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않는 사람들

2018.03.28 20:36 입력 2018.03.28 20:43 수정

[직설]듣지 않는 사람들

인류는 말의 지배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성질 급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종족이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그렇지 않았을 때 벌어졌던 일들에서 힘겹게 얻은 교훈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이 방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현실이 정말로 그런가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긍정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삶속에서 말보다는 돈과 힘이 더 세다는 것을 사무치게 느낀다. 힘과 돈이 있는 이들은 말을 무시하고, 그게 없어서 말의 무력함을 체감한 이들은 말을 증오한다.

그리고 이 무시와 체감이 광범위하게 일어날수록 말은 더 무력해진다.

여기에서 탄생한 아주 곤란한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듣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어떤 합리적 논거와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이미 정해진 답이 있다. 그 답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의 보호를 받는다. 만약 반박하기 어려운 사실들에 의해 그 답이 흔들린다면 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거부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택한다.

물론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런 면모들이 있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들은 사람이 이성에 의해서 판단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먼저하고 이성으로 빈 곳을 채운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하지만 듣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는 이런 수준을 벗어난다. 지구가 평평하다거나, 공룡이 인류와 함께 살았다거나, 백신을 맞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증거들에 의해서 배제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차별받고 있지 않다거나, 페미니즘이 ‘반사회적 사상’이라거나, 동성애는 죄악 혹은 질병이며, 좌파의 음모가 죄 없는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는 주장들도 그렇다. 특히 후자에 속하는 이들은 정신승리, 가짜뉴스, 대안현실, 행복회로를 통해서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에 일종의 평행우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성차별주의와 반공주의와 보수기독교의 만남이 끼치는 해악은 점점 더 심각해지는 중이다. 이들이 잘못된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적 약자들과 동료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군가를 제거하고, 입막음하고, 굴복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뒤틀린 희망을 품고 있다.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대신, 만만해 보이는 무언가에 모든 것을 전가하기를 택한 것이다. 이들이 세상을 다시 거꾸로 돌릴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골치 아픈 문제는, 이들의 바람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을 손쉽게 제거하거나 추방함으로써 해결하려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화나 타협은 더 어려워 보이는 이들과 어떤 방식으로 맞설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두 개의 층위에 걸쳐져 있다. 하나는 옳고 그름의 문제다. 이들이 전파하는 잘못된 사실과 지식들에 맞서, 진실을 공유하고 지켜내는 일이다. 단순히 교과서에 싣고 시험에 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토론하고, 체화함으로써 공통의 진실로 만들어 내야 한다. 합리적인 의문에 닫혀있는 진실일수록 얼토당토않은 거짓들 앞에서 흔들리기 쉽다. 다른 하나는 실존의 차원이다. 말에 대한 무시와 증오를 만들어 내는 조건들에 대한 개입이다. 힘과 돈을 가진 이들에게는 의무와 감시를, 그것이 없었던 이들에게는 말이 그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혹여 누군가를 격리하거나 처벌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단순히 잘못된 의견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위해를 끼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점령군의 보복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호하는 정의에 입각한 결정이어야 한다.

듣지 않는 자들과의 싸움은 아마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영원한 시험이자 실험이다. 지치거나 환멸에 빠지지 않으면서 이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그래서 그야말로 인간다운 승리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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