과 다른 가치를 지닌 차별화된 서비스와 체험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요식업을 비롯한 프랑스 자영업자들의 기본 마인드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고객들은 그러한 서비스와 체험에 대가를 지불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b>필자 곽원철</b>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에서 12년 남짓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09년 프랑스로 건너갔고,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실에서 근무하게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현재는 알프스 자락에 걸친 남프랑스의 산악도시 그르노블에서 아내와 갓 태어난 딸 레나와 함께 살면서 파리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뭔가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모토가 되어 버렸다.

필자 곽원철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에서 12년 남짓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09년 프랑스로 건너갔고,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실에서 근무하게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현재는 알프스 자락에 걸친 남프랑스의 산악도시 그르노블에서 아내와 갓 태어난 딸 레나와 함께 살면서 파리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뭔가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모토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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