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학에서 본 소통과 불통

2018.03.26 09:00 입력 2018.03.26 09:18 수정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사람이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합니다. 함께 사는 배우자와 소통이 안 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것만큼 불행한 결혼생활도 없을 겁니다.

부모자식 간이나, 친구 간에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소통과 불통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될까요?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 선생은, “내 편한 대로만 살고 싶어서 내 옳음만 고집하면 불통이 된다”고 했습니다.

반면, 나와 다른 처지의 상대 입장을 헤아리면 ‘박통(博通)’, 즉 널리 소통된다 했습니다. 이 문제는 한 개인의 신체적 건강은 물론이고, 그의 인격과 삶의 수준이 좌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보았습니다. 이는 조직이나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은 남북관계도 너무 불통으로만 치달았습니다. 각자 서로의 입장에서만 옳음을 쥐고 맞서 왔습니다. 여기에 미국이나 주변국들도 다들 자기 방식대로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아예 대화 자체가 되질 않았습니다. 옳은 것은 그렇게 봐야 이익이 발생하는 쪽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상대 입장에서는 전혀 옳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비핵화가 옳은 것이니 무조건 해라라고 요구하지만, 북한 처지와 입장에선 그게 반드시 옳은 걸로 받아들여지진 않겠죠.

소통 문제는 결국 각자가 생각한 옳음을 강하게 밀어붙인다고만 해서 되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서로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절묘한 타협점이 찾아지게 됩니다. 태어난 얼굴이 다르듯, 타고난 체질과 정신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한의사 강용혁의 심통부리기 제 228화에서는 인간의 타고난 정신구조 자체가 애초에 다르다고 보는 사상의학적 관점에서 소통 문제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문제가 어떻게 몸과 마음의 병까지 일으키게 되는가를 분석합니다.

☞ ‘한의사 강용혁의 심통부리기’ 팟캐스트 듣기

먼저 소음인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이걸 상대도 옳다고 받아들이고, 세상도 내 방식대로 될 때를 소통이라고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한평생 내 기준과 옮음을 외부에 퍼트리는 것을 소통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대신, 남의 말에 귀 기울여 나를 변화시키는 소통의 힘은 약해지기 쉽습니다. 항상 나에게서 외부로 향하는 것에 중심을 둔 소통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만약 상대나 세상이 내 옳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건 옳지 못하고 소통이 안 되는 것이라 여깁니다.

반면, 태음인은 조금 다릅니다. 소음인처럼 내 옳음을 막 밀어붙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정작 자신은 표현을 안 하고선, 상대는 내 마음을 다 알아달라는 식입니다. 내가 입 꾹 다물고 있어도 상대가 내 마음 다 알아주는 게 그게 소통이라 착각합니다.

물론, 태음인 자신은 ‘예(禮)’를 타고난 체질이라, 평소 상대가 말 안 해도, 알아서 배려하고 챙겨주려 애씁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럴 거라 착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배려하며 애쓰고 살아왔는데, 너는 왜 나를 안 챙겨주냐’는 섭섭함이 강해집니다.

이처럼 각자 타고난 정신구조가 다르기에, 각자 주로 사용하는 소통방식 또한 달라진다는 것이 사상의학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왜 소통이 안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이런 불통 때문에 한 인간이 왜 병들게 되고 삶까지 위태로워지는지 심통부리기 228화에서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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